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영화에 대한 작은 기본적인 지식조차 없는 나지만 개인적으로 "너는 이 장면에서 공포를 느껴야 해!" 라며 관객에게 명령하는듯한 상업성 공포영화의 클리셰는 솔직히 탐탁지 않게 느껴진다. 스크린을 향해 외치는 관객들의 비명소리 또한 내 손으로 지불하며 구입하는 스트레스 같았다. 최근 간간이 보이는 퍼펙트 데이즈의 후기를 읽던 중 야쿠쇼 코지를 알게 된 첫 계기가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본 큐어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아내를 돌보며 형사로 일하는 주인공 다카베는 서로 다른 범인들이 연쇄적으로 저지른 의문의 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조사 끝에 그는 사건의 중심에 마사미라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사미는 최면을 통해 사람들을 조종해 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는 인물로, 다카베는 그의 영향력을 끊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마사미를 제거한 뒤에도 결국 다카베는 최면에 잠식되어 다음 계승자가 되고 만다.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고 참새들이 지저귀는 평화로운 경찰서 앞에서 배우 덴덴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동료를 살해한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햇빛 속에서 그의 표정은 평온하고 고요하다. 이 따스한 평온함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가장 조용하고 서늘한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차가운 열대어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던 날, 위장이 뒤틀릴 것만 같았던 이유는 단순히 피가 터지는 참혹한 장면들 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끔찍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간 감정의 가장 극단적인 이면을 보여주는 듯한 역겨울 정도로 완벽했던 덴덴의 연기 때문이었다. 그의 연기는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던 과거의 다카베와는 달리 깔끔하게 식사를 마친 뒤, 그릇을 정리하는 종업원에게 최면을 건다. 최면에 걸린 종업원은 나이프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감독은 장르의 법칙을 어기고 장르를 파괴함으로써 영화가 풍요로워질 수가 있었다고 한다. 완벽함을 포기했기에 그의 영화는 완벽해질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던 공포의 형태를 변형시켜 표현해 주었다. 치유라는 의미를 가진 것 말고는 어떠한 해석도 없었던 큐어는 나에게 친절한 공포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