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속촉의 사람들

by 키리카

자동차 정비공장은 남초 업계이다. 이전에 여초 업계에서 일 해왔던 나는 처음에는 남초 업계의 터프함과 거침에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내 남초 업계에서 홍일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여초 업계에 있을 때보다 많은 배려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칠지만, 꽤나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정비공장에 있는 ‘우리 아저씨들’ 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영 꽝이었다. 순수하게 기계, 작업만 몰두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언어적인 소통이 능숙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들끼리도 자주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 처음에는 작업장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에 놀라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조마조마해하곤 했다. 혼자 마음속으로 끙끙대며 어떻게 아저씨들을 화해시킬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그 큰 소리는 싸움이 아니라 일상 대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큰 소리로 싸우는 것 같이 소통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진짜 귀가 안 들려서이다! 정비공장 안의 소음은 상상 이상이다. 그라인더, 컴프레셔,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건물 안으로 울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저씨들도 오랜 기간 기계 소음 속에서 작업을 해 오셔서 가는귀가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들의 목소리는 매우 크고 우렁차다.


두 번째는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비파트는 그나마 손님하고 대화할 일이 있지만, 판금 , 도색 파트는 손님과 대화할 일도 없다. 또한 대부분의 업무가 각 파트별로 분업화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오랜 기간 작업실에서 묵묵히 기계와의 싸움을 벌이다 보면 어느덧 대화 자체를 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들은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세 번째는 오랜 시간 도제 형태로 이루어진 업무 문화 때문이다. 남초 직군은 여초 직군보다 상하관계가 분명하다. 대부분 선배 또는 윗 직급이 하라고 하면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초창기에는 이러한 그들의 문화를 모르고 으레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 중에서도 책임자 급에 대해서는 부장이라는 직함을 주고는 했는데, 이는 기존에 있던 직원들에게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그들은 위계질서가 확실했고, 새로 굴러들어 온 돌의 횡포에 대해 참지 못했다.


그런 아저씨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나니, 그들의 거침 속에 숨겨진 부드러움이 오히려 따듯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욕쟁이 아저씨


우리 아버지가 가장 칭찬하시고 믿으시는 허 00 부장님은 자타공인 ‘욕쟁이 아저씨’ 이시다. 이분은 못 하시는 것이 없었다. 정비면 정비, 판금이면 판금, 도장이면 도장, 건물의 모든 문제까지도 다 해결하시는 분이셨다. 이분이 없었으면 세진모터스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장님! 어떻게요. 판금부 00 부장님 그만두신 다는데… 당분간 사람 구할 때까지 부장님이 판금 도장 같이 다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00 부장님이 그만둔다는 소식에 00 부장님을 불러놓고 허 00 부장님은 이야기하신다.

“뭐여. 000 너 왜 그만둔다는 거여. 니미 시~8, 야, 사람은 그래도 구해놓고 가야지 이 시~8로미!”


라고 욕은 하실지언정, 그만두시는 분들에게 술도 사시면서 따듯하게 잡기도 하시고, 회사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셨다. 허 00 부장님의 욕 퍼레이드를 들으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욕이 귀에 착착 감겼다.


허 00 부장님은 정말 부지런하신 분이셨다. 세진모터스 건물을 지키시느라 건물 한편에서 숙박을 하셨는데, 옥상에는 각각의 채소와 과일나무를 알뜰살뜰하게 심으셨다.

매번 수확철이 되면 직원들에게 상추며, 깻잎이며, 부추며, 호박, 고추 등등을 따 갈 수 있도록 밭을 공개하셨다. 밭에 올라가 부장님이 키워놓으신 채소들을 보면 어쩜 이렇게 좁은 공간에 튼튼하고 실하게 키우셨는지 부장님의 부지런하고 진실된 성품이 느껴지기도 했다.


부장님은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건물 지하에 물이 차오르는 날이면 새벽에 펌프로 물을 퍼내고, 막힌 저수조에서 직접 막힌 것을 퍼 내시기도 했다. 공장 설비와 건물을 관리하는 것에 외주를 주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다 따로 외주를 준다고 그 관리가 완벽해 지지도 않는다. 허 00 부장님은 회사에 손해가 나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외주를 주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업무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천후로 내 일처럼 해 주시는 허 00 부장님은 세진모터스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셨다.


