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산문집
사랑은 늘 희미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다.
가까이 간 듯하면 저 멀리 가 있고, 너무 아스라해서 손을 뻗치면 내 옆에서 미소 짓는다.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동료들과의 친밀.
가끔은 흡족하고 자주, 그리고 오래 목마르다. 나는 그렇다.
그래서 '선명한 사랑'이라는 제목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선. 명. 한. 사. 랑.
도대체 얼마나 밀도가 높고 농도가 짙길래 이렇게 자신 있게 선명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토끼는 확실한데 강아지인지? 귀여운 동물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노란 표지를 펼치자 고수리 작가에 대한 예쁜 글이 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웃음도 울음도 쉽고 다정하게 나누는 여자들 틈에서 자라 작가가 되었다. 어쩔 도리 없이 사람과 사랑에 마음이 기운다. 모쪼록 따뜻하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볕뉘 같은 이야기를 쓴다.
동아일보 칼럼 '관계의 재발견'을 연재하며, '마음 쓰는 밤', '고등어: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등을 썼다. 날마다 부지런히 글 쓰기 밥 지어 쌍둥이 형제와 나눠 먹는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어제의 배움, 오늘의 할 일, 그리고 내일의 다짐.
선명하게 사랑하기. 내가 받은 사랑들이 가르쳐주었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그늘진 자리마다 잠시나마 비치는 조그마한 볕, 그렇게 보살피는 품. 나를 살게 한 따듯한 기운. 나는 이제 그런 게 사랑이란 걸 선명히 안다.-작가의 말 중에서
1부 모쪼록 힘이 나는 씩씩한 인사로
2부 잘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의 사랑
3부 사랑은 무던히도 애쓰는 일이더라
4부 따뜻해지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
소제목만 보더라도 따스함 한도초과로 사랑의 온도도 덩달아 올라간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은 사랑을 좀 더 선명하게 하는 일이다. 마주치는 타인들에게 되도록 다정하고 싶다. 모두 힘들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미처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애써 읽어주고 싶다. 우는 사람을 지나치면 안 된다는 작가의 말은 반은 동의하고 반은 의문이다. 그냥 지나쳐 주는 게 도와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미루지 말자. 우리가 언제 영영 그리워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작가는 '볕뉘'라는 햇볕의 이름을 좋아한단다.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이나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어딘가에는 볕뉘가 있듯이 삭풍이 부는 삶의 한가운데서도 '볕뉘' 같은 존재는 있으리라. 나 또한 누군가에게 '볕뉘'가 되어 주어야겠다. 또한 '만끽'이라는 단어는 작가의 지인이 좋아하는 말이다. 힘든 상황일지라도 오히려 지금을 만끽하자.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 하루에 어느 순간만큼은 마음껏 누리자. 만끽하는 일은 매일의 작은 성취이자 작은 기쁨이다. 두 단어 모두 우리를 포근하게 안아주고 위로해 준다.
나는 '온유'라는 말을 좋아한다.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선명한 사랑이란 확고부동한 사랑이 아니라
수만 가지 마음을 겪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사랑이다
대책 없이 다정하고 한없이 선하고 따스한 사랑으로 무장한 작가의 모습이 책갈피갈피에 깃들어 있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고 돌보는 일은 나를 일으키고 안아주는 힘이 된다.
따뜻해지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를 해 볼 때이다.
삶에 필요한 사람은 하나여도 괜찮다. 같이 우산을 나눠 쓸 사람 하나. 문득 전화 걸고픈 사람 하나. 긴 편지 보내고픈 사람 하나. 따뜻한 식사 나눌 사람 하나. 닮고 싶은 사람 하나. 나다운 나 하나. 그런 사람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는 게 내 삶을 꾸리는 일이다. 좋은 사람 되기가 아니라 좋은 사람 찾기가 내가 살고 싶은 방식임을 이 책을 통해서 선명하게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