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 낙하산

by 키리카

1-3. 어린, 여자, 낙하산……


세진모터스 첫 출근날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보통 첫 입사는 제일 말단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가장 높은 자리인 대표이사로 첫 출근을 하는 기이한 경험을 그날 해 보았다.

가장 높은 자리임에도 나는 그곳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바로 어린, 여자,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다.


세진모터스는 자동차 종합수리점이다. 종합수리점은 흔히 말하는 카센터에서 할 수 없는 작업들, 이를테면 판금, 도색까지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업계의 기술직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다. 거칠고 힘든 일이라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보니, 40대만 되어도 이 업계에서는 꽤 젊은 축에 속한다.

또한, 자동차는 남성 위주의 업종이다. 이것이 사회적 편견이라고 누군가는 반발하겠지만,

해당 업계에 종사하는 남자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은 팩트이다.

자동차 수리 관련 조합 모임이나, 협력업체 대표자 모임에 참석할 때면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 원래 내가 속했던 예술기획 업종은 대표적인 여초 업종인데 반해 자동차는 대표적인 남초 업종이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나는 그 이전에 배운 실무경험을 철저히 무시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야 했다.




세진모터스에 첫 출근하는 날도 30대인 나는 그중에서 가장 어렸다. 세진모터스에서 세차를 담당하시는 반장님은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계셨던 분이고, 이분은 나의 아버지와 동년배이시다. 또, 정비직원분들 중 몇 분은 내가 대학생 때 계셨던 분들이 다른 곳에서 일하시다 다시 세진모터스로 오신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이 잘 기억이 안 났지만, 그분들은 나의 풋풋했던 시절을 아주 잘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이런 분들을 앞에 놓고 뻔뻔하게 ‘나는 대표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깜량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이지도, 소극적이지도 않기로 작정했다. 맞지 않는 무엇인가를 너무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려다 부러진 경험들이 있기에, 나의 목표는 그저 3년 버티기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세진모터스 대표이사 오영주입니다. 모두 잘해 봅시다.”


나의 짧은 첫인사였다. 나름 짧고 굵게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 같았다. 모두 나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어’

‘너 대충 대표이사 이름만 걸고 월급 받으려는 거 알아. 그래도 내가 알아서 기어는 줄게.’

‘만만해 보이는데 월급 좀 올려달라고 할까?’


그곳의 공기는 매우 어둡고 무거웠다.

그렇게 그날 하루는 시작되었다.


아침조회 소집, 매번 분위기는 이렇다.




애송이 대표 길들이기


직원들과의 인사가 끝나고, 내가 없는 동안 세진모터스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던 유00 이사님은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이분은 내가 오기 전부터 소문이 자자한 분이셨다. 이분과 안 싸운 직원이 없고, 많은 직원들이 이분 때문에 사표를 쓰고 나갔기 때문에 나에게 이분은 ‘트러블메이커’라는 선입견이 견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듣던 대로 윗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수그리는 사람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의 윗사람이었다.


“아이고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직원들 분위기가 조금 칙칙하지요? 하하… 아침에 서로 밝게 인사도 좀 하고 이러면 참 좋은데… 직원들이 영 분위기가 열정적이지 않아요… 하하하 “


그는 우리 아버지와 연세가 같았다. 자식벌 되는 여자를 대표로 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텐데, 그는 매우 능숙하게 내 앞에서 존대를 했다. 그의 특유의 경상도식 억양은 그가 왠지 애써서 나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보이게 했다. 첫날에도 그랬지만 그는 자신이 철저히 사측이라는 것을 항상 어필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짙게 깔려있는 ‘니까짓 게 뭘 알아’ 식의 비웃음은 그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의 진심을 알면서도 열심히 그를 따랐다. 내가 대표여도 실무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이사님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실무를 익혀보려고 했다. 특히 아버지는 사고차량 견적 내는 법을 이사님으로 부터 배우라고 지시하였다. 그래서 이사님이 담당하는 사고차량 견적 업무의 보조를 맡으며 하나라도 더 배워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제 형식으로 이어저 내려온 자동차 수리업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이사님은 나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대표님은 그것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은 모르셔도 됩니다. “


