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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랑하던 연인과 '권태기'라는 것이 있었는지, 혹시나 있었다면 글을 쓸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다른 분들에 비해 문학을 접한 기간은 매우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나는 느껴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느껴본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내가 글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글을 쓰는 순간이 재밌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짧은 권태기였지만, 권태기가 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보통 익숙함이라 하는데, 익숙하다기엔 너무 짧은 기간 아닌가.
시를 썼고, 공모전에 냈고, 떨어졌다. 많이 냈던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의욕을 잃었다. 우유부단하고 성격이 급하고 뭐든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내 성격 탓이다.(와중에도 문학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그 기간 동안 자숙했다거나, 공부했다거나, 책을 읽었다거나. 그런 생각을 했을 수 있겠지만 아니었다. 그냥 철부지처럼 놀았다. 내가 보아도 철부지라는 건 타인이 봤을 땐 그보다 더했을 것이다.
여자친구와 가끔 데이트 장소로, 잠깐 들를 만한 곳으로 서점을 선택하곤 했다. 그리고 서점 중앙에 놓여 있는 신간 소설들과 스테디셀러들, 베스트셀러들을 살짝씩 들출 때마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긴 했지만, 순간이었다. 괜히 오기가 생기고 스스로를 갉아먹을 마음이 들기 전에 문구용품을 파는 곳이나 여자친구가 보고 있는 추리소설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집으로 가서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알고리즘이 나를 도서 쪽으로 이끌었다.
<역대 가장 천재였던 작가의 첫 번째 문장>
부터 시작해서
<글쓰기 코칭>, <글을 쓴 지 6개월 만에 책을 냈어요>
그리고
<신간 베스트셀러 한줄평 모음>
이렇듯 내 시선을 끄는 썸네일과 캡션들이 게시물의 아래가 아닌 오른쪽으로 스크롤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일찍 강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 4시까지 몇 시간 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글과 관련된 게시물을 살펴봤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피곤하다는 것은 휴대폰을 끄고 눈을 감고 나서야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 늦잠이었다. 서둘러서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 택시를 불러 탔다. 새벽까지 책과 관련된 게시물들을 읽은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지 여전히 피곤했고 가슴 또한 두근거렸다. 오히려 새벽보다 더 강력하게.
강의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머릿속에 어제 읽었던 게시물만 계속해서 돌아다녔지 강의 내용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았다.
<밀리의 서재>라는 구독 하여 등록되어 있는 E북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이미 구독을 해지했지만, 무엇이라도 글을 읽어보고 싶어 재빨리 다시 구독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전날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놓여 있었던 책을 검색했더니, 등록되어 있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책을 다운로드하였고 강의가 끝나기도 전에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렇게 집중했던 게 얼마만인가. 너무 재밌었고 좋았고, 감탄 했다. 마음이 찡했고 멍해졌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같은 작가의 신간을 샀다.
전처럼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어떻게 내용을 이토록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가짐은 달랐다. 이전에 느껴졌던 감정은 “부럽다”였다면, 그제야 느껴진 감정은 “나도 이런 글을, 문장을 써보고 싶다.”였다.
이 생각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정말로 소설을 쓰기로 다시 다짐했다. 그때부터 내 일상은 온통 소설이었다. 소설은 평범하고 무기력한 일상 사이사이의 비어있는 곳을 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