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기억력은 의심의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메꾸어져,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하는 매체는 발전을 거듭해 왔고, cctv와 블랙박스는 진실을 가르는 도구로 진화해 왔다. 문제는 이 기록의 매체들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각지대라는 것이 늘 존재하고, 시간과 각도에 따라 한번 더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정비공장 안에서는 크고 작은 시시비비를 가릴 건들이 많다.
우선 차량 사고로 들어오는 차 자체가 사고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과정 속에서 수리가 이루어진다. 공장에서 직접적으로 사고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회사의 사고조사 결과에 따라 수리의 방향은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공장과 차와의 시시비비……
많은 경우, 손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차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며칠간 세워져 수리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없던 흠집이 보인다거나, 작동이 되던 부분이 작동이 안 된다거나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손님은 정비공장의 수리불량을 지목한다. 이미 차량 입고 전부터 있었던 하자일 경우에도 막무가내이다. 물론, 공장 측의 실수인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 업계가 그만큼 손님에게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이런 의심의 증폭에 대한 방어로 차량 입고 시 차량의 손상여부에 대해 꼼꼼히 사진 촬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기억력과 작업자의 기억력의 혼돈으로 인해 다양한 시시비비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그 어느 날도 그랬다.
“아니, 제가 분명히 이날 아침에 여기를 잡고 운동도 했었는데, 이런 찍힌 자국은 없었다니까요!”
밖에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올게 왔구나…’
천천히 고객대기실의 자동문을 열고 작업장 쪽으로 갔다. 손님은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 보이는 여성이었다. 차량 안에 카시트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분도 아이 엄마인가 보다. 나도 같은 아이 엄마인데…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으면 우리는 서로 웃으며 존중하면서 친하게 만났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여기 사장이니까. 당신이 화가 나 있는 이곳 사장이니까…
한숨을 크게 돌리고 손님에게 물었다.
“손님,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가요?”
화가 나있던 여성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여기 사장님 어디 계세요?”
“지금 안 계신데요. 저한테 말씀하셔도 됩니다.”
나는 자주 사장이 아닌 척했다. 출근 초창기에는 책임을 당연히 내가 지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당당하게 사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사장처럼 보이지 않는 사장은 일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많았다. 어느덧 나는 소심하게 사장이 아닌 직원인 척 행세하기 시작했다. 그 편이 오히려 손님에게 다른 설명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지 않아도 되니까.
“아니, 제가 분명히 여기 문 안쪽 손잡이 부분을 아침에도 보면서 이렇게 운동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까지는 없었던 찍힌 자국이 있어요. “
‘하아.. 제발….. 그런 트집은 좀 잡지 말아 줘… 우리도 어떻게 확인이 안 되는 거잖아… ‘
차량 외부야 사진을 꼼꼼히 찍어도, 차량 내부까지도 사진을 꼼꼼히 찍지는 않았다. 작업자들은 보통 수리 부위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 내부를 꼼꼼히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물론 손님 입장에서는 이건 비겁한 변명이다. 꼼꼼히 봤어야 한다. 특이점이 있었다면 먼저 보고 손님에게 알렸어야 했다.
대부분의 이런 경우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cctv야 차량 내부까지 찍을 수 없고, 손님의 차에는 블랙박스도 없었다. 직원들은 늘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직원을 의심할 수도, 손님을 의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손님보다는 직원을 믿는 쪽을 택했다. 알량한 3년간의 경험이 나를 그렇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손님들의 떼쓰기에는 어떠한 진심도, 성의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시시비비에 이력이 나기 시작한 나는 적극적으로 손님들의 불만을 경청하고 개선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다 어느 쪽이든 먼저 지치게 되는 쪽을 택하려고 한 것 같다.
“고객님, 저희 직원들에게 일단 물어보고 확인을 먼저 해보겠습니다.”
나는 일단 고객을 돌려보내고 시간을 끌어 볼 생각이었다.
“제가 여기 세차장 아저씨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데, 직원들에게 확인하고 물어봐서 뭐가 달라지겠어요? 여기 지인소개받고 온 곳인데, 앞으로 여기를 어떻게 믿고 또 오겠어요?”
사실 나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진모터스쿨에서 난 공감능력을 인위적으로 버리기로 했다. 독하게 보이려고 마음을 먹고 나 역시 손님 못지않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하지만 저희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도 cctv를 한번 돌려 보겠지만, 고객님 주장대로 안쪽 부분에 난 상처라면 영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객님 블랙박스라도 한번 확인해 보시는 수밖에……”
“아니, 뭐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고객에게 직접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마치 ‘아쉬운 건 당신 아니냐’라는 억지였으니까.
“뭐 이런 곳이 다 있어요? 제가 그럼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말이에요? 제가 아침마다 여기를 잡고 이렇게 스트레칭하고 운동을 한단 말이에요. 분명 아침에 볼 때만 해도 없었던 상처라고요! 아니 차에 블랙박스도 없는 거 뻔히 아시면서, 저보고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다니… 정말 기가 막히네요.”
여자는 쉬이 돌아갈 기세가 아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는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여기에서 싸워봤자 서로의 감정만 격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약이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 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차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다른 이유로 해당 부분이 상처가 나 있었던 것을 그녀도 모르다가, 차가 공장에서 나오는 시점에서 인지한 것일 수도 있으니… 진실은 저 하늘만 알 테니, 나도 참 답답하였다. 문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트집을 잡아 돈을 뜯어내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사건은 아직도 진실은 모르는 것이고, 그분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자, 그럼 이쯤에서 나는 또 책임을 전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정비공장 사장 같지 않은 얼굴은 도움이 된다.