늘 그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나를 피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이러한 역경을 뚫고 밤을 새워 완벽하게 학습을 해내지만 현실의 나에게 그런 반전은 없었다. 이사님이 가르쳐주시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니 그냥 모르는 데로 흘러갔다.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답변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세진모터스에서 특히나 어려운 것은 기술직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나의 듣기 실력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오랜 기간 판금 도색실에서 기계와의 사투를 벌이는 그들은 타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 겪고 있었고, 그들끼리의 소통도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기술적인 부분에서 그들에게 친절한 가르침을 받기는 포기하였다. 이론적인 학습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미션은 ‘유 이사를 파헤쳐라!’였다.

아버지는 늘 직원들의 장난질(?)에 대해 경계하셨다. 직원과 사장과의 신뢰라는 것은 어느 판타지 소설에 있을법한 이야기였나 보다. 확실히 아버지의 우려대로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직원을 신뢰해야 직원도 사장을 신뢰한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미션이 떨어졌으니 어쩌겠는가, 일단은 모든 것 하나하나를 의심의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 공장이 돌아가는 프로세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고물상이 어떻게 물건을 수거해 가고 그 금액은 어떻게 정산하는지,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부품회사에서 부품은 어떻게 납품받고 검수하는지,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결국 하나하나 파고들어야만 무언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인데, 뭘 알아야 보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와중에 직원들은 이사님을 쳐낼 기회가 이때다 싶었는지 이상한 심증을 나에게 마주 던져줬다.


“유 이사 만날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게 왜인지 알아? 거기 양재** 카센터에서 견적서 좀 써달라고 해서 그거 해주느라고 그래. 어렵고 돈 안 되는 일은 우리한테 시켜놓고, 돈 되고 쉬운 건 지들이 해서 직접 보험사에 청구하려고 유 이사 시키는 거여. 그래 놓고 뒷돈 받겠지”


“유 이사 온 뒤부터 00 상사랑 거래했잖아!. 00 상사에서 들어오는 페인트 가격이 갑자기 비싸진 거 같단 말이야! “


이미 ‘유 이사=악’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혔던 나는 안타깝게도 이들의 말을 믿어버렸다.

다른 카센터의 일을 해 주는 것 까지야 내가 물증을 잡기도 어렵고 (뭘 알아야 뭐가 어떤 건지 볼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페인트 가격 조사에 착수했다.


00 상사의 페인트 전표는 정말 어려웠다. 어떠한 색의 페인트가 있으면 그것의 하위 버전을 여러 개 놓고 가격을 미묘하게 다르게 해 놓았다. 00 상사와의 이야기는 다른 장에서 또 다루기로 하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사님이 온 뒤로 거래가 시작된 이 페인트 회사는 몰래 페인트 가격을 올려 받았던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것의 대가로 이사님이 진짜 뒷돈을 받았는지 어땠는지의 물증은 잡을 수 없었다. 이사님은 끝까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사님의 이야기는 진실일 수도 거짓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어설프게 나의 감사 같지도 않은 감사질이 시작되니 이사님은 다급해진 것 같았다.

무언가 큰 한건으로 자신의 신뢰도를 회복하고, 새로 들어온 어린, 여자, 낙하산, 대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저기요 대표님, 제가 어제저녁에 찍어놓은 사진들입니다. 민규 쟤 좀 이상해서 제가 유심히 지켜봤거든요. 근데 작업지시서 몇 개가 조금 이상한 거예요. 어느 거래처에서 온 차인지도 안 쓰여있고, 보험접수번호도 없고…… 이상해서 보니 자기 지인 차량들을 수리해주고 있었더라고요. 그놈 참, 간댕이도 부었지, 대놓고 작업지까지 지가 만들어서 내려보내고 차를 수리하다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기 인지는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민규 씨가 우리 사무실 통해서 접수된 차량이 아닌 개인적으로 들어온 차량을 몰래 돈을 받고 고쳐주고 있다는 건가요?”


