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모터스 초창기에 유독 손님과 싸우고, 고객 불만으로 접수가 되는 어느 한 직원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고객에게 친절한 것뿐인데, 이 직원만 손님을 담당하면 블랙홀이 되어 나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는 그냥 모든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던 순진한 때다. 이 직원은 다른 직원들과도 전혀 어울리지를 못하고 겉돌았다. 작업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은 일체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부장을 부장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대표자들 모임에서 이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연세가 지극하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이 모임에 항상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오기만 했는데, 어느 대표님이 나에게 이 직원이 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귀띔해 주시기를 그 직원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사회성이 없는지를 여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 대표님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 사람은 4차원 또라이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무슨 잘난 척인지 나는 사람은 상대적이니 알고 보면 양쪽 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 직원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 사장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안 좋은 일로 나갔으니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나는 그래도 이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면 서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사람은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상적인 교만이 오랜 해안을 가지신 대표님의 현실적인 조언을 묵살한 격이 되었다. 그 직원이 잘하는 부분들을 찾아서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면, 나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그 앞에서 내 밑바닥을 드러낸 것...
그날도 어떤 손님들이 씩씩거리며 대표자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내 앞에서 그 직원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리고 차에 무슨 짓이라고 해 놓을까 봐 무서워서 그 직원에게 차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그 직원의 두 눈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사실 그 살기는 나조차도 여러 번 느꼈었지만 애써 외면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손님들도 만만한 손님들은 아니었고, 굳이 그런 손님 들을 모두 친절하게 대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의 문제는 선입견에 흔들리지 않을 선입견에 사로잡혀버린 것이다. 굳건히 선입견 따위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선입견은 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었고, 그 잠재된 마음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려버렸다. 지금은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냥,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로 화가 났을 때의 모습을 보였다. 나의 밑바닥이 드러난 거다.
그날 내가 한 대화의 녹취록을 일부분만 잘 따서 편집하면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대한항공의 모씨의 화내던 소리와 비슷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 사유는 오 대표 같은 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전 대표자 모임에서 그에 대해 경고하셨던 그 대표님 의 이야기였다.
“그 4차원 또라이는 도무지가 직원들하고도 소통이 안돼, 오는 손님마다 싸워, 결국에는 직원들하고 주먹 다툼하다가 경찰까지 왔잖아.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야. 오래 같이 있으면 좀 위험하지.”
그날 이후 며칠을 그가 칼을 들고 어둠 속에서 나를 찌를까 봐 불안에 떨었었다.
나를 보면 무슨 일이든 한참 하수다. 얼굴에 그냥 다 드러난다. 기쁜 감정, 화나는 감정, 슬픈 감정, 표정을 못 속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참는다. 어지간해서는 화나는 일인지 잘 모른다. 그만큼 무디고, 상황 파악을 잘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포커페이스라고 오해하는데, 정말 오해다. 진심으로 화가 잘 안나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참다 참다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이때 나의 마음은 “내가 이만큼이나 참아줬는데, 어디까지 더 참아줘야 하니” 딱 이거 다. 그래서 내가 화날 때는 정말 짖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이 모양새가 딱 도베르만 앞에서 왕왕 짖어대는 마르티스 같다. 마르티스가 막 짖다 보면 도베르만이 당황해서 “얌전한 줄 알았는데, 짖을 줄도 아네. 불쌍한데 그냥 내버려두자” 라며 가소롭게 생각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지 않겠는가. 불쌍하게 짖어대는 마르티스. 내가 화가 날 때면 늘 그런 모습이다. 내가 소리 지르지 않으면 도무지 내가 화가 난 줄 모르고 호구라고 보는 사람들.
이런 상황을 정말 많이 맞이했는데, 주변에 들리는 말은 하나같이 ‘흥분하지 마’였다. 아니, 내가 흥분을 안 할 수 있냐고... 나도 내가 조용조용히 말해도 사람들이 벌벌 떠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루는 어느 보험사 직원과의 통화를 하다가 생긴 일이다.
이 보험사 직원은 오랜 연륜이 있는 직원인데, 그래서 그런지 매번 깐족깐족 나를 약 올리고, 내가 못 알아듣게 이 말 저말 왔다 갔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일수였다. 듣다 보면 혼이 다 빠져나가고 복잡해져서, 아, 진짜 내가 틀린 건가 생각이 들어 그 직원의 술수에 넘어가기 일수였다. 그렇게 여러 번 당하고 나니, 그와 통화할 때마다 내 안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비슷한 패턴으로 나를 혼돈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차오르던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 과장님! 제가 모른다고 자꾸 저를 헷갈리게 하시려나 본데, 저도 알거든요!! 자꾸 이상한 말씀하지 마시고 입금하시라고요!!!”
