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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Oct 09. 2020

석 달 열흘

나를 잃지 않는 시간



석 달 열흘. 내게는 없을 것 같았던 시간.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나는 충분히 아팠고 단단해졌다. 석 달 열흘이면 다 지나간다는 엄마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어느새 나도 나를 둘러싼 말들도 점점 잊혀가고 있었다. 마법의 시간.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고 나니 나는 더 이상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눈을 뜨니 또 다른 인연들이 또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들 중에 머리 빠진 분이 있다면서요?”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생님 중 한 명이 머리가 빠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소문이 나게 된 경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사람의 입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았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점점 조여와 숨이 끝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2011년 3월 15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것은 마지막 부여잡고 있던 내 마지막의 끈을 놓는 것과 같았다. ‘혹시 나 인걸 눈치챈 건 아닐까.’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학부모들을 마주할 때마다 눈치 보이고 주눅이 들었다. 사람들의 입이 원망스럽고 들려오는 소리는 두려웠다. 학기 중에 그만둔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어차피 평생 이렇게 살지도 모른다는데 더는 이곳에서 견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교실 구석구석을 한참 둘러봤다. 오후가 되면 창틈으로 가냘프게 빛나던 노을빛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서둘러 교실 불을 껐다. 나를 향한 온기 어린 선생님들의 포옹으로 5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정든 첫 직장에서의 시간이 끝났다. 나를 향한 안타까운 시선을 등에 업은 채 나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택시를 탔다. 괜한 미소를 짓기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니 어느새 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갔다.



“석 달 열흘이면 다 지나가. 사람들이 하는 말 석 달 열흘이면 다 지나.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오열하는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 치부는 지켜지지 않을 것 같았고 수면 위로 떠올 사람들의 입방아에 점점 퍼져나갈 것 같은 현실에 분노하며 한참을 울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 이제 어떻게 해.” 그날 저녁, 나는 전쟁터에 나가 힘겹게 싸웠지만 결국 부상을 입고 돌아온 패잔병 마냥 서럽게 울었다.



늦잠을 잤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온몸에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사실 더 이상 힘을 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눈빛은 생기를 잃었고 입은 닫혔고 점점 마른 웃음을 지었다. 툭하면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의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밑 바다는 출렁거렸고 파도는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 파도를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씩씩하니까 괜찮아요. 난 난 난 나는 괜찮아요.” 밤이면 가만히 누워 노래를 불렀다. 그 봄날에 왜 그리 겨울 동요를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나 작게 불렀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닦아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밤마다 노래를 불렀다. 베개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 해 6월. 지인의 부탁으로 이제 막 개원한 작은 어린이집에서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나는 교사를 구하는 동안만 잠시 있어주기로 했다. 잠시 머물다 갈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최선을 다했다. 약속한 때가 되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내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덕분일까. 나는 그곳에서 주임교사로 6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내 새로운 선택을 존중했던 원장님은 나를 보내며 내 손을 꼭 잡아줬다.



‘석 달 열흘이면 다 지나.’ 나는 한참을 되뇌었다. 너무나 아파했던 딸을 마주했을 엄마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엄마의 석 달 열흘은 어떤 한 단어로 규정지을 수가 없다. 엄마는 내게 충분히 아프고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그 힘으로 다시 일어나 날아갈 수 있도록. 내 삶의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석 달 열흘. 나는 그 시간을 나를 잃지 않는 최선의 시간이라 규정한다. 나는 믿는다. 그 시간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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