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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Nov 26. 2024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질투가 나서 울었다.

퍼펙트 데이즈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삶을 찬양하는 영화 감상문이 아니다.
그저 히라야마를 질투했던, 부끄러운 기억을 고백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해가 뜨는 새벽, 오늘을 알리는 빗자루 소리에 주인공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이불을 정리한다. 그는 모든 하루의 풍경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빛을 주름진 미소로 환대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을 말하는 그의 말은, 지금을 살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현재로 불러낸다. 아픈 과거를 인생의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어설프게 덮어두고 방치해두었지만, 언젠간 결국 그 기억들과 감정들을 수거해해야 할 순간이 올 것임을 알게 된다. 솔직히, 나는 한 번도 도쿄의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길고도 짧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꿈꿔왔던 외국 생활은 도쿄를 향하는 국제선 비행기를 기점으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소설이길 바랐던 사건들이 중력에 의해 쌓이면서 , 내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우울한 시기를 맞았다. 통제할 수 없는 일상에 중심을 잃고, 고개를 떨군 채 땅만 바라보며 쏟아지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기 급급했다. 오늘도 나를 찾아올 고독이 두려워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을 여는 것조차 겁이나서 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반대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히라야마의 그 담담한 표정은 부러울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아름다웠다.


집 앞에 활짝 펴있던 능소화의 향기,

사찰을 보살피는 스님의 따뜻한 눈인사,

저녁 하늘을 물들이던 주황빛의 황혼까지.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을 나는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소중한 순간들을 놓쳐버렸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진첩을 미워하는 대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에게 오늘만큼은 연민을 허락했다.




듣기 좋은 말들로 감춰둔 감정들을 비로소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오늘을 미래의 내가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번 겨울에는 히라야마가 올려다봤던 가메이도 역의 하늘을 나도 꼭 보러 가고 싶다. 그때 내 이어폰 줄에서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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