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알면서도 속지요
왜 사람들은 속지도 않을 뻔한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일까?
또 왜 사람들은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그분이 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어쩌면 진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숙해 보였으면 그런 뻔한 거짓말을 했던 걸까?
나는 또 얼마나 어리숙했으면 거기에 알면서도 속았던 것일까?
사실 그분에 대한 첫인상은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그분은 공장장님이 특별히 ‘모셔온’ 판금 부장님이었다.
내가 세진모터스에서 있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일은 좋은 기술자를 모셔오는 것이었다.
기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어떤 사람이 좋은 기술자 인지도 몰랐고, 어디서 그런 기술자를 섭외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철저히 공장장님 및 직원들의 인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술직으로는 드물게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면접을 보러 왔다. 이력서에 쓰인 정자체의 가지런한 손글씨는 그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6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어깨와 팔이 정장 핏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편견이라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판금이나 도장직에 있는 분들은 외적인 꾸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보통 오래된 낡은 운동화에 늘어진 청바지, 때가 탄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이력서에 대충 갈겨쓴 글씨로 00 공업사 00년 경력을 적어오고는 한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어딘지 모르게 프로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감 있게 자신의 기술력에 대해 소개했다. 자신이 쓰는 공구들이 따로 있어서 그것들을 갖고 온다고 했고, 그가 지금까지 대파된 차량들을 어떤 방식을 붙여왔는지 하나하나 그 공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뭔가 지금까지 단 기간씩 거쳐간 허접한 기술의 판금 부장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를 소개해 온 공장장님의 설명도 한 몫했다.
그런데 그와 이야기할 때 무언가 늘 경추가 저려오는 기분이 있었다. 세진모터스를 운영하면서 무언가 불안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면 그렇게 경추가 살살 저려왔다. 내가 인지하지 못해도 제6의 감각에서 느끼는 기운……
그는 어딘지 모르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할 때가 많았다. 마치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했다.
“제가 사실은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어서 지금 빚이 많아요. 평생 망치질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인데… 동업을 하다가 그만…… 지금 집도 다 담보 잡히고 참 어려운 상황이어서… “
첫인상이 너무 좋았던 그여서인지 그의 말들이 조금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그저 불쌍하게 여겼다.
그는 저녁까지 남아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고, 다른 직원들은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작업들까지 흔쾌히 받아서 했다.
나는 언제나 실력 있는 기술자가 절실했다. 오랜 기간 공석이었던 판금 부장 자리에 그처럼 실력 있는 사람이 들어온 것 만으로 나는 모든 신뢰와 호감을 그에게 쏟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동안 그의 거짓말에 하나 둘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거짓말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나하나 비상식적인 요구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원칙을 갖고 단호하게 첫 요구부터 안된다고 했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저 좋은 기술자가 너무 절실했다. 단호할 수 없었다.
“대표님, 저희 장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가 이번 주에 3일 못 나오게 되었어요.”
“네? 장모님이 돌아가셨다고요? 아이고…… 장례식장이 어디인지 알려주셔요. 저희 직원들에게도 알리게요. “
“아니에요. 제가 들어온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그냥 저 혼자 조용히 다녀올게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화환이라도 보내게 장례식장 정보 주셔요. “
“아니에요. 너무 멀어요. 제가 조용히 다녀오면 돼요.”
이상했다. 장모님 상이면 너무 가까운 것 아닌가? 대표자에게 정보를 전혀 주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왜 숨기는 것일까?
그렇게 3일을 쉬었다 온 그는 또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저… 대표님, 사실 저희 어머님이 광주에 요양원에 계세요… 제가 돌아가신 장모님 보니까 저희 어머님 생각도 나고… 돌아가시기 전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를 좀 주시면…”
“네? 아직 입사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유급으로 쉬시는 건 다른 분들과도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제 우리 어머니 사실 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래요… 제가 해야 할 작업들은 완벽히 끝내 놓을게요. 평일에 밤늦게라도요”
왜 나는 원칙에 의거해서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가 딱하기도 했고, 또 이전까지의 판금 부장들과는 달리 어려운 작업도 척척 해내는 그를 그저 100% 믿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그에게 유급휴가를 추가로 하루씩 더 주게 되니, 다른 직원들에게 불만이 쌓였다.
그의 술수는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저… 대표님, 제가 사실 지금 소송에 휘말려서… 소송비가 없어요. 월급을 한 달 치만 가불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안 그러면 제가 일요일에 다른 데서 또 일당을 뛰어서 벌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일당도 뛰면 안 되고, 가불도 안된다고 해야 하는데 차마 그게 안되었다.
처음에는 200만 원 무이자로 복지 차원에서 대출해 주기로 하고 차용증을 받았다.
점점 도를 더해가는 그의 사정들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지만,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그가 사기 같은 걸 칠 리가 없다고 굳게 믿었다.
‘하나를 양보하면 10가지가 기다린다.’
그는 정말 다양한 사연들을 내게 구구절절이 이야기했다.
자기가 어머니를 돌보면서 요양보호사 일을 잘하고, 지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있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위해 한 시간만 일찍 퇴근하겠다. (아니 왜??)
지금 이혼 소송 중이다. (뭐???)
지금 이혼 소송 중인데 자녀들이 자기 재산을 전부 압류해서 갈 곳이 없다. 공장에서 숙식을 하겠다. (뭐?????)
사실은 여자 친구가 있다.(뭐????????)
이때부터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있었던 내가 멍청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 첫 사연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의 이야기는 갈수록 가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여직원을 통해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민트색의 편지지에 정자체의 펜글씨로 쓴 손편지였다. 게다가 세로줄로 쓴 편지였다.
일본에서는 세로줄의 글을 자주 보았지만, 한글을 세로줄로 쓴 편지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
존경하는 대표님.
제가 이번에 이혼소송에 휘말려 매우 복잡한 심경에 글을 올립니다.
늘 저를 아껴주시는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대표님이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제가 소송에 필요한 비용이 3,000만 원인데, 무이자 대출을 한 번만 해 주시면 소송 끝나고 바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담보가 필요하시면, 제 차량을 담보로 하셔도 좋습니다.
정 00 배상
이 편지를 읽는 순간이 그에 대해 억지로 붙들고 있었던 모든 신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나를 얼마나 멍청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새삼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처음 200만 원을 대출해 준 것부터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회장님(우리 아버지) 핑계를 대고서라도 그의 모든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했다. 그럴 때는 나에게 핑계를 댈 수 있는 더 큰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인 것을 왜 활용하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대단한 스토리텔러다. 그 이후에도 그는 진위 여부가 의심스러운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했다. 이혼 후 여자 친구와의 동거 이야기, 여자 친구와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요구한 휴가와 휴가비, 대기업에 다니는 자녀들이 자신에게 소송을 건 이야기 등…… 내가 왜 그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줘야 했을까.
3000만 원 편지 이후 나는 그의 모든 부탁을 거절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한 달도 안 되어 그만두었다. 200만 원을 갚지 않은 채…… 나는 그가 200만 원을 입금할 때까지 급여를 주지 않기로 작정했지만 그러다가는 또 노동부 나으리들에게 혼날 수가 있다. 하는 수 없이 급여를 입금하고, 왕왕 짖어대며 200만 원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