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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추억은 마들렌과 홍차와 함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

by 시온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며 삶의 여러 모퉁이에서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이런 순간마다 지인들은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위로처럼 말한다.


“마시고 다 잊어버리자.”




어린 시절 일찍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말을 잃어버린 주인공 폴은 명성을 원하는 천박한 이모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질서와 논리, 이성을 추구하는 이모들은 뒤틀린 사랑으로 폴을 정성껏 돌본다. 수동적이며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들어가게 된 폴은 그녀가 준 마들렌과 허브티를 통해 잊힌 기억 속에서 부모님과의 추억과 자신이 잊고 살았던 감정들과 조우하게 된다.



영화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인 플롯 안에 담아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여정의 중요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폴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마담 프루스트를 끊임없이 찾아가 허브 차를 마신다. 그러나 그녀의 집을 두드리는 이들은 폴뿐만이 아니다.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그녀의 정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폴은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으로 뒤틀리고 희미해졌던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둘 맞추며 억눌린 자신을 해방시킨다. “나쁜 기억은 행복이라는 홍수 아래에 잠길 수 있어. 그 홍수의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너의 몫이야.” 마담 프루스트의 말은 트라우마에서 나오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뱉는 말처럼 느껴진다.


기억의 오해에서 해방된 폴은 그녀를 다시 찾아가려 하지만 마담 프루스트는 더 이상 우리가 손 닿을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난 뒤다. 그렇지만 폴은 그녀의 부재에 더 이상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들,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따뜻함은 여전히 폴의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눈을 감고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피아노 대신 그녀의 우쿨렐레를 집어 들어 새로운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삶은 우리가 원치 않는 수많은 사건들을 안겨줄 것이다.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마주하기도 하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은 지울 수 없겠지만 쓰디쓴 슬픔으로 가득 찬 차를 마시면서도 마들렌의 한 입이 혀끝에 맴도는 쓴맛을 은은히 덮어줄 수 있지 않을까. 설령 마들렌이 식더라도 그 여운만큼은 여전히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삶은 마치 차와 마들렌처럼 쓴맛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는 한 잔의 여정이다.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은 그 여정에서 만나는 따뜻한 쉼터였고, 그곳에서 폴은 자신의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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