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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Aug 19. 2020

책장의 의미

내게 주는 위로



회색빛 하늘이다. 조용한 빗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집안에 불을 켜는 대신 유리조명을 켰다.
유리창에 떨어지는 비 소리에 기대어 책을 읽기 좋은 날이다. 나는 작은방의 문을 열었다. 책장에 놓인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꺼내보고 싶은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안도현의 사진첩. 묵은 냄새와 누런 때가 묻은 책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98.9.7 양오가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라며. 순영이가」라고 쓰여 있는 친구의 글씨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올랐다.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는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에 놀라며 무척 신기해했다. 그리고 점점 잊혀가는 내 기억의 또 다른 페이지를 찾아 책장의 모든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또 한 권의 보물 같은 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류시화의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그 첫 페이지에는 「99.9.7 너의 생일을 축하하며 친구 지은」이라는 기록과 친구가 쓴 짧은 편지가 적혀있었고 또 사진을 찍었다. 망설여졌다. 사진을 보낼까 말까 하는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사진은 친구에게 전송되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이어지지 않았던 터라 이런 사진을 보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며 답장이 오지 않을까 초조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뜻밖에도 친구는 너무 반가워하며 답장을 보내왔다. ‘99년에 쓴 편지를 보니 쑥스럽고 옛날 생각도 나고 뭔가 마음이 찡하다. 고마워. 99년에도 너에게 고마운 게 많았는데 2020년 오늘 하루도 너에게 고맙다.’ 친구의 답장이 유리창 밖의 빗소리와 유리조명이 내뿜는 온기가 더해져 나에게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책장에 놓인 오래된 책들이 고마웠다.


책을 한참 동안 뒤적이면서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 내 책장의 일부분을 채워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짧은 기록들이 나조차도 또 그 누군가도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주는 것 같아 행복했다. 그 기록이 얼마나 귀한지 사라져 가는 내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증명해 준다는 사실이 그리고 내가 좋은 사람으로 남아주기를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랐던 친구들의 마음에 고마웠다.



어쩌면 그때의 기록이 지금의 나에게로 그대로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책장에 놓인 책을 보며 나도 모를 위로와 안정감을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책장의 모든 책을 버려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거실 전면에 자리 잡고 있던 책장. 그건 바로 아빠의 책장이었다. 그 책장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했다. 그 책장 안에는 아빠의 책들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책장에 가득한 책들을 헌책방에 모조리 내다 팔고 싶었다. 집을 옮길 때마다 노끈에 묶인 그 책들이 지독하게 싫었다. 거기에 각종 신문에서 오려진 사설까지 정말이지 다 불태우고 싶었다.



끔찍했다. 집의 경제적 어려움이 전부 아빠의 탓이라 여겼던 그때의 나는 저 책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무능력하다고 여겼던 아빠의 책장. 더욱 꼴 보기 싫었다. 책을 사들고 오거나 신문을 펼쳐보고 있는 아빠를 볼 때면 더욱 괴로웠다. 나는 몇 번이나 애꿎은 엄마에게 화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내 책장은 여전히 책들로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 전북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세월호 6주기 추모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교육감상과 큰 상금이 주어졌던 그 날.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괜한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누구를 닮아 이렇게 시를 잘 썼나?”
“엄마는 아니야. 아빠 닮았나 보다.”
“그래? 아빠가 글도 썼어?”
“아빠는 큰 무대에서 연설도 잘하고 편지 한 장을 써도 그냥 쓰는 법이 없었지”
“그렇구나.”
나는 그 뒤에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집에 거의 다 와 간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뒤, 엄마는 지역신문과 TV를 통해 나온 내 인터뷰를 보며 기특해했다. 어느 날 아빠는 내 기사가 실린 지역신문을 들고 왔다고 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오려놓은 신문에 내가 있었다. 내 기사를 어느 때보다 정성스레 오려 스크랩을 했다고 했다. 마치 이 날을 위해 수많은 사설을 오려온 것처럼.



내 기사가 실린 신문 인터뷰의 소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먼저 책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인들에게 보여주며 TV와 신문에 나온 나를 자랑스러워했을 아빠. 어쩌면 아빠를 통한 아픈 바람이 나를 지금의 고운 바람으로 살게 했을지 모른다.


아빠와 닮았다는 게 지독하게 싫은 시절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는 아빠와 너무 꼭 닮아있다. 외모뿐 아니라 책을 좋아하고 책장에 책이 하나하나 놓여가는 순간 마음이 채워지는 그 감정까지도 말이다. 아빠의 책장에 책이 쌓여갈 때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헛헛한 마음이었을까. 외로움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아빠는 등 돌리며 마음 내주지 않던 자식들을 대신해 위로받았던 건 아닐까. 지금껏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마음이 공허하면 서점에 들러 그 안의 공기를 벗 삼아 책을 들춰보며 위로받던 나처럼. 아빠의 책장이 가여워진다. 그 책장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아빠의 외로움이 묻어 있을 테니. 어쩌면 지금의 내가 있을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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