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펙의 역설

학벌이 뭣이 중헌디…

by 키리카

우리 엄마의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었다. 나 어렸을 때 만해도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님 학력과 직업을 기재하는 란이 있었는데, 왠지 그 란에 엄마의 최종 학력을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쓰는 것이 싫었었나 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그 밑에 엄마의 최종학력을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이라고 썼다. 어린 나에게도 그것이 막연히 좋아 보였나 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서초동에 있는 국립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였는데, 나름 추첨으로 가는 학교이다 보니 교육열도 심했고, 부모님들이 소위 엘리트이신 분들이 많았다. 반면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때였던 만큼, 인근에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도 같은 학교에 많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어린 시절부터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열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영업을 하는 우리 부모님은 그 안에서 별로 높지 않은 서열에 끼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친구 엄마가 변호사, 의사이거나,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인 것이 왠지 모르게 좋아 보이기는 했나 보다.


아무튼 나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대범하게 거짓으로 우리 엄마 학력을 ‘이화여자대학교’로 고쳐 써냈다. 선생님은 아마 나의 뻔한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 같다.


엄마는 6남매 중 넷째지만 첫 딸이었다. 위로 오빠들만 셋이 있었는데,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신 엄마는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일찌감치 외할아버지는 딸이 무슨 공부냐며 엄마에게 대학은 생각도 못하게 하셨다. 그 당시에는 많은 여성들이 그랬으니, 놀라울 것은 없지만, 그렇게 엄마의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으로 남게 되었다. 엄마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어린 나에게 들려주었지만, 여자여서 공부를 못하게 했다는 것이 불이익이라고 인지하지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가정환경 조사서에 거짓으로 기재하지 않게 된 시점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그것이 뻔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고, 사업을 하고, 일을 하는 엄마가 멋있고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이 드문 시절이었는데, 엄마는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면서 운전을 정말 잘했다. 가끔 학교에 준비물을 안 가져오거나, 비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져왔을 때, 공중전화로 엄마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준비물이나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하면, 엄마는 차를 운전해서 가지고 왔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운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면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져서 일부러 바쁜 엄마를 학교에 와달라고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사업수완도 좋았다.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물건을 팔면서도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 주의였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돌보는 것도 최선을 다했다. 늘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우리들의 먹을 것을 손수 만들어 주셨고, 철마다 김장을 수십 포기씩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존경했고, 엄마를 닮고 싶었다.


엄마는 실용주의자였다. 딸이 공부하고 싶은 대로 원 없이 공부하게 해주고 싶어 하시면서도, 사회생활, 경제활동은 꼭 해야 한다 주의였다.

일본에서 학사학위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대학원에 그냥 들어가면 안 되고 반드시 취업을 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세진모터스’ 입성도 엄마의 실용주의적 철학에 딱 맞는 커리큘럼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은 종이 위에서 끝나지만, 사회에서 배우는 세상은 몸과 마음에 익혀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세진모터스를 지나면서 엄마의 실용주의에 공감하게 되었고, ‘세진모터스쿨’ 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진모터스에서는 가장 가방끈이 긴 사람이 가장 일을 못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반면 가방끈에 상관없이 천재적인 업무능력을 보여 준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력은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회계의 원리에 대해 완벽히 꿰뚫고 있었던 그녀는 뭐든 바로바로 뚝딱뚝딱 이었다. 그녀는 멀티의 달인이었다. 회계 입력을 하면서 고객상담도 하고, 정비 견적서도 뽑았다.

그녀는 못하는 일이 없었다. 뭐든 주어진 일은 겁을 내지 않고 해내는 도전정신이 있었다. 사고차량 수리에 대한 견적은 꽤 난이도가 있는 업무였지만, 그 어려운 업무도 배운 지 3달 만에 척척 해내니 천재가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세진모터스같은 작은 기업에 있어서 이런 실무능력을 갖춘 천재들이 보배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어느 자동차 수리 업계에 내놓아도 회계업무는 물론 차량 수리 견적에 대해서 전문가였다. 그 복잡한 차량의 부품 하나하나까지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을 보면 그녀는 학창 시절 공부도 잘했을 법하고, 대학도 잘 갔을 법 한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이력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실무 천재들을 만나면서 나의 학벌이 나의 실력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학벌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좋은 학벌을 갖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것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본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좋은 학벌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재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인 것이든, 학벌만이 그 사람의 등급을 매겨줄 수는 없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그 학벌이, 사실은 부모님의 재정적, 정서적 지원이 없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음을 ‘세진모터스쿨’ 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여자 여서 가고 싶은 대학을 갈 수 없었던 엄마, 자신의 딸만큼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 덕에 학벌을 얻은 주제에, 더 폼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며, 배운 사람 행세를 하고 싶어 했고, ‘세진모터스’의 멋없음이 싫어서 도망가려고 했다니…… ‘세진모터스쿨’은 그렇게 나의 알량한 스펙은 자랑의 대상이 못 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해 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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