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의지했던 직원과의 이별…
인사는 만사라고 했던가…… 사장에게 좋은 직원은 하늘이 내려 주시는 축복이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세진모터스의 사장으로 있기 전까지는 반박의 여지없이 그러했고, 세진모터스의 사장으로 있는 동안은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내가 인복이 많다는 것을 어필해야, 직원들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장을 신뢰할 것이라는 이상을 추구할 정도로 나는 순진했으니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와 접었을 때를 비교하면, 처음에 있었던 직원 중에 끝까지 남아있던 직원은 단 3명뿐이다. 전체 인원이 20명 전후인 것으로 보면 15%만 남아있는 것이니,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업 운영 내내 인사관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것 같다. 후기에는 많이 안정화가 되었지만 늘 인사관리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 직원들을 대표이사의 자격으로 만났을 때 그 냉랭한 분위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남초 지역에 여자이고, 그들보다 가장 어리고, 낙하산이기까지 한 이 사람을 대표이사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해당 업종에 대한 문외한이기까지 하다. 내가 직원이었어도, 아니 나 스스로도 이해 불가한 상황이었다. 스스로에게 이미 진 내가 어떻게 그들 앞에서 대표이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정 도로 뻔뻔하지가 않다. 어떤 직원은 3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어떤 직원은 반년 후에, 그렇게 많은 직원들이 하나, 둘씩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한 명이 그만둘 때마다, 이 사업체가 어떻게 돌아갈까, 사람을 어떻게 빨리 채우지? 이 생각으로 전전긍긍했었던 것 같다. 내가 몸으로 때울 수가 없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절박했다. 그들을 이끌어가는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붙어있게 하는 것이 문제였다.
직원이 떠나갈 때마다 드는 기분이 있다.
바로 연인과 헤어질 때의 그 기분이다. 내가 애정을 갖고 의지했던 직원일수록 마치 긴 시간을 함께했던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는 듯 가슴속에 모래주머니를 얹는 기분이었다.
직원들이 사직서를 낼 때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갑자기 연차를 낸다 던지, 다른 직원과 저녁 약속을 하고 밥을 먹는다든지, 무언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붕 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날들이 며칠 지속되다가 “대표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라고 면담 요청을 하면 그제야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아, 그만둔다는 것이구나…’
이미 그만두기로 한 직원을 잡기는 어렵다. 급여를 올려준다고 해도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은 떠나 있다.
결혼 전 몇 번 연애를 한 적이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끌려다니듯 한 연애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어렵사리 교제에 성공한 연애도 있었다. 어떤 연애든 헤어짐을 통보받는 그날의 그 기분은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다. 최악의 헤어짐은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에게로부터 헤어짐을 통보받을 때이다.
가슴에 커다랑 구멍이 생긴 것 같이 하루 종일 멍 하다가, 이내 그 구멍은 모래주머니로 채워져 묵직하고 까슬까슬한 무언가가 명치에 하루 종일 얹혀있는 기분이 된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다가 자신을 자책해 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러면 이내 내가 그를 싫증 나게 했을 만한 사건들을 하나씩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꺼내어진 추억들로 인해 눈물짓다가, 아직도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현실을 부정하게 되고, 이내 어떻게 하면 그를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 생각의 회로를 안간힘을 써서 돌려보게 된다. 그가 나와 헤어지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내가 싫었던 것이고, 맞지 않았던 것이고, 확신이 없어서이다. 그것을 억지로 나의 노력으로 이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나만 더욱 비참해진다.
20대 때의 아팠던 거절의 기억…… 결혼 후 평생 그 기분은 갖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직원의 사직서를 받으며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많은 직원들이 세진모터스에서 사직서를 냈다. 인사 시스템의 문제, 대표자의 리더십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혼재하여 빚어진 결과일 터이나, 그런 것들을 점검해 볼 여유는 없었다.
나 같은 소상공인은 좋은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재원이 한참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직원과의 친밀한 관계, 신뢰관계, 성장 가능성 이런 것들로 한 명 한 명을 붙들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쏟아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는 직원들과의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은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경리직원이 사직서를 내는 날이었다.
“대표님, 이거……” 하며 사직서를 내미는 순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퇴사를 결정하게 하였을까, 나의 잘못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쉬운 원인은 ‘급여’ 일 테고, 그 다음은 근무조건일 테고, 그리고 업무의 분량, 그 외에도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를 섭섭하게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을 때, 그 자리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싫어”라는 말도 “그래”라는 말도.
무슨 이야기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신뢰하던 직원에게 사직서를 받을 때도 그렇다.
“안돼요”라는 말도 “알겠어요”라는 말, 그 어느 말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 어디 다른 곳으로 이직하시나요?”
겨우 생각난 말이 ‘이직하시냐’ 라니…… 마치 “딴 여자 생겼니?”라는 말처럼 구차하고 진부하다.
“뭐, 그렇게 되었어요. 격주 토요일 근무도 힘들었고……”
“그쪽에서는 주 5일 근무인가 봐요.”
“네…”
격주 토요일 근무는 항상 발목을 잡는다. 나 역시도 주 5일 근무제 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작은 기업에서 주 5일 근무제를 하려면 각 부서마다 사람을 한 명씩 더 뽑아야 하고, 부모님이 운영하시고 있는 다른 연결된 사업체들과의 연결고리 때문에 나 혼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직원들이 옮기는 이유는 단순히 급여, 근무조건 같은 한두 가지 이유만은 아니다. 이 시기에 이분의 업무량이 늘어났던 것도 있고, 1장에서 언급했던 또 다른 낙하산 인사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흐렸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퇴사를 결심한 그분을 어떻게든 잡고 싶었지만 이미 회사에 마음이 떠난 그분의 확고함은 마치 나에게 이별통보를 하고 나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냉정하게 끊어버렸던 그의 확고함과 흡사했다.
이 분이 퇴사 한 이후에, 나는 이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회계업무에 매달렸다. 꼼꼼하게 그녀가 정리해 놓았던 서류들을 보며, 다시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 연인에게 밤에 전화를 거는 일만큼 찌질한 일도 없을 것이다.
퇴사한 직원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그 못지않게 찌질하고 처량하다.
‘너의 인력풀이 고작 그 정도냐?’
맞다. 나의 인력풀은 고작 그 정도다.
구인 사이트 여러 곳을 통해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보면 볼수록 퇴사한 직원이 더욱더 생각났다.
“과장님~ 잘 지내셨어요?”
“네, 어머 대표님,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 다니시는 곳은 잘 다니고 계신가요?”
“네, 그렇죠.”
“그래요…… 혹시 그곳이 힘들거나 그러시면 꼭 다시 세진으로 와 주셨으면 해서 연락드려 보았어요. 급여도 조금 더 올려드리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
“네에, 지금 그래도 들어간지도 얼마 안 되었고. 일단 잘 적응하고 있어요.”
“그래요……”
너는 새 연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
너는 새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세진으로 돌아오고 싶다.
묘하게 유사한 착각이다.
직원이 퇴사한 후 약 한 달간은 이러한 착각 속에서 어떻게든 다시 원점으로 그 직원을 되돌리고 싶어 진다. 그러다 차츰, 차츰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새로운 직원을 뽑게 된다. 그렇게 퇴사한 직원과의 헤어질 결심을 마무리하게 되면, 새로운 직원에게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고,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