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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확실히 소설보다 짧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시보다 긴 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에 비하면 시는 문장이 적어 매우 짧은 편이다. 문학에 있어 철이 들지 않았던 나는, 그래서 시가 소설보다 쓰기 쉬울 것이란 생각만으로, 시간이 적게 걸릴 거란 유치함만으로 시를 먼저 선택했다.
시를 쓴 것에 대한 후회는 없고,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시를 쓰기 전 가졌던 나의 마음가짐만큼은 문학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었고, 경솔했다. 또한 문인의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시를 쓰는 순간이 정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휴대폰을 하지 않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시상이 생각났을 때. 그리고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시원한 맥주를 한 캔 집어 마시다가 시가 생각났을 때. 그럴 땐 가만히 앉아 잠깐 생각에 빠진다.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드려가며 시를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문장을 생각하다가 “다 됐다.” 싶을 때 컴퓨터 앞에 앉거나 휴대폰의 메모장을 연다. 그리고 빠르게 적어 내려간다. 그냥 뭔가가 이끄는 대로.
그렇게 마지막 행까지 쓰고 나면 대략 5분이 지나 있다.
그런데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보다 생각하고 마음이 이끄는 그 순간이 시가 탄생하는 순간 아닌가.
이 생각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후로 시를 쓴 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코 이제는 시가 좋지 않아서, 질려서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를 쓰는 순간, 시를 쓰기 위해 생각했던 시간들만큼은 행복했던 게 분명하다. 돌이키는 이 순간 마음 한쪽이 찡해지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에 소설을 쓰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면, 이젠 시를 쓰는 것을 뒤로 미루는 이유는 나의 찌질함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시를 잘 읽지 않고 쓰기만 했을 때, 그러니까 문학에 철이 들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내 시가 최고인 줄 알았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말했듯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하나만 아는 사람이 무섭다’ 중에서 ‘하나만 아는 사람’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하나만 아는 사람’ 그 중간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여러 시들을 접하며 하나를 좀 더 넘게 알게 되었다. 꼭 시인 분들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분들의 시를 많이 읽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나니 타인의 시에서 이해할 수 없던 문장들과 연들, 행들의 조화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 행을 읽는 데에도 5분이 넘게 걸릴 때가 있었고 한 연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10분 가까이 걸릴 때도 있었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것이 한 문장에, 한 시에 담겨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썼던 시의 한 문장은 그냥 그 자체로의 한 문장이었다.
좋은 시를 읽을 때마다 난 더 찌질해졌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지.
나는 많은 것을 한 문장에 담을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했고, 시를 쓰기 꺼려졌다. 나에게 시란 이제 최종 보스의 느낌이 된 것 같다. 다른 활동을 하고 여러 문학을 하고 많은 것을 읽었을 때,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을 때. 그럴 때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한 문장, 한 시에 담아보고 싶다. 아직은 여러 가지를 한 가지 그릇에 담을 자신이 없다. 설령 몇 개월동안 시만 쓴다고 하더라도.
그 뒤로 시를 몇 개 쓰긴 했다. 공동 저자 프로젝트가 있길래, 지원을 했고 내 시 3개 모두가 뽑혔다. 그리고 내 시는 표제시로 실리게 되었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럼에도 난 시를 더 쓰지 않았다. 단지 잠깐의 내적 휴가를 위한 스스로의 변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