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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일상 Jul 24. 2024

엄마를 닮은 줄 알았는데 아빠를 닮았단다.

나는 아빠딸이다.

식구들이 모이면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검열이 가능하게 하는 말이 있다. 

‘아빠 닮았니?’

아빠의 행실과 성미를 조롱하듯 식구들 사이에서 유머처럼 쓰는 말이다. 말수가 적은 편인데 불같이 화를 종종 내는 언니가 가장 자주 듣곤 한다. 젓가락을 탁 놓는다거나 갑자기 고함을 치며 눈을 부라리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외쳐댄다.

-그만해, 아빠 닮았니?

옆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만 싱긋 올리는 형부는 속이 시원해지는 모양이다.

워낙 말 많고 옳은 소리랍시고 훈계하는 식의 나의 말에 응수하는 언니의 방식도 동일하다.

-너도 아빠 닮았니?

핫플레이스에서 명품을 걸친 스타일을 전시하길 좋아하는 여동생에게도 우스갯소리로도 쓴다.

-허세가 아빠다?

어설픈 조언보다 이 한마디면 누구라도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이쯤되면 3대쯤 물려줘야 할 가훈이랄까. 반대로 인내심 강하고 현명하게 사람을 대하는 엄마를 닮았다고 하면 최고의 칭찬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닮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성장기의 나는 엄마를 닮았다고 여겼다. 좋아하는 사람은 닮고 싶은 것이라 그랬을까.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으니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여겼던 걸까? 친구들의 지지력에 힘입어 꽤나 방귀 좀 껴대는 우쭐함으로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40대가 되어 깨달은 사실이지만 말도 많고 워낙 활동 성향에 유머도 있어 파급력이 있었던 것일 뿐 인기와는 다른 영역이지 않았을까. 사실 상투적이고 천박한 말로 스스로 발가벗겨진 나를 지켜 보던 친구들의 깊이 덕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의 무례하고 직선적 성향은 친구들에게 신뢰(?) 아닌 신뢰를 쌓았다. 변태 퇴치 사건이 걔중 굵직한 일례이다. 여중, 여고 근처에는 변태가 출몰하기 마련이지 않나.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놀라 도망가기 바쁜 여학생들과 달리 나는 가방을 휘두르며 정면으로 맞서는가 하면, 쌍욕을 퍼붓거나 중지손가락을 면전에 대보이는 등 나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과감함이 있었다. 미어터질 것 같은 여고를 향하는 버스에서도 그들의 만행은 계속되는데, 앞쪽에서부터 밀려 들어오는 느낌은 분명히 그것이다. 뒤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여학생들의 틈을 비집고 나아가 그것과 마주하고 만다.

당신 뭐야! 변태짓 하는 거 다 알아! 당장 꺼져! 변태 새끼야!

그런데 변태 행위보다 나의 화를 더욱 치밀어 오르게 하는 것이 있으니, 키득거리며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몇몇 또래 남학생들의 작태이다. 그 상황에서 웃고 있는 여학생은 없지 않은가.

-너희들은 웃기냐? 용기란걸 모르나봐! 웃기냐?

이상하게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높이면 신뢰를 획득한 기분인데,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문제를 키운다는 눈초리가 따갑다. 철들지 못했을 때는 식구들이 피곤해지는 것이 싫은가보다 생각했다. 여동생이나 언니가 나의 무용담(?)을 목격하고는 슬그머니 꽁지를 빼거나 집에 와서 이르는 방식을 택할 때는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녀들이 늘어놓는 나에 대한 뒷담화는 끝날 줄을 모른다. 술취한 아저씨가 술한잔 하자하니 싸움이 붙질 않나, 시장 길목을 막아선 발가벗은 남자랑 싸우는 걸 봤다, 옷집 사장님이 학생이라고 함부로 대해 따박따박 따지더라는둥 그녀들의 씹을거리는 끝이 나질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들을 보고도 모른척하지 않은 것, 아니면 도망치지 않은 것을 말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놀림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한마디에 머리가 정지된 듯했다.

너, 아빠 닮았다. 싸움꾼 기질이 어디서 오냐?

결이 다르다고 믿었는데 결국 싸움꾼 기질로 아빠와 대응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아빠 또한 분위기를 깨는 자, 말을 함부로 하는 자, 남을 우습게 만드는 자 따위로 이유는 각양각색인 싸움을 일삼지 않았나. 불안에 떨며 눈치보던 엄마와 어린 우리가 떠오른다. 그런 가족에게 나의 이유 있는 싸움은 그냥 싸움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나름대로 선을 가지고 불합리함에만 맞선다고 주변에 떠벌리고 다니지만 그냥 나는 아빠스럽다. 얼마 전에도 상관에게 나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후배들 6명을 데리고 가서 대치하는 상황을 만들고 한치의 물러남 없이 획득까지 버텼다. 인격 모독에는 인격 촌살로 돌려준다. 당장 그 자리에서 조근조근 쏴버리고야 마는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성질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교양 있는 척하는 천박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아빠도 나름의 이유가 당당함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사춘기가 넘어서면서부터 틈만 나면 아빠랑 지리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거실에서 1-2시간씩 이어가곤 했는데, 식구들은 모두 문을 꼭 닫고 들어가 버린다. 아빠의 잘못된 행실을 꼬집어야 했고, 아빠는 말이 통하지 않는 딸과 다투어야 했다. 어쩌면 닮아 있는 우리 모녀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식구들의 눈초리를 똑같이 받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토록 싫어하는 아빠를 닮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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