“그렇죠… 몰래 고쳐주고 돈을 지 주머니에 챙기는 거죠. 작업자들은 작업자가 있어서 몰랐다고 잡아뗄 테지만…… 또 모르죠,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겠습니까? 대표님이 작업실에 내려가서 작업하는 차량 상태도 좀 알고, 그러시면 좋을 텐데……”


이런 대화 속에서 내가 챙겨야 할 것은 냉정하게 팩트였다. 이것이 횡령인지에 대한 판단, 누가 실제로 가담되었는지에 대한 판단, 징계에 대한 판다. 그러나,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정도로 리더십이 있지도 않았다. 결국 아버지에게 이 사안을 보고하는 것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진정한 꼭두각시 리더십이었다. 아버지는 결국 이를 간과하지 않으셨고, 민규 씨에게 사직을 권고하였다. 민규 씨도 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과 후 순순히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나는 결국 ‘유 이사를 파헤쳐라’는 아버지의 미션은 전혀 수행하지 못한 채, 오히려 이사님에게 한방 먹고 말았다. 이사님은 이로써 사장님께 신뢰를 회복하고, 내가 꼭두각시 대표임을 확실시했으니 말이다.



왜 내가 여자라서 안될 것 같아?


세진모터스에 있을 동안 들었던 가장 쓸데없고 황당했던 걱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몇 년이 지난 이후 그의 이야기는 예언처럼 들어맞았으니……딱히 그가 나쁜 의도를 갖고 한 이야기라고는 볼 수 없다.


세진모터스는 대기업 협력업체 공장이었다. 우리나라 굵직한 자동차 대기업이 몇 개 없으니, 그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보통 협력업체에는 본사 직원을 주재원으로 파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경우 은퇴를 앞둔 직원들을 위한 한직으로 느껴졌다. 초기 세진모터스에 있었던 그 주재원도 은퇴를 앞둔 나이가 지긋이 든 분이셨다.


“계속 직원들도 바뀌고, 손님도 많이 안 들어오고…… 여자 혼자 이런 터프한 일을 하는 게 힘들죠?”

“네, 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은 어디나 힘들겠죠.”


나는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고, 여자 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그래도 나는 의욕 넘치는 신임 대표이사였으니까…….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우리 엄마처럼 여자여도 카리스카 넘치는 사장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미 우리 엄마는 그 업계에서 여성이지만 독보적으로 성공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깨닫게 되었지만 나는 엄마랑은 달랐다. 타고 난 성정부터가 달랐다. 어떻게 그렇게 모녀가 다를 수 있는지… 그러나 그때 주재원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엄마처럼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남편분은 뭐하시나?”

“저희 남편이요? 저희 남편은 그냥 회사원이에요.”

“회사? 웬만한 회사 아니면 그냥 이쪽으로 와서 일하라고 하는 게 좋아요. 아무래도 월급쟁이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웬만한 회사요?”


이분이 생각하는 웬만한 회사란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흔히 말하는 대기업? 월급쟁이보다 이곳에서 사장으로 있는 게 도대체 뭐가 낫다는 거지? 그보다도 왜 뜬금없이 남편이 이 자리에 있는 게 그나마 나을 거라는 이야기를 왜 하는지 그때는 퍽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남편은 남자라는 것 빼고는 그 역시 이곳으로 오게 되면 어린, 낙하산에다 자동차 정비공장에 대해서는 일도 모른다는 사실은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나와 다른 건 성별뿐이다. 물론 우리 남편이 나보다 꼼꼼하고, 섬세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분은 우리 남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그저 나와 다른 딱 한 가지, ‘성별’ 하나만 가지고 그나마 나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깔고 계셨던 것이다.


‘왜 내가 여자라서 안될 것 같아?’


그날 나는 오기로라도 여자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세진모터스의 문을 닫은 지금, 그가 한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내가 실패한 이유는 개인적인 역량 부족이었지 내가 단지 여성이어서 만은 아니었다. 내 성향 자체가 누군가를 카리스마 있게 리드하는 것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정비공장은 여성이 이끌어가기에 쉬운 업종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우리 엄마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부딪히는 많은 편견과 싸워야 했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그런 곳이다.