결국 나는 여유와 연륜 따윈 없고, 그냥 감정에 흔들려 떼를 쓰는 아기 같았다. 그렇게 한번 질렀지만, 그는 여전히 깐족거렸고, 나는 며칠 동안 머리에 지진이 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드라마에서는 젊은 CEO들 참 딱 부러지게 여유 있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던데, 나는 참 멋이 없다.
그래도 그날 그렇게 버럭 하던 게 어떤 어필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험사의 담당자는 바뀌었고, 훨씬 똘똘하고, 일 잘하고, 예의 바른 직원이 우리 업체 담당이 되었다. 그리고, 새 직원은 적어도 겉으로는 나를 매우 어려워했다. 그렇게 나의 전투력은 한 단계 소폭 상승하였지만, 누가 들으면 참 가소로울 일이다.
또 한 번은 우리 업장의 맞은편에서 공사를 할 때 일이다. 우리 업장 바로 맞은편에 스포츠센터를 짓는 공사를 했는데, 서로 공사를 하다 보면 부딪히고, 불편한 일은 당연히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 몇 달은 소음이며, 분진이며 꾹 참고 지냈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그래도 내가 대표라고 나라도 나서서 저 악의 무리를 소탕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어린, 낙하산, 여자 대표이지 않은가? 내가 나서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 다.
그래도 한두 번 공사의 소음이 너무 심해서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리고, 그 소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없이 공사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점점 공사장의 횡포는 그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내가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였으니, 그들도 나의 배려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도로가가 공사인부들의 차로 꽉 찼고, 공사를 하는 동안 수시로 우리 쪽 입구에 자재를 쌓아놓거나, 차가 진출을 하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해서 현장소장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지만, 그때마다 주의하겠다는 말뿐,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더 심해질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공사현장과 연결하는 관 공사를 하면서 우리 쪽 입구의 반을 막아버렸다. 우리 업장은 차가 들어와야만 하는 업장인데, 차가 들어오지를 못하고, 공사장 측에서는 반만 열린 도로로 우리 손님들이 입구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를 하였다. 그러다, 진입 중 손님 차가 긇히는 사고가 났다. 우리 직원들도, 공사장 측도 당황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사장 측에서 우리가 차량 인도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우리 직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의 이성은 또 마비되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참고 참아왔는데, 이날의 사고도 결국, 그들이 지게차를 조금 돌려서 길을 막지 않고 작업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고가 아닌가... 어쩜 그렇게 사람들은, 한쪽에서 이해하고, 양보하기 시작하면 최후의 양보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받아내려고 하는가 싶었다.
결국 이날도 나는 다시 도베르만 앞의 마르티스가 되어 왕왕 짖었다. 그들이 덮어 씌우려고 하는 우리 직원을 생각하니, 나는 더 용감하게 맞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 다. 그리고, 또 우리 손님이 보상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또 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필사적으로 짖어대다가 결국 같이 일하고 있는 동생이 보다 못해 경찰을 불러줬다. 손님은 그냥 누구든 보상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고, 나는 필사적으로 우리 직원의 잘못이 아님임을 지켜내야 했다.
결국, 공사장 측에서 수리비를 보상해 주기로 함으로써 일단락 마무리되었다.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영업방해를 하려는 일종의 시도가 보일 때면 또 나서서 왕 왕 짖어댔다. 그 꼴이 상대측에서는 우습고, 가여웠을 테지만, 나는 그렇게 외쳐대는 것 이외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흘러 흘러 우리 앞자리의 공사가 끝났고, 나는 한층 더 히스테리컬 해졌다. 작은 것 하나를 양보하면 줄줄이 양보할 것이 10 개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우리 아버지의 명언을 가습 깊이 세기게 된 것이다.
문득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싸워왔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고상한 척 편하게 좋은 말로 하면 배려심이겠지만, 어쩌면 게으름과 귀찮음으로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 없이 살아왔는데, 그런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하지만, 마르티스는 언제까지나 마르티스일 뿐, 아무리 짖어대도 상대방에게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그런 내가 도베르만으로 유전자가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르티스는 마르티스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우선 이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 앞서, 이번장을 매우 개인적이고, 편협적인 시각으로 쓴 글임을 강조한다. 나의 아주 적은 경험으로 인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맞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오해가 없이 가볍게 읽어달라는 부탁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번 이야기에는 특정 브랜드 차(C00)를 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해당 브랜드 차의 손님들과 악연이 정말 많았지만, 해당 차를 타는 정말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절대로 그 브랜드를 타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고, 내가 경험한 여러 사례들의 손님들이 하필이면 그 브랜드의 차량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당 브랜드의 차의 이름을 언급하게 되었다는 점을 먼저 명확히 한다.
