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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Dec 08. 2020

불리지 않는 이름



불리지 않는 이름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준 상처가 너무 커 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름. 이름조차 고통이라 내게는 없다고 부정했고 도망쳤던 그 이름.


“누나, 병원 가봤어?” 퇴근 준비를 하던 내게 걸려온 동생의 전화였다. 무슨 병원을 말하는 건지 영문을 몰라 되묻자 동생은 말했다. “누나 연락 못 받았어? 아빠 교통사고 났대. 엄청 크게 났나 봐. 병원에 실려 갔다고 연락 왔어.” 동생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내 눈물이 나고 말았다.


어쩌면 나의 눈물은 이름 뒤에 꼭꼭 숨겨 놓았던 아빠를 향한 기대와 그가 내게 쏟은 사랑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는지 모른다. 첩첩산중으로 쌓이는 어려운 상황과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엄마가 하게 될 수고와 또다시 답답해질지 모르는 내 미래가 뒤섞여 머릿속은 엉망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실로 올라가는 내내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 박동의 세기를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간절한 떨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이 도왔다.” 지난해 8월.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말했다. 차 유리 파편에 긁힌 몸과 얼굴. 충격으로 여기저기 멍든 몸. 전복된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맨 채 거꾸로 매달려 있던 아빠는 환자복을 입고 팔에 링거를 꽂은 채 병실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하마터면 부를 뻔했다. 가슴속에서 잘라낸 이름.



각했다. 하늘도 이대로는 아빠를 데려갈 수 없었다고. 오랫동안 부르지 않아 이름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만큼의 후회를 안고 살아갈 나를 위해 아빠는 이토록 허무하게 갈 수는 없다고 외쳤을까. 그 외침을 들은 하늘도 딸이 불러주는 진심의 이름을 들어보고 오라고 놓아준 걸까.


존재가 명확해지는 불리는 이름. 그 이름을 나는 꽤 오랜 시간 부르지 못했다. 내게 엄마라 불리는 이름이 그렇듯 삶의 이유와 방향이 분명 해지는 이름. 그 신비한 힘으로 더욱 잘 살고  싶어 지게 하는 이름. 누군가는 그 불리는 이름이 간절하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 이름을 나는 아빠에게서 빼앗았다.


내가 불러주는 이름이 차곡차곡 쌓였다면 아빠는 재기의 꿈을 이뤄냈을까. 그랬다면 아빠로서의 삶을 꽃피웠을까. 그 외로운 삶을 가늠할 수 없다. 삶의 방향이 흐려져 그 이유조차 모르고 전진하는 몸과 마음이 서글펐겠지.  어쩌면 내가 불러주지 않았기에. 아빠로서의 빛을 점점 잃어갔던 건 아닐까.


하루 종일 망설였다. 아침부터 전화를 할까 말까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오야! 어제 네가 사준 옷 잘 입었다. 따뜻하더라.” “어. 생일이라 전화해봤어.” “그래, 고맙다. 아빠 지금 누구 좀 만나고 있어. 감기 조심하고 고맙다.” 얼마 전 아빠 생일. 나는 생일 축하의 말도 부르는 말도 뱉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하루아침에 불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깊어진 골만큼이나 내 못된 습관이 허락하지 않기에.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 의미 없는 부름은 아빠의 마음에 닿지 않을 테니.



나는 글을 쓴다. 많은 세월 동안 빼앗은 이름. 아빠의 존재를 되찾아주기 위해. 자꾸 쓰고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끝내 부를 수 있을 거라 희망한다.어쩌면 그마저도 후회로만 남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서 인지도 모르지만. 더는 깨닫지 못해 어리석은 딸로 기억되고 싶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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