갑질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자동차정비공장(종합수리점)은 판금 도색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일반 카센터와 다르다. 흔히 일반 카센터에서도 보험수리, 판금, 도색 등을 한다고 광고를 하지만, 카센터에서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세진 모터스 같은 판금, 도색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곳에 외주를 준다.

보통 종합수리점의 경우 판금, 도색실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허가도 까다롭기 때문에 지가가 높은 도심 안쪽보다는 공장지대나 도심 외곽에 주로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손님들의 접근성이 떨어져, 공장에서는 보통 카센터의 물량을 외주로 받거나, 보험사와 협력관계를 맺어 물량을 얻어낸다.


세진모터스 초기에는 카센터 물량을 주로 많이 했다. 인근 지역의 카센터에서 물량을 받아 수리해주고 수리비를 받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참으로 험난하다.


카센터 사장님들은 업계에서 닳고 닳은 분들이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이윤을 내고 싶은 것은 어느 사장님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카센터의 경우 살짝 난 스크래치, 큰 판금 작업이 없는 차량, 소위 말하는 깨끗한 차량들은 직접 하고, 돈이 안되고 어려운 작업의 경우 공장에 보낸다. 물론 아무리 간단한 도색작업이라도 카센터(전문정비업)에서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분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이윤을 최대한 높이려고 하였다.

카센터 사장님들은 판금, 도색, 정비를 직접 하셨던 분들이 가지고 있던 고객 네트워크를 활용해 소규모로 점포를 차리시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 퀄리티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워 우리 공장에서 작업한 차를 재작업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작은 티끌 하나 넘어가는 일이 없다. 물론 작업 퀄리티야 우리 공장에서 완벽하게 해 가면 가장 좋겠지만, 가끔은 우리 공장을 길들이려고 일부러 그러시나 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내가 세진모터스에 대표이사로 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동차 보험수리 견적이라도 배우면 영향력을 더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시도도 해 보았지만,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나는 모든 역경을 뚫고 해내는 반전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 대신 나에게 잘하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작은 일에서부터 파고들기!’


나는 성실한 편이다. 주어진 일을 100%의 퀄리티로 해내지는 못하지만, 어떤 일이든 80% 까지는 하는 편이다. 그 80%를 해내는 나름의 노하우는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100%가 아니면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에서 80%는 그저 애만 쓰는 삶인것 같다. 그렇다. 세진모터스의 결과도 결국 80%까지 해내며 애만 쓰다 폐업을 한 것이니까……


그래도 그 80%는 나에게는 늘 최선이다.


나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아서 열심히 파고들었다.

청소하기, 차 배달하기, 전화받기, 전표 정리하기 등

그중 차 배달하기가 생각보다 고도의 기술을 요했다.

세네 군데에서 들어오는 오더를 처리하기 위해 최소한의 동선과 인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차량 인수에서 인도까지 다양한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


갤러리에 죄다 차량사진 뿐 ㅜㅜ


특히나 어려운 것은 출고였다. 수리가 완료된 차량을 거래처인 카센터에 배달하기도 하고, 손님에게 직접 가져다 드리기도 하는데, 이때 차량 수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 차를 재작업으로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 공장의 수리가 완벽하지 않은 것이 일차적인 문제이겠지만, 트집을 잡기 위한 트집인 경우도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미 동네 카센터에 사장 딸인 내가 대표이사로 와서 할 줄 아는 거 아무것도 없고, 카센터를 돌아다니며 차 배달을 하고 있다는 것은 소문이 난 상태.


요즘 시대에 대놓고 어린 여자애라고 무시는 못하지만, 그들의 생각에는 그런 마인드가 깊게 깔려 있다.


분명 그들은 내가 해맑게 인사를 하면, ‘어이구 대표님’ 하면서 깍듯이 인사한다. 남초 세계에서는 위계질서가 참 확실하다. 내가 대표이사 직함을 갖고 있는 것 만으로 어찌나 ‘대표님, 대표님’ 정중하게 말들은 하는지…….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그들의 마음이 영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을 그들의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어이구 대표님, 이거 티끌 보세요. 이거…… 아 이거 참, 세진모터스에만 맡기면 이렇게 티끌이 보이네… 이런 거 검수 안 하나 봐요.”