그러한 그의 진심을 세진모터스 안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그분의 욕 세레머니를 들어가면서도 그분이 옥상에서 가끔 직원들을 위해 베푸는 치킨맥주나, 삼겹살 파티에 꾸준히 모이는 직원들을 보면 그분의 욕은 애교인 것 같기도 하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


세진모터스의 아저씨들은 대체로 그렇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였다. 거칠고 터프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마초적인 성향 때문인지 어린, 여자, 낙하산인 나를 많이 배려해 주었고, 그 배려함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첫날 가장 인상이 어둡고 무서웠던 이 00 팀장님이 특히 그랬다.


이 00 팀장님은 골초였다.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우고 계셨으니, 얼굴색이 좋을 수가 없다.

새까만 얼굴에 큰 키, 빼 쩍 마른 몸, 그리고 금목걸이…… 그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인생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은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되짚어 보게 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그가, 나의 점심을 가장 먼저 챙겨줬다.

첫날 점심시간, 나는 점심을 어떻게 누구랑 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같이 있는 여직원과 함께 식사를 하자니 카운터가 비게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점심 자체를 먹고 싶지가 않았다.

1장에 언급했지만, 세진모터스에 들어온 건 철저히 수동적인 삶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은 길로 억지로 끌려온 것 같은 기분에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점심시간이 되자 그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대표님 식사 안 하세요?”

그분의 얼굴은 분명이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는데, 언어가 담고 있는 뜻은 따듯한 내용이었다. 이상하게 그 얼굴에는 ‘생각이 없어서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가 몇몇 아저씨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여긴 밥이 너무 맛이 없어!”

식탁에 앉은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얼굴로 한마디 하며 물컵에 물을 따랐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수저를 세팅했다.


그날 밥은 정말 맛이 없긴 했다. 그 식당은 그 동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식당이었는데, 매번 김치찌개에 라면사리, 수회 재탕한 듯한 반찬…… 아저씨들의 성화에 여러 번 사장님께 다른 메뉴를 부탁해 보았지만, 그때뿐, 다시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로 돌아왔다. 그 맛없는 밥에 매번 “이 집은 너무 맛이 없어! 사장님 여기 너무 맛없어!”라고 거침없이 한마디 하는 그여도 매번 점심시간이 되면 언제나처럼 화난 얼굴로 “대표님, 점심!”이라고 나를 챙겨줬다.


일 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늘 화나 있고, 무서운 듯한 얼굴의 이면에는 솔직함과 따뜻함이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지만, 마음을 열면 수다쟁이가 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온 일, 정비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 진상고객 경험담 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공장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처해서 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욕쟁이 허 00 부장님이 건물 보수로 누군가가 필요하다거나, 판금을 하면서 정비 쪽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항상 이 00 팀장님을 불렀다.

“야 이 00이! 빨리 와서 이거 도와!”

“아, 왜 또 뭔데! 우리도 바빠!!”

“니미~ 시~8~ 우리는 뭐 안 바빠서 이러고 있냐? 시방 급하니까 빨리 오랑께~”


이렇게 투닥거리면서도 이 00 팀장님은 제일 먼저 달려가서 허 00 부장님을 도와주고 있다.


작업자들 사이에서도 이 00 팀장님은 허브 역할을 했다. 누군가가 그만두려고 할 때나,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이분과 술 한잔 하면서 풀리는 경우도 많았다. 또 그만둔 누구와도 연락을 하고 싶을 때 이분에게 종종 부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분은 단골손님이 꽤 많았고, 일부러 찾아오는 지인들도 많았다. 매번 자신이 직접 키운 사과며, 빵이며 먹을 것을 사 갖고 오는 손님도 계셨는데, 이 00 팀장님의 진솔함과 따듯함에 감동해서 오시는 분이었다.


나이 40을 먹으면 자신의 외모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분이 그런 무서운 얼굴을 갖게 된 것은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 감정 등의 영향을 받았을 터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진 모터스에서 아저씨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외모 이면에 숨겨진 따스함, 순수함, 솔직함을 선입견에 가리어져 영영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해 한 해가 가고, 내가 단단해질수록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겼다는 자만함을 갖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세진모터스에서 아저씨들을 만나며 벗을 수 있었던 오해와 편견을 다시 상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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