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소설은 초등학생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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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오름

나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첫 소설을 썼다. 이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로 쓴 소설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본인의 의지로 시작한 소설도 아니다.


동생은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골목에 위치한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몇 학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고, 나는 동생이 다닌 유치원에서 학원생의 신분으로 있었다. 그땐 그게 흔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사립 초등학교였고, 영어 중점이었다. 총 수업 시간의 8시간 중 4시간이 영어 수업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난 영어를 아예 몰랐다. 그 학교에 다니는 내 친구들이 그토록 영어에 있어 수재일 줄 몰랐다.


(영어 중점 사립학교에 다녔기에 나중에 내 영어 실력이 평균 이상에 오른 것도 물론 부정할 순 없다.)


쨌든 간에, 동생의 영어 유치원에서 학원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던 나는 임무를 하나 맡게 되었다. 당시 학원 수업의 내용은 과학이었다. 영어 중점의 사립 초등학교인 만큼,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영어로 공부하고 있었기에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억하기론 대략 행성의 크기, 위치, 나이 등이었던 것 같다. 수업을 간단하게 마친 후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물론 수강생은 5명 아래였지만) 설명한 것에 관해 우리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 했다.


왜 신났을까. 우리는 웃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랐어서. 선생님을 보고 우리는 곧바로 진담인 것을 알아차렸지만 손을 떼기 힘들었다. 영어로 작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난도 과제였으며, 무엇을 창작하라는 것은 학교 수업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 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우주, 행성. 그땐 뭔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SF적인 요소였다. SF와 관련된 영화와 만화책들은 본 적이 꽤나 있지만, 글을 읽거나 써본 적은 없었기에 시작이 쉽지 않았다. 스타워즈를 생각하니 우주 전쟁이 떠올랐고, 어린 나의 눈에 멋있어 보였던 무기들이 스쳐 지나갔다.


솔직히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터라 정확한 소설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과제를 학원에서 하고 가라고 했다. 그도 그런 것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그냥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었고, 요구한 분량도 얼마 되지 않았다. 줄이 그어진 노트 반 페이지를 채우라 했으니 대략 5~6 문장이었다.


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 5~6 문장은 서사의 프롤로그를 채우기도 부족했다. 머릿속에선 우주선들이 행성, 별들을 지나치며 날아다녔고 공방전이 한창이었다. 우주선에 대한 소개도 해야 했고, 행성의 특징에 대해서도 써야 했다. 읽는 사람들을 납득시켜야 하니까. 얼마 쓰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이미 학원 시간은 지나 집에 가야 했고, 분량은 6페이지쯤 넘어갔던 것 같다. 물론 어린이용 줄노트였기에 그렇게 길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지금 영어로 쓰고 있는 건지, 한글로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상상하고 있는 건지 모를 만큼 우주 세계에 빠져들어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특이하게 보았을 수도 있지만, 재밌냐고 물어보셨고 영어로 이만큼 쓰는 건 네가 처음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사실 영어로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활용해, 부족하다면 사전을 활용해 내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정말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됐기에 이미 선생님들에게 내일까지 더 쓰겠다고 말했다. 굳이 선생님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집에 가서 노트의 반 권 정도를 내 이야기로 꽉 채워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끝내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장황하게 펼친 세계관을 수습할 수 없었고 이야기 쓰는 것을 뒤로 미루다 공책이 사라졌다.(공책을 잃어버린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때부터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생겼지만, 나는 그냥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많이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이 내 첫 번째 창작 활동이자, 미완의 초단편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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