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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Oct 06. 2020

절실한 사치


“굿모닝”
고모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침인사와 함께 시간이 될 때 전화 한 통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둘째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돌아와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모는 나에게 카메라에 대해 물었다. 카메라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카메라는 어떤 걸 사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알아보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짧은 안부를 물은 뒤 전화를 끊었다.


출근 전, 고모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카메라와 렌즈 구입 유의사항을 알아보고 고모에게 도움이 될 만한 동호회 이름을 캡처해 놓았다. 퇴근길에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던 고모의 목소리에서 떨리는 울먹임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고모 마음을 너무 몰라.” 카메라를 산다고 하면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는 거였다. 참 슬픈 목소리였다.


미국으로 떠난 뒤 2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고모.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여러 일을 하며 버텨온 날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올 수 없었던 고모의 여러 상황들. 아무것도 없이 떠났던 미국에서의 삶을 내가 다 알 수도 그 애통함을 짐작조차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종종 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식을 전했다. 외로운 시간 속에서 버텨온 고모의 삶. 그런 날들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고모에게는 아픈 공허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고모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카메라를 샀던 이유는 살고 싶어서였다고. 고모 역시 그때의 나처럼 숨 쉴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고모가 비슷한 지점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와 관련해서 써 두었던 짧은 글을 보냈다. 고모의 심정을 다 위로할 수 없겠지만 마음의 한 구석을 읽어주는 글이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언젠가 나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의 행동에 사치스럽다 여긴 적이 있었다. 돈도 없는데 왜 저렇게 비싼 신발을 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나는 고모를 위로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엄마는 신발을 사야 한다며 같이 가달라고 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신발 매장을 둘러봤다. 신발을 여러 차례 신어본 뒤 엄마 마음에 드는 신발을 골랐다. 엄마가 고른 신발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브랜드 신발은 비싸다며 투덜댔다. “잘 신겠습니다.” 말했던 엄마는 그 신발을 몇 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신발장에 넣어두었다.




사치란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쩌면 사치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절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카메라가 절실했던 것처럼 고모에게도. 또 누군가에겐 그 무언가가 그리고 엄마에게는 발의 통증을 버티게 해주는 좋은 신발이 절실한 사치였음을 나는 엄마가 발 수술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랜 시간 보험 일을 하며 수없이 걸어야 했던 엄마. 닫혀있는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려야 했던 엄마. 그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지켜줘야 했던 신발을 나는 사치라 여겼으니. “발이 아파서 엄마는 일반 신발은 못 신어.” 몇 번을 얘기하던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엄마의 신발이 사치였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치가 아니었다. 나에게 카메라가 그랬듯 신발은 엄마에게 살고자 필요했던 삶의 도구였고 간절함이자 위로였다.


비 내리던 오후 엄마는 퇴근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 나는 엄마의 저녁을 위해 반찬 몇 가지와 깻잎 한 봉지를 문 앞에 챙겨 놓았다. 엄마가 신발을 신고 일어나 문을 나서려는데 큰 아이가  방에서 뛰어나와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할머니, 무겁고 다리 아프니까 제가 차까지 들어다 줄게요.”
“아이고, 우리 강아지. 아니야. 비도 오고 너는 무거워서 못 들어.”
아쉬운 듯 실망하는 딸아이의 표정을 보고 엄마는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엄마가 먼저 무거운 반찬 가방을 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사이좋게 하나씩 들고 가자.”
“할머니, 그럼 깻잎은  제가 가지고 갈게요.”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딸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아주며 한 손에는 무지개 우산 그리고 한 손에는 깻잎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나갔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엄마와 딸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몰랐던 그 무언가를 딸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의 느릿한 발걸음은 어느 때 보다 가벼웠다.


나 역시 엄마와 같은 증상으로 쿠션이 얇은 신발은 신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가끔은 발을 바닥에 딛기도 어려운 통증을 느낀다. 이렇게 되고 나니 잠시 서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던 엄마의 통증을 가볍게 여겼던 내가 엄마의 간절함을 외면해 온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엄마의 발은 나였고 우리였다. 엄마의 신발은 한 발 더 나아감이었고 그것 또한 우리를 위함이었다.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에 실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그때는 몰랐다. 아니 그때도 몰랐고 나는 지금도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척 그때를 지나온 건 아닐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 덜 원망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 후회의 깊이가 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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