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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일상 Jul 19. 2024

청구권을 무자비하게 활용하는 나의 아버지

영원히 죽지 않을 권리 행사자를 기리며

-30만원이나 들었다. 사나흘만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허리가 나을거다! 꼭 먹여라!

요며칠 아빠의 전화를 몇차례 받았다. 허리가 시원찮았던 사위에게 장닭과 온갖 약재를 넣어 닳인 국물을 보냈기에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빠의 집요함이 익숙하면서도 귀찮은 나는 단답형으로만 대답한다. '네' 하는 한 글자 어조에서도 10대 이후로 꾸준히 내뱉았던 부정감이 뻔히 느껴짐에도 마흔다섯의 딸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 보면 참 잘 챙기는 부모라 여기겠지만 그 챙김에는 아빠 본인만의 고집이 깃들었다. 남편은 장이 예민하고 같은 음식을 서너 끼 이상 먹어내기에는 약한 비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협착이 3군데 있어 이유 없이도 요통이 찾아온다. 확답하는 아빠가 지긋한 나는 중얼거릴 뿐이다.

그거 먹고 나을 것 같으면 전국에 있는 장닭이 남아나질 않긋네..


사춘기 들어 아빠의 말과 행동이 부덕하다 여겼고 그런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의 에피소드들은 나를 수치로 몰아 넣었다. 나에게 도덕 교과서는 아빠였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의 저편, 나쁜 행실의 표본을 따라가 보자. 농사를 짓는 우리 동네는 비포장 길이 많아 바퀴 달린 것들이 빠지는 일상은 흔했다. 구청에 지속적인 민원으로 동네를 바꿔놓은 인물이 아빠다. 그의 민원은 365일 지속되었는데, 길에서 길로 다리에서 가로등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만들었다. 타자기로 요구를 쳐대다, 286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로는 학원을 다니며 워드를 직접 배워서 청구권을 행사했다.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헤매는 아빠의 밤시간은 잔뜩 긴장되어 담배연기만 가득할 뿐이다. 그는 변호사를 만나고, 법정 싸움을 이어 가는 것에 지칠 줄을 몰랐다. 내용증명 노래가 온집안을 메웠다. 내용증명 띄워라~

-이 길을 누가 만든 줄 알아? 어디서 네까짓 게 길을 막아!

1차선 농로길에서 마주 오는 차량과 시비가 붙으면 자동으로 튀어 나오는 소리였다. 그나마 운전자에게 하는 소리면 다행이다. 내 또래의 중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중이었는데, 아빠차를 피하려다 논두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 때도 나의 아비란 사람은 저런 소리나 내뱉고 있었으니 나는 학교에서 혹여 만나게 될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빠는 올해로 일흔 세살이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노트북 2대에 잔뜩 저장된 법정 문서들이 즐비하다. 몇달 째 지어 놓은 가건물때문에 법정공방중이다. 이번에는 국가가 아닌 땅주인이 대상이다. 뜯어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쓸데없는 고집과 욕심에 가건물을 짓고 변호사를 선임하느라 쓴 비용도 크지만 50여년 동안 뒷처리를 해온 엄마의 삶이 아깝고 안쓰럽다. 앞선 글에서 밝혔다시피 아빠는 늘 바람을 피고 엄마에게 심술궂은 못난 행동도 많이 한 사람이다. 그의 삶에서 엄마를 제외하고 중요하지 않은 자원은 하나도 없다. 시간과 사건, 남들이 쓰다 버린 물건도 넘쳐나게 중요하고 그의 머릿 속을 꽉 채우고 있기에 노상 여유없이 바쁘게 산다. 정리되지 않은채 여기저기 방치되어 버린 욕심의 흔적들 때문에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숨이 멎는 느낌이다. 물건을 보관해 둘 창고와 공장들은 투입비용이 무색하게 폐건물처럼 방치되어 있고, 중장비 비용을 지불해 가며 심은 온갖 나무들, 모래를 붓고 땅을 돋우고 다지고... 폐업하는 공장이나 가게의 물건들을 차떼기로 사들여 오는 건 왜일까. 정작 중요한 시간과 사람, 해결해야 할 빚은 방치되어 묶어만 두는 아빠의 시공간은 답답함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언제쯤이면 아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식들 일이라면 기죽지 않게 지원해 주고, 외곽지에 살아도 문화에 뒤쳐지면 안된다며 비디오며 노래방기기, 게임기 같은 문물을 선두주자격으로 보급해대어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게 만든 나의 아버지... 학창시절 내내 직접 실어 나르며 등하교를 책임지고 취중에도 사랑한다는 소리를 늘어 놓던 나의 아버지.. 직장생활이 힘들다며 울고 돌아 온 나에게 다른 공부하라며 새벽기도로 100일간 응원해 준 나의 아버지. 막상 만나 얼굴을 보고 오면 엄마와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사건들의 연속에서 아직 살아가는 그에게 나는 전하지 못한다. 죽기 전에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 덕분에 존재합니다. 덕분에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뤘어요. 고맙습니다. 벌려 놓은 일들 모두 정리하고 본인도 좀 편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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