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호구” 내게 늘 붙여져 있었던 별명이다. 늘 귀가 팔랑거려, 주변의 시식코너를 지날 때마다 긴장하고, 해외여행에 가서는 늘 면세점 물건에 혹해서 사는 그 사람, 그렇다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아무튼 살면서 “돈독”이라는 단어로 나를 수식하는 일은 일어날 확률이 희박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리하여 우리 부모님은 늘 나보고 “네 몫을 챙겨라”라고 가르치셨고, 특히나 사업을 하면서는 하나의 법칙처럼 그것을 가르쳐주시고 숙지하도록 하셨다.
세진모터스쿨 전공필수과목! ‘수금’. 손님에게 작은 돈 하나 놓치지 않기!
서비스는 생색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것을 꼭 놓치지 말 것! 우리 어머니께서 30년 서비스업을 해 오시면서 터득하신 노하우이다. 손님의 입장에서 거의 대부분의 인생을 지내온 나는 사장이 되면 왜 그렇게 속물(?) 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속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손님도 손님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고, 각 손님의 성격과 배경을 내 이 작은 속으로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과도한 친절의 끝은 항상 그 끝이 새드엔딩이었기에… 어머님의 가르침은 나에게는 공식, 법칙과도 같은 것이었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참 별것 아닌 것 같고 으레 마땅히 받아야 할 것 같은 서비스들이 있다. 아마도 카페나 식당에서는 냅킨,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 같은 것일 것이다. 이것들을 혹 돈을 받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개수를 제한하던가 하면 굉장히 야박한 사장님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대량으로 구매하는 부자재가 마냥 손님에게 퍼드릴 수 있는 무한의 것이 아니다. 엄연히 ‘돈’을 지불하고 구매해야 하는 돈덩어리 인 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닐 포장재를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많이 정착이 되었지만, 초창기에는 얼마나 많은 실랑이가 있었던가… 그리고, 이마저도 “환경부담금”이라고 해서 어떠한 대의적인 명분이 있어야만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작은 서비스 하나 때문에 업주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손님은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늘 작은 서비스를 남발하지 않도록 강조하였다.
작은 서비스를 남발하면, 손님들은 그 고마움을 알기 어렵고, 주다가 안 주면 더 큰 실망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야 말로, 모이면 큰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서비스의 남발, 세진모터스에 적용해 보면 무엇이 있을까.
바로 ‘타이어 공기압’이다.
자동차 정비공장, 자동차 정비소에서 으레 무상으로 제공해 왔던 ‘타이어 공기압’
물론 우리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내가 있을 때 까지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생각해보라 ‘공기’에 돈을 받는다고 하면, 이 업주가 얼마나 야박해 보일까.
그러나, 우리 어머니께서는 ‘타이어 공기압’에도 무조건 돈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타이어 공기압’은 그냥 공짜 ‘공기’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어 공기압’은 컴프레셔를 가동하여 공기에 압력을 주어 타이어에 주입한다. 또한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도 타이어 공기압을 넣을 수는 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기 압력이 잘못 빠져나가 공기압 기기의 센서를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자가 공기압을 주입하는 것이 정석인데, 기술자들이 한가할 경우야 큰 무리가 없이 서비스할 수 있지만, 이미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경우, 타이어 공기압만을 위해서 움직이면 흐름이 끊길 수 있다. 또한, 차량이 공장 안으로 유입되는 것만으로도 큰 혼잡을 가중시키고, 사고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것만으로도 큰 비용이라고 하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타이어 공기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그 리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의 후기를 보던 중 내가 이렇게 평가될 수도 있구나, 신기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어쩌면, 내가 우리 어머니의 가르침에 매우 충실하여, 어떠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실행에 옮긴 결과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돈독 오른 젊은 여사장이 운영하는 곳, 너무 불친절합니다.”
이 리뷰를 본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나의 가족들은 웃었다.
“너보고 돈독 오른 젊은 여사장이래?”
“어머, 네가 돈독이 올랐다니… “
짠 푼에 목숨 거는 젊고 싹수없는 여자. 대성공이다. 글로벌 스탠더드 호구로 불리던 내가 돈독이 오르고야 말았다니. 이렇게 한 단계 도약하고 마는 것인가……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는 큰 패배의 검은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일의 전말은 이렇다.
여느 날처럼 어느 손님이 와서 타이어 공기압을 ‘공짜로’ 넣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정석대로, 어머님께서 가르쳐주신 이론대로 읊었다.
“공기압은 5000원입니다.”
손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비기사님이 와서 공기압 넣어주신다고 해서 왔는데, 돈을 받아요?”
너무나 전형적인 공기압을 공짜로 넣으려는 수법이라고 나는 으레 짐작했다. 일부러 내 쪽의 과실로 몰아서 공짜로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는 그들에게 여러 번 당해왔으니, 이번에는 당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손님의 진실을 알아가려는 마음보다 저만치 앞서 있었다.
이때만 해도 정비공장 사장으로 3년 차가 되어가니 정말 되지도 않는 억지 들에는 이력이 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지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머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단.칼.에.쳐.내.기’ 방법이다. ‘흥분하면 안 된다.’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정중히(? 아마도 그분은 정중하다고 느끼지 않으셨을 것 같지만) 말했다.
