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삶
고난의 여정이 나로 살게 했다
아찔했다. TV의 한 프로그램. 아버지의 가발을 맞추기 위해 상담을 하는 연예인 부부 앞에서 자신의 가발을 당당히 벗어 보인 사장님. 본인의 아픔을 승화해 사업 성공의 길로 들어선 대단한 사람.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도망자이자 겁쟁이였던 지난날의 나를 만났다.
공포였다. 얇고 뾰족한 주사기. 그 자체로. 차가운 주사액이 내 두피를 뚫고 들어옴을 느낄 때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전쟁을 끝내고 싶지만 이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두려웠다. 홀로 처치실에 앉아 있는 거울 속에 비친 나라는 존재. 기약 없는 치료의 날들이 내 미래마저 꿈꿀 수 없게 만들 것 같아서.
서둘러 가발을 썼다. 거울을 바라봤다. 담담한 척. 문 밖엔 늘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이 보였다. 고민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히 걸어야 할지 축 처진 어깨를 보이며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할지. 결국은 바닥으로 꺼질 듯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들며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어김없이 쏟아지고 말았다.
온몸 구석구석에 녹아있던 분노가 결국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말았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더한 불안을 짊어지고 말았다. 불편이 불안으로 이어져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어깨와 목을 잇는 긴장이 나를 짓눌렀다. 사람과 괴물의 어디쯤. 공포와 수치의 길가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감추고 싶었다. 빈 머리를 가리기 위해 머리띠를 샀다. 머리의 빈자리가 커질수록 머리띠의 넓이도 커져갔다. 더는 가릴 수 없게 되자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모자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가발을 쓰게 되던 날 내 안의 불안이 더 거세졌다.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했고 일어나지도 않을 온갖 상상에 사로잡혀 누군가 내 곁에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믿었다. 주사 몇 번이면 치료된다는 말. 나도 그렇게 되기를. 유명 대학병원과 한방병원을 전전하며 분야의 권위자라는 의사를 만나도 탈모 클리닉을 하는 미용실에서의 관리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자가 면역질환 환자에게 쓰이는 각종 약을 먹고 머리에 주사를 맞고 매선 치료를 해도 나는 늘 그 자리였다.
머리를 두 번 감았다. 얼마 남지 않은 내 머리도 가발도. 가발 특유의 냄새가 싫어 샴푸를 많이 했다. 내 머리보다 더 정성스레 빗질을 해 걸어두었다. 가발 쓴 티가 나기 싫어 인모에 가까운 가발을 찾았다. 처음 구입한 가발 가격의 5배였다. 그마저도 두 달 남짓 쓰고 나면 빗자루 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숨막히던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 인생길에 도돌이표 같던 어느 한 마디. 끝이 없는 그 마디를 끝내고 싶어 몸부림쳤다. 끝날 때쯤 하면 다시 시작. 이제 좀 끝나려나 싶으면 다시 처음으로. 가끔은 그 시간들을 송두리째 내 인생에서 빼내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흔적조차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가발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던 날. 깨달았다. 도돌이표라 여겼던 고통의 한 마디. 그 마디를 끊어내고 연주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상처투성이라 여겼던 많은 순간들이 이제야 깨달아지는 끄덕임의 시간. 마디를 끊어내고 싶었던 시간들이 결국 오늘의 나로 살게 했음을.
어쩌면 필연이었을까. 내게 주어졌던 참을 수 없었던 고난의 여정. 나를 살리는 도구였을지 모른다.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는 여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전처럼 그 여진이 쉽게 나를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한다. 나는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특별한 존재. 누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삶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