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물결 속에서 AI 적응이 생존의 키워드라 외치는 글들과 외부에서 내게 내뱉는 현실이라는 것에 후들거리며 두 발로 버티고 있었다. 최근 업계의 높으신 분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의 전망은 거의 희박하다고 말씀하셨고 마침내 다리는 중심을 잃고 몸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내가 가진 정보의 무게만큼 추락해 버린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속에서 몇 달 동안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윤택해진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그 이유 하나를 찾지 못해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며 지나간 삶들을 부러워하며 내가 결정한 선택들을 모조리 후회하고 있었다. 미래가 없는 나에게 오늘 하루와 1분 1초는 어떤 의미도 가치도 없었기에 흥청망청 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친구에게 추천받은 이 영화는 내게 현재에 대한 위로보다 패턴화 될 수 없는 나의 고유함을 깨닫게 만들어줬다.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이 세탁소 세금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갑자기 다양한 평행우주를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녀는 소원해진 남편, 이해할 수 없는 동성애자 딸과 책임져야 할 아버지의 관계 속에서 세무서 직원과의 미팅 중 다른 우주의 남편 버전을 통해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에블린은 여러 우주를 오가며 다른 삶의 버전들을 경험하고 능력을 습득하면서, 결국 혼돈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가족과의 관계와 자신의 평범한 삶에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옮음은 두려워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좁은 상자"라는 조부 투파키의 말에 영상을 잠시 멈추고 흰 종이에 끄적여본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따르려 애쓰는 '올바름'이란 것은 단지 가장 안전한 선택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처럼 나도 안전한 삶의 방식만을 추구하진 않았다. 한심한 나 자신을 마주하기도, 소중한 이들을 잃어버릴 뻔하기도, 그렇게 끝없이 후회하기도 했다.
결국 에블린이 이 혼돈의 현실 속에서 선택한 길은 더 나은 다른 세계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다정함을 건네는 용기였다. 그 다정함은 화려한 성공이나 완벽한 미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어설프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 남편 웨이몬드의 마음. 서로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소중한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그 작은 다정함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목격한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능력도, 모든 우주를 넘나드는 초월적 지식도 아닌 그저 일상 속에서 건네는 작은 다정함이 에블린의 삶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구원했는지를. 나에게 있어 진정한 미래는 강남의 아파트를 소유한 나, 건물주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은 나가 아니다. 그것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쿠키 한 조각을 건넬 수 있는 용기와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소소하지만 강력한 다정함이야말로 혼돈의 세계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몇 개의 쿠키를 나눠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