“고객님, 지금 화나 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무언가 확인을 해볼 시간을 주셔야지요. 고객님께서 블랙박스를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저희도 직원들 모두에게 물어도 보고, 저희 내부 cctv를 통해 특이한 점은 없었는지 그래도 확인은 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장님도 안 계시니,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사장님께 보고도 드려야 하고요.”
나의 주 특기인 읊조림으로 고객에게 구구절절이 빌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시간을 벌고 싶었다.
‘제발… 제발 지금은 집에 가줘…’
나의 읊조림에 단계별로 언성을 낮추기 시작한 그녀는 결국 빠른 시일 내에 확인처리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차를 몰고 돌아갔다.
나는 cctv실로 들어가 낡아 빠져 버벅거리는 구형 cctv 한대와 선명한 신형 cctv 한대를 모두 켜 해당 차량이 입고된 시점부터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돌려가며 타임라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cctv실 마우스에 뽀얗게 앉은 먼지는 cctv를 확인할 때마다 내 날카로운 신경에 덕지덕지 붙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앞 범퍼 손상만 수리한 것이기 때문에 차 내부를 손 델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수리차를 세차하는 과정이나, 차량을 이동하는 과정은 cctv에 잡히지 않으니, 그런 과정에서 문제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란 불가능했다. 사실 이런 경우 고객 쪽에서 이것이 우리 과실임을 증명하는 게 맞다. 그러나 고객은 막무가내였다. 고객의 우김에는 방도가 없다.
고객도 억울하겠지만, 나도 참 억울하다. 이런 억울한 일이 3년간 계속해서 축적되어 오니 더욱 그랬다. 생트집을 잡아 원래 망가져 있던 것을 고치려고 하거나, 돈을 뜯어내려는 손님도 적지 않다. 물론 그날의 그 손님이 꼭 그러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 직원이 실수해놓고 잡아떼는 것일 수도 있으니, 기억력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한 일을 어찌하랴……
초창기에는 적극적으로 손님 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래서 그들이 떼를 쓰면 새로 해주기도 하고, 돈으로 보상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니, 이제는 괜히 나도 심술이 났다. 그들이 떼를 쓰고 기를 쓸 떼 까지 나도 쉬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일들에 이력이 난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도 쉽사리 그들의 불만을 듣지 말 것을 요구했다. 어쨌든 우리의 과실은 그들이 증명해야 하고, 그제야 우리의 보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이니까. 고객 감동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고 늘어지고, 물고 늘어졌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떼쓰기를 쉽게 들어주고 싶지 않은 욕구와, 귀찮아서 들어주고 싶은 욕구의 손익 분기점에 다다른 시점에 나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매우 정중한 사과와 함께……
세진모터스쿨 3년간 어떻게든 고객의 생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방어기제가 생겼다. 네가 나의 과실을 증명할 때까지 나 역시 호락호락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 그렇게 나의 마음에는 단단한 굳은살이 배겨갔다. 어차피 질 싸움이지만, 상대에게도 조금은 상처를 입혀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이래서 나도 어디 가서 진상고객이 될 필요가 있는 건가? 사장 입장에서 보니, 떼를 쓰고 억울해하고, 괴롭히는 손님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가서 오히려 더 착한 고객으로 살아가게 되고 있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정말 쓸데없는 공감능력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줬다. 상처 난 손잡이 부분의 전체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해주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장님의 진심 어린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자신이 생떼 쓰는 고객으로 오해받아서 몇 날 며칠을 마음고생하였다는 것이다. 이제야 내가 사장임을 드러낼 차례가 왔다. 늘 하던 레퍼토리 대로,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나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였다.
“고객님, 사실은 제가 사장입니다. 마음 불편하게 해 드린 점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가 사장님인데, 지금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대신 나와 있거든요. 저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공장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저런 상황에 대처가 많이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깨끗하게 새 제품으로 갈아 드릴 테니 마음을 풀어주시면 어떨까요?”
고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몸이 안 좋으신 건 거짓은 아니다. 으레 70에는 다양한 질환을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튼 그 ‘아버지의 몸이 안 좋으셔서’라는 포인트에서 마음을 열어주시는 고객이라면 그래도 진심이 통하는 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So, What?”이라는 태도로 나에 대한 공격태세를 더 강화하시는 분이라면 정말 작정하고 덤벼드는 ‘나쁜’ 고객이라는 나만의 감별법이 생겼다.
다행히 그녀는 마음을 열어주셨다.
“저도 그쪽에서 저를 너무 생떼 쓰는 사람으로 몰아가셔서 정말 속상하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네요. 아무튼 뭐 내일 그럼 차 갖고 갈게요.”
다음날 차를 갖고 온 그녀는 180도 다른 얼굴이었다. 새삼 새 제품으로까지 갈아줄 줄은 몰랐다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뭘까? 아마 그녀도 그 손잡이에 난 상처가 정말 공장에서 난 상처인지, 자신이 낸 상처인지 헷갈려서 미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상처는 정말 그녀가 낸 것일까? 아니면 아픈 아버지 대신 나와있는 이 착해 보이는 낙하산 여사장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는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손님의 1승 나의 1패였다. 1패 1패가 더해갈수록 나의 방어기제는 더욱 견고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것에서 누릴 수 있는 더 큰 자유와 평안함 때문에 나는 손님과의 전쟁에서 늘 패배했다. ‘안으로는 부드럽고 밖으로는 강한 리더십’ 그런 건 어느 드라마에서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