사람 성향과 차종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겠나 싶지만, 어쩌면 그렇게 힘들게 하는 손님들은 해당 차량의 차주가 많은지 놀라울 정도였다. 너무 많은 손님들이 있었지 만 그중 BEST 3만 골라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 차 될 즈음의 일이었 다. 유달리 그 달에 이상하게 꼬이는 일들이 많아, 그날 손님의 화내는 모습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던 일이다. C00차를 중고로 사면서 이것저것 수리를 하러 온 손님이었는데, 해당 차량의 수리비를 중고차 업체에서 받아내는 모습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차와 손님을 마주할 때 항상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날 다른 C00차량의 차주의 갑질 때문에(하필 동일한 날에 벌어진 일이다.)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들던 차, 이 고객이 퇴근 시간 즈음 씩씩거리며 “사장 나오라고 해”라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날 오전에 차를 입고하면서 차량 문쪽에 들어가는 어느 부품을 교체하겠다고 하였다. 그날 정비기사님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 당일 작업이 어렵다고 누차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꼭 그날 안에 작업을 해서 가지고 가야 하니, 어차피 그 부품의 전부를 갈지 말고, 부품을 구매한 부분의 일부 문제만 되는 부분을 갈아달라고 했다. 물론 정비기사님은 그렇게 하게 되더라도 부품값의 일부만 청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청구가 되니 감안하셔야 한다고 설명을 누차 했다고 한다. (일부 부분만 사용하더라도, 부품을 통으로 구입해야 하기 때문) 고객에게 서명이라도 받았어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각박해진다.
결국 정비기사님은 그날 퇴근시간을 넘겨가며 해당 작업을 땀을 뻘뻘 흘리며 하고 계셨고, 손님은 작업시간이 늦어져 그날 매우 중요한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을 못 지켰다며 그 손해배상을 어떻게 할 거냐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왜 그렇게 중요한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이 있으면서 꼭 그날 수리를 해야만 했을까? 작업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음을 누차 설명했음에도 왜 굳이 그날 그 수리를 했어야 할까. 차량 외관 작업이었기 때문에 운행에 큰 지장을 주는 사안도 아니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꼭 ‘급하다’라고 하는 차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어쩌면 애초부터 시비를 걸려고 시간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급하다’라고 하는 차들의 수리는 웬만하면 거르고 싶어 진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의 그 C00 차도 ‘급하다’라고 시작된 차량이다.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을 늦게 된 금전적 보상이라니!!! 어이없지만, 간혹 있는 일이긴 했다.
조금 더 마음을 굳게 먹어도 되었는데, 우리가 충분히 설명했었으니 꺼지라고 해도 되는 일인데, 나는 손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비슷한 일들이 축적되어 오다 어느덧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손님은 살짝 당황하였다. 저 여자가 미쳤나……
“흑흑, 어흑, 고객님, 제가 사장이고요… 고객님이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신지 모르겠지만… 저도 참 힘드네요. 저도 이 일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직원들이 제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은 막무가내일 때도 있고. 정말 힘들네요. 오늘따라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민망한 장면이다. 민망함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냥 가슴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다. 손님은 조금 당황해했지만 일관되게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분은 아마도 처음부터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요? 그건 댁의 사정이고! 제 손해배상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으허엉~~ 고객님 정말 왜 이러세요.”
그날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이미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시각. 아무도 나를 달래줄 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고객의 마음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드라마… 아니 개그프로에서라도 이런 상황이면 조금 마음에 동요가 오지 않나? 진짜 독한 고객이었다. 내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나?
나의 울음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사에 고발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채 차를 끌고 가버렸다. 수리비를 고객이 아니라 중고차 업체에서 주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면, 손님은 수리는 수리대로 받고, 중고차업체에서 받는 수리비까지 자기가 챙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극한의 손님들과 계속해서 만나게 되다 보니 세상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관되게 손해배상을 주장하던 그는 결국 협력사인 자동차 메이커 본사에 우리 업체를 고발하였다. 물론 우리가 그 손해배상을 해 줄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본사에서는 엔진오일이라도 한번 갈아주고 고객을 달래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공짜 엔진오일 1회 교환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면 그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걸까? 현금 보상을 원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보험사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는 그 C00차량…… 하필이면 왜 우리 공장으로 들어온 건지…
보험사들한테도 우리가 호구 잡힌 건지, 꼭 다른 곳에서 수리가 거부되는 차는 우리 공장에 들어온다. 그날의 그 차주도 들어오자마자 판금 도색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 무조건 판금으로 해 주세요! 교환은 싫습니다.”