“고객님, 원래 공기압은 5천 원 받는 것이고요, 정비기사님도 오신지 얼마 안 되셔서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
“그럼 여기가 잘못한걸 왜 저보고 돈을 내라고 하세요?”
지금은 상세한 대화 내용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러한 패턴으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물론, 나의 본디 성정으로는 까짓 거 5천 원 안 받고 손님한테 우리 쪽이 체계가 안 잡혀 있어서 혼란드려 죄송하다고 하고 손님을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푼 한 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나는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 보다도, 어쩌면 나의 경험 없는 어리숙한 젊고 여자인 낙하산으로 보이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한층 더 강퍅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 흥분하지 말기로 한 심호흡은 온 데 간데없고, 나의 목소리는 한층 더 커져갔다. 급기야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드신 정비기사님께도 화를 내고야 말았다. 나름의 전략이었지만 무참히 실패한 전략이었다.
“00 기사님, 공기압 돈 받는 거 아시면서 그냥 넣어준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해요?”
기사님의 표정은 굳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악평 안에 녹아들었다.
‘돈독 오른 젊은 여사장 매우 불친절, 나이 드신 기사님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가지 못할 곳’
그러나…… 결국에 돈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했다. 손님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돈을 내지 않고 공기압을 보고 갔으며, 매우 기분이 언짢은 상태로 “다시는 여기 오나 봐라”라는 말을 내뱉고 갔고, 심지어 포털사이트 지도에 1점짜리 별점과 “돈독 오른 여사장”이라는 명 타이틀을 남겨 주셨다.
돈도 못 받고, 나도 화나고, 손님도 기분 나쁘고, 다시 오지도 않는다 하셨으며, 악평 테러에, 직원의 기분까지도 잡쳐버린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참을 돌아와서 지금 생각해보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결과가 맞는 결과인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합한 질문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싸웠던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다. 한 가지 배움을 얻으면 곧이곧대로 융통성이라는 것은 전혀 발휘할 줄을 몰랐다. 이 사건도 그랬다. 5천 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작은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5000원을 지키는 열심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어차피 받아내지 못할 5000원이었다면 친절히 서로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 가는 것도 나의 인생에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 주어진 호구적 외모는 어쩌면 그렇게 사용하라고 주신 재능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서로의 마음을 다쳐가며 피 튀기게 5000원을 사수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우리 아버지가 누누이 강조해 오셨던 말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렇지 않지만, 간혹 작정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이 있다. 이럴 때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한 가지 양보를 위해 원칙의 성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하면, 서서히 문은 더 크게 활짝 열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항상 그 한 가지 요구는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 또한 악의적으로 처음부터 10가지를 요구하려고 작정하는 경우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가지의 마법은 구하는 사람의 마음마저 이것 이상도 요구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초기에는 이런 작은 한 가지들이 10, 50, 100까지 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경험치가 하나하나 쌓여가는 동안 수금의 제2법칙 ‘한 가지를 양보하면 10가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내 뇌리 속에 더더욱 각인이 되어 버렸다.
5천 원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 참 길고 긴 변명을 했다. 그렇게 난 한 가지의 저지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순간순간마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의 그 5천 원은 그대로 5천 원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해 버린 것이다.
그날의 전투는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시작된 것이다.
이 전투의 결론은 장렬한 패배로 끝났음을 앞서 설명했다.
만약에 나의 목표가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라면 어떠했을까?
‘한 가지를 양보하면 10가지가 기다리고 있다.’
이 명제에 지레 겁먹고 나는 10가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였다.
그러나, 거꾸로 내가 만약 애초에 10가지도, 그 이상도 양보할 의향이 있었다면 이 전투는 어떤 결과로 나왔을까? 물론 10가지 이상의 요구에 응하느라 그날 하루 역시 이를 박박 갈고 다시 한번 제2 수금 법칙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목표, 승리의 기준, 지켜야 할 것이 ‘돈’이라면 말이다.
만약에 일흔 번에 일흔 번도 더 용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어떻게 될까? 이 가르침을 곱씹어 보면, 이미 예수께서는 상대방에서 ‘한 가지를 양보하면 10가지가 기다리고 있다’라는 순리를 꿰뚫어 보고 계셨을 것이라. 그리고 그 순리에 대항해 싸워 이기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그 순리대로 살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을 요구하셨다. 무엇이 이기는 것이고, 무엇이 지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애초에 정 반대 방향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돈’은 세속적으로만 바라보고 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조차, 늘 전쟁 속에서 살아왔을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루어낸 치열한 승리 덕분임을 잘 안다. 늘 앞에서 싸우고 끝까지 승리해낸 부모님의 방패 안에서 자라온 나이기에 ‘차라리 10가지도 양보해 줘’라는 나약한 소리가 나오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패배는 쓸데없이 안 되는 것을 따라 하다가는 ‘역풍’을 맞게 된다는 처절한 교훈을 안게 되었다. 그날 나는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돈을 지키는 것’ 보다는 ‘10가지를 양보하라’ 인지도 모른다는 자기 위안과 함께 그것이 내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부모님 몰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