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공감능력 (2)

글로벌 경청자의 최후

by 키리카


“Is your job something like counselor? Because I’ve never seen someone who is listening as well as you especially in Korea.”


내가 몇 년 전 영어회화 수업에서 영국인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분은 다양한 나라의 영어교사 경력이 있으신 분인데, 한국인들은 많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듣더라도 흘려듣거나, 이야기의 중심을 놓지거나,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나 공감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외국인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의 경청자였다. 그런데, 내 직업이 정말 심리상담사 같은 일이었다면 빛을 발할 만한 좋은 능력이었겠지만, 사업을 할 때는 여간 쓸데없는 능력이긴 했다.


그 어느 날의 전화통화 역시 그랬다.

내가 그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본 옆의 여직원은 “대표님, 참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네요.”라고 감탄했다. 물론 그 감탄은 이내 대표님의 지나친 순진무구함(?)에 대한 걱정이 되었다.


그 전화의 내용은 지금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여보세요? 거기 세진모터스죠?”


“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언니, 있지, 나 차 사고가 났는데…”


언니? 처음 호칭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불안한 듯 속삭이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뭔가 만만치 않은 일에 엮일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경추에 강하게 때렸다.


“예, 말씀하세요.”


“그거… 있잖아요.. 차 사고 견적 같은 거.. 그거 좀 전화로 대충 알려줄 수 있나?”


“차량 수리 견적은 아무래도 차 상태를 직접 봐야지만 정확한 견적이 나올 수 있어요.”


“아… 그게… 지금 차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예요. 사거리에서 화물트럭이 대각선으로 오다가 받아버렸다니까… 그래서 내차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걸 보험사 놈들이 레커차로 끌고 가버리려고 하더라니까!!!”


“아무래도 차를 움직이지 못하면 레커로 이동해야 하긴 하죠…”


“아이참!! 이 언니! 모르는 척 하기는!! 내가 그놈들 속셈 모를 줄 알아요?”


“네?”


“내 차를 지들 원하는 공장으로 끌고 가서 왕창 부셔놓고는 수리비 왕창 청구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견적이랑 수리 범위까지 확인한 다음에 공장으로 이동시키고 싶다니까! 내 말 무슨 얘긴지 알아요?”


“아, 네, 네.”


사실 이 업계에서 그런 이슈가 왕왕 있기는 했다. 손님들에게 신뢰를 못 받는 것도 관례적으로 행해졌던 모종의 카르텔이 있었기 때문이니 손님들의 의심만을 탓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 손님은 계속 불안정한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언니, 내 말 무슨 얘긴지 알죠? 그죠? 언니가 내 이야기를 잘 알아듣네. 그러니까 견적을 직접 와서 봐달라는 거예요. 레커차 부르면 그놈들이 내 차에 무슨 짓을 할 줄 알아.”


“네, 고객님이 어떤 부분을 걱정하시는 건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레커차로 저희 공장에 입고시킨다고 하면 함부로 고객님 차 다른 곳으로 가지고 가거나, 어떻게 하지는 못할 텐데요.”


한참의 고객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이라도 고객을 안심시키려고 시도하면 고객은 버럭 화를 내었다.


“언니!! 지금까지 내 얘기 어떻게 들은 거야! 지금도 밖에 호시탐탐 내 차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이 부분에서 이상한 것을 느꼈다. 확실히 이상했다. 정상적인 대화는 아니었다. 거기서 빨리 내가 단호하게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하고 통화를 종료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 해주고 있었다.


그 당시에 공장장, 회계직 같은 굵직한 업무를 책임지던 직원들이 퇴사를 한 상황이라 나와 다른 직원들이 이리저리 구멍을 메꾸고 있던 상황이었고,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릴만한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부족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동차 견적 업무를 도와주고 있던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에게 방문해 차 견적을 직접 봐주도록 부탁을 했다.

동생은 흔쾌히 그녀의 집으로 가서 차의 견적을 봐주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30분 후.


‘010-****-**** 동생’


“어, 견적 봤어?”


“누나, 그 여자 미친 사람이야! 그 여자한테서 전화 오면 그냥 누나 전화받지 마! 다른 여직원한테 전화받으라고 해! 일단 자세한 건 사무실 들어가서 얘기할게!”


“어? 왜?”


자초지종을 물어보기가 무섭게 사무실의 전화벨이 울렸다.

‘삐리리리리리’

‘010-****-****’

나는 다급히 과장님에게 전화를 돌렸다.

“과장님, 과장님이 전화받으세요. 일단 아까 그 여직원 어딨냐고 찾으면, 저 없다고 하고,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메모만 전달하겠다고 하세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는 마치 호러영화 속에서 좀비라도 본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옆의 과장님은 차분하고 노련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세진 모터스입니다. 네… 네… 그 여직원분이요? 네… 그분 자리에 안 계시는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과장님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시면 안으로 들어오시죠.”


이 말을 마지막으로 과장님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왜요? 그쪽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어머, 이 여자 미친 여자 맞네요. 갑자기 아까 그 여직원을 막 바꾸라고 하더니, 내가 자리에 없다고 하니까 자기가 지금 세진모터스 앞에 있으니까 거짓말하지 말래요. 그러면서 아까 그 여직원 자기가 가만 안 둘 거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앞에 계시면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그러더니 전화를 뚝 끊네요.”


그제야 나는 나의 공감능력이, 경청 능력이 얼마나 쓸데없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직원들 앞에서도 부끄러워졌다.


동생은 사무실에 돌아와 놀란 가슴을 누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아니, 처음 가서 만났을 때부터 이 여자 행색이 이상한 거야. 흰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는데, 머리를 한 며칠 안 감은 거 같이 머리에 막 떡이 져있고, 어깨에는 비듬이 막 소복이 떨어져 있고…. 거기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막 몸을 움츠리면서 나보고 조용히 주차장으로 따라오라는 거야. 그래서 따라 가는데, 갑자기 길가는 아저씨를 보고 막 ‘이 미친놈아! ‘ 라면서 욕을 하는 거야! 그때부터 이 여자한테 대충 차 상태가 수리를 못할 상태라고 하고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지.

일단 견적을 보려면 키로수도 확인을 해야 하잖아. 내가 키로수 좀 확인해 보겠다고 하니까 차문을 절대 안 열어 주는 거야. 왜 내차 문을 열려고 하냐고 부들부들 떨면서… 그래서 나도 기회다 싶어 ‘키로수를 확인하지 못하면 견적 프로그램에 입력 자체가 안되어서 견적을 낼 수 없습니다. 저희가 못 미더우시면.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 직접 입고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자기가 그럼 오늘 자 신문을 앞에 두고 키로수를 찍어서 나한테 보내주겠다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그래서 그냥 키로수 확인 못하면 견적을 못 본다고 하고 줄행랑쳤지. 그랬더니 뒤에서 막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하는데…어휴.. 그 사람 내가 봤을 때 제정신 아니야!”


애초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느꼈던 경추의 싸늘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왜 항상 싸늘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인지……


그녀는 결국 본사에 고객 불만족을 접수했다.

그리고, 본사에도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이상한 이야기로 괴롭혔고.

결국 본사에서는 그녀에게 소모품 몇 가지를 지원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결국 그 소모품 몇 가지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아니, 그렇게 소모품까지 챙겨갈 정도면 진짜 정신이상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애초에 ‘작정’ 하고 덤벼들었던 것일까? 차라리 정신이상자처럼 행세하는 편이 더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튼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공감능력은 세상 쓸데없는 능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3화쓸데없는 공감능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