* 차량 외판 수리 방법으로 판금을 할 경우에는 찌그러진 부분을 피는 것이고, 교환을 하면 새 제품으로 교체를 하는 것이다.
“고객님, 판금으로 할 경우에는 이 범위가 넓어서 깨끗하게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슬라이딩 도어는 철판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울 수가 있어요.”
우리 공장의 판금부 막내 손주임이 고객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이 시기에 하필이면 공장장 역할을 할 사람이 우리 공장에 없었다. 공장장 역할을 하신 분이 그만두셔서 수리 견적을 회계담당 여직원이 대신 맡아서 해주고 있을 때였다. 사고차에 대한 상담은 막내 손주임과 그 여직원이 담당하고 있어서 아마도 손님은 그런 우리가 자기 맘대로 흔들기 좋은 상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그 정도 기술도 없으세요? 이 정도면 판금으로 충분히 가능하죠. 부품 교환하면 중고차 가격 떨어져서 그런 건 싫고. 무조건 저는 판금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고객은 확고했다. 추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차 수리의 경우 일부러 판금을 유도해서 수리 완료 시 마음에 안 든다고 떼를 쓰며 자기 부담금 환불을 받아가는 수법을 쓰는 차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분도 그런 블랙리스트 안에 드는 분이셨단다.
순진했던 우리는 최대한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저희가 최선을 다해 펴 드리긴 하겠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철판이 조금 울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셔야 합니다.”
“에이, 깨끗하게 해 주세요. 이 정도면 뭐 어려운 것도 아닐 것 같은데……”
그리고, 수리 완료일……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인지…
내가 보기에 우리 판금부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저렇게 새것처럼 펼 수 있다니, 내 눈에는 신통하기만 했다. 그러나, 고객은 예상 시나리오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뭐예요! 판금을 이따위로 밖에 못해놓고 자기 부담금을 내라고 하는 거예요?”
“고객님, 처음에 설명드렸듯이 수리 범위가 넓어서..”
“아니 제가 그걸 왜 모르겠냐고요.. 차 수리 한두 번 해보겠어요? 그 정도 기술도 없어요 여긴? 그러면서 무슨 차 수리를 한다는 거예요?”
고객은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설명해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재작업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재작업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재작업에 재작업에 재작업까지 요구했다.
“고객님, 이렇게 계속 재작업을 하면 철판이 더 울어버립니다.”
“그럼 이따위로 수리했으니 자기 부담금 못 내죠!”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4번의 재수리를 했지만, 그는 끝까지 불만족하다고 이야기했고 자기 부담금을 끝끝내 내지 않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고객은 우리 공장이 자신이 자차 가입한 보험사와 제휴를 맺은 곳인 줄 알고 일부러 보험사에 민원까지 내면서 자기 부담금을 내지 않는 전력이 있는 고객이었다.
‘000-0000-0000 **보험사 ***과장’
“과장님, 안녕하세요.”
“어휴 대표님, 고생 많으시지요?”
“예…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희는 정말 4번도 재수리를 해 드렸는데 고객님이 끝까지 저러시네요…”
“네.. 그분 원래 다른 곳에서도 한번 그래서 자기 부담금 안 내신 적 있어요… 이게, 저희도 협력공장이라 고객님이 협력공장 문제 삼으면 골치 아파지는데… 그냥 공장 쪽에서 자기 부담금을 반만 받으시는 걸로 해주시면, 저희도 어떻게 고객을 좀 달래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뭐라고요? 자기 부담금을 반만 받으라고요?”
“저희가 나머지 반은 다른 수리에 조금씩 얹어서 채워 보겠습니다.”
보험사의 갑질. 보험사의 전형적인 수법! 악성고객들에 대한 불만을 공장에 떠 넘기고, 다른 수리 건에 수리비를 메꿔준다는 얼토당토않은 사탕발림 같은 술수!
(거의 대부분의 담당자들은 당시 상황만 모면하기 위해 저렇게 이야기해 놓고, 나중에 잊어버리거나 담당자가 바뀌기 일수였다.)
하지만 어쩌나, 싸워 봤자 갑님 보험사에게 밑 보이기라도 하면 그나마 없던 수리 물량도 끊기게 될 판이니 그러자고 하는 수밖에.