어… 이상하다. 분명히 공장에서 출고 전에는 깨끗했는데….. 물론 차량 수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그저 부서졌던 차가 새 차처럼 변한 거에 신기하기만 할 뿐 티끌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대표님도 힘드시겠어… 직원들이 뭐 말을 들어먹겠나. 이거 다시 가서 깨끗하게 밀어서 와주세요.”


이러면 속절없이 차를 끌고 공장에 들어오게 된다.

수리해야 할 차가 쌓여가는데, 나갔다 들어오는 차를 재수리하면 그만큼 차 배달에 소요된 시간, 재수리 시간 등 손해도 쌓여간다.


유 이사님은 이렇게 또 거든다.


“아이고 대표님…… 대표님이 가시니까 이놈들이 아주 막 우습게 보고… 차를 막 돌려보내네… 대표님, 이럴 때 무조건 끌고 오시면 안돼요.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출고를 시키셔야죠. 그것도 노하우예요. 그놈들이 우리를 길들이려고 그러는 거예요. 아~ 이런 차 배달 같은 허드렛일은 직원들 맡기셔야 하는데, 배달 인력도 없고.. 회장님(우리 아버지)께 그렇게 배달직원 뽑아달라는데 안 뽑아 주시고… 우리 대표님이 이런 일을 직접 하시니…”


이런 식이다. 한껏 대표님, 대표님 굽신거리면서, 정작 그 안에는 여자라서, 어려서 부정적인 워딩이 가득하니…


카센터들의 도 넘은 갑질은 내가 여자고, 어린 걸 넘어서 정말 만.만.하게 봤기 때문이다.


기한은 무조건 내일까지 해와라, 작은 티끌 하나 재수리해라, 색이 묘하게 안 맞으니 재수리해라, 저녁 늦게 차가지러 와라… 그중에 제일 황당했던 것은 카센터 사장님 지인의 차를 수리했을 때이다. 자신이 삼척에 살고 있다고 한 그는 내가 수리된 차를 갖고 가자마자 차를 구석구석 살폈다. 그러더니 한 가지를 잡아냈다. 수리된 차량 휀다쪽에 아주 미세하게 투명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라이트로 자세히 비춰보면 보이는 것이었다.


왜, 성공신화 같은 거 읽어보면, 정직함은 통한다, 손님은 진심을 알아준다 이런 말들 있지 않은가…… 나는 그분이 트집을 잡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대하려 했다.

차주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거 하나도 완벽했으면 하겠지…… 속상하겠지…… 저런 미세한 것도 못 잡아 낸 건 리더인 나의 책임이야 등.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해했다. 그리고 그가 삼척에서 돌아오는 그다음 주에 꼭 완벽하게 차를 수리해주고, 서울에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렌터카도 제공하겠노라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진심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틈을 주는 것인지 그때는 너무 순진했다.


그는 일주일 내내 나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정신적인 손해배상은 어찌할 건지 물었고


(이후 몇 년간 이런 사람이 정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놈의 정신적인 손해배상!!! 그렇게들 정신이 나약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들 사실꼬…)


내가 머뭇거리자 대단히 선심을 쓰는 것처럼 “내가 많은 건 안 바랄게요… 수리하느라고 내가 삼척에서 왔다 갔다 했으니 서울에서 삼척까지 왕복 기름값만 더 주쇼”라고 했다.


결국 세진모터스의 회장님(우리 아버지) 에게 이 사안을 넘겼고, 그의 진상짓은 바로 종결되었다. 회장님은 다시 나를 꾸짖었다.


“애초에 왜 미안하다고 숙이고 들어가! 저것들이 아주 너를 얕보고 기선제압하려는데, 네가 기선제압을 해야지! 딱 봐도 수리 이상 없고, 괜한 트집 잡는 거 뻔히 보이는데……. 어이구, 언제 우리 딸이 세상 물정을 좀 알까…”


아니, 그냥 봐도 얕보이는 걸 어쩌라고!!! 내가 어리고, 여자인 낙하산인 데다, 딱 봐도 어리숙한 호구인데, 나를 내가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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