결국 그 손님이 자기 부담금을 반만 내는 것으로 이 일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C00차를 타는 손님 들 중에 비슷한 방식으로 ‘진상’을 부린 건이 수 건 있었다. 이러니 내가 C00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이렇게 사람이 또 경험치에 의한 선입견을 갖게 되나 보다.
C00 차는 운전이 꽤 어려운 차이다. 차체가 커서 코너링을 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우리 공장은 C00 차가 특히 많이 들어왔는데, 주차 차량과, 수리차량 등이 엉키다 보면 공장 안에서 차량 사고가 나기도 했다. 물론 공장 안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직원들의 부주의고 나의 책임이 맞다. 어찌 되었든 시스템적으로라도 사고가 나지 않게 보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 것이니까.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C00 차의 차주들은 차 사고가 나면 꼭 차량의 수리 외에도 금전적인 추가 보상을 원했다.
그중 한건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그녀와의 첫 통화는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세진 모터스죠? 거기 외부 세차도 하나요?”
“네, 외부세차도 합니다. 차종이 어떻게 되시죠?”
“C00이요.”
“네, C00차는 외부 세차비가 42000원입니다.”
“아, 그래요? 제가 그날 아침 일찍 맡겨놓고 오후 2시쯤 찾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이때부터 뒷목에 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근처에 주차공간이 없어서 간혹 주차를 목적으로 엔진오일 교환을 맡겨놓고 한참 뒤에 찾으러 오거나, 세차를 맡겨놓고 몇 시간 후에 찾으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분의 경우도 그런 것 같았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주차는 해야겠고, 전체 세차비는 비싸니, 외부세차만 한 상태로 차를 몇 시간 주차하려는 목적이 있는 듯했다.
여기에서 딱 잘라 안된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거절 장애가 있는 나는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거절을 하지 못했을 때 꼭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는 세차하셔도 두 시간 안에 찾아가셔야 하고, 추가 주차비를 내시는 것이 원칙이거든요. 일단 이번에는 처음이시니까 주차해드릴게요. 요셔요.”
나는 어차피 있는 공간에 주차를 한두 시간 더 해드리는 것이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생색 정도 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아침 8시 반으로 예약해 주세요!”
그렇게 그녀는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차를 갖고 왔다. 그리고, 뒷목의 싸했던 그 느낌 그대로 세차 이후에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주차로 들어온 차들이 많았고, 그녀가 차를 가지러 오기로 한 2시경에 주차 차량과, 수리차량이 한데 뒤엉켜 세차장 아저씨들이 차를 정리하고 있었다.
“끼이이이 이익~~”
하필이면 그때! 그녀의 C00 차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기둥에 오른쪽 슬라이딩 도어를 긁고 지나가 버렸다. 세차장 아저씨가 차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기둥 쪽의 사각지대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황당하다는 표정은 이내 짜증으로 바뀌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차를 어떻게 이렇게 긁어버릴 수가 있어요!!!!!!”
우리는 연신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차를 깨끗하게 고쳐주기로 했고, 렌터카도 제공하겠노라 했다. 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쉬이 달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추가 “금전적인 보상” 문제로 몇 날 며칠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남편까지 합세하여 “중고차값이 떨어지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은 어찌할 것이냐”라며 사무실에 찾아왔다.
물론 그들의 화가 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차를 긁었으니 아무리 차를 고쳐준다고 해도, 화가 나는 마음에 대해 추가적으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애초에 주차를 목적으로 기본 주차시간 이외의 시간까지 차를 맡기려고 했던 그들의 목적을 생각하니 나 역시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런 비슷한 류의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책임의 범위가 법적으로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따져보게 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던가. 나는 법을 최소한의 방패로 삼아 보험사 뒤에 숨는 법을 터득하였다. 물론 깊이 따져 들어가면 그들이 추가 금전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그들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떼쓰고, 괴롭히는 것까지 해보고 안되면 포기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떼쓰고 괴롭히는 것을 귀로 받고, 가입되어있는 배상책임보험회사를 방패막이 삼는다.
“고객님, 저희도 압니다. 고객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지요. 저희도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이고요. 차량 수리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배상을 해야 할 것이 있으면 보험사 측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보험회사를 방패막이 삼아 그날의 그 건도 차 수리와 함께 어렵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일이 그 건 하나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C00 차와의 악연은 계속되었고, 행여나 주변에서 지인이 C00 차를 사고 싶다고 하면 지금도 적극적으로 말리게 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C00차를 갖고 계신분이 계시다면 나의 알량한 경험에 의해 생긴 편협한 선입겹에 대해 용서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