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무, 폐품의 환골탈태

이재효 갤러리

by 정유스티나
이재효.jpg 작가 이재효 님_사진이 흐리니 검색 요망~^^


양평은 예술의 고장이다.

특히 화가와 문학가의 작업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재효'라는 작가를 이곳 양평에 와서 처음 알았다.

'양평 도서관' 1층을 웅장하게 장식하고 있는 나무로 만든 작품을 보고 태어나 처음 접하는 장르의 작품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글동글 통나무를 이어 붙여서 어떻게 저런 매끄럽고도 웅장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그런데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가 양평에 있고 우리 집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쾌재를 불렀다.

가는 거야!


갤.jpg 이재효 갤러리의 상징_거대한 은빛나무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찾아가는 갤러리는 널따란 신작로가 좁아지는 산골의 길을 마주할 때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은빛 나무 조형을 발견하니 실눈을 뜨고 운전을 해야 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나무를 보니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이 나무를 타고 하늘에 오를 것 같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속에 반짝이는 나무의 신비로운 자태에 경탄을 하며 기대감은 한껏 고조되었다.




갤1.jpg 갤러리 입구_돌, 돌, 돌


갤2.jpg 갤러리와 갤러리를 잇는 길에 매달린 돌



태초에 말씀이 있듯이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아우르는 인류의 근간을 보면 태초에 돌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돌은 모두 가져온 것 같은 수많은 돌멩이를 한 땀 한 땀 철사로 매달았다.

혼자 있을 때는 길 가에서 만나는 흔하디 흔한 돌멩이 주제지만 이렇게 함께 있으니 어마무시한 작품이 되었다. 마치 가을 하늘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 같았다. 작가도 대롱대롱 달려 있는 곶감에서 영감을 얻었을까? 손을 뻗어 하나 뚝 떼어다 입에 넣고 싶어서 신물이 올라왔다.




갤4.jpg 나뭇잎, 나뭇잎, 나뭇잎


갤5.jpg 엄마 나무 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자식 나뭇잎들



돌만 매단 것이 아니다.

어디서 이렇게 수많은 낙엽을 주워 모았으며 또 가지런히 잘 말렸는지 입이 떡 벌어졌다.

가을 거리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불쏘시개가 되던지 퇴비로 쓰인다면 가치 있는 생을 마감했을 낙엽을 정갈하게 한 켜 한 켜 매달았더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위대한 예술품으로 환생한다.

이건 마치 떡시루에서 방금 나온 따끈한 시루떡을 보는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또 하나 뚝 떼 내어 친구 입에 넣어 주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을 작가 혼자 매달았을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드는 불경을 범하며 우리의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아 날아가는 똥파리가 낙상할 지경이다.

우아~우아~우아~~

이 소리는 이재효 갤러리를 방문한 예술에 무식한 아녀자 3명이 질러대는 양평의 소리입니다!




싸리콜라쥬.jpg 싸리의 묵직한 존재감



돌, 나뭇잎.

그다음 재료는 싸리나무였다.

내가 아는 그 싸리나무가 맞는가?

마당을 쓰는 용도로 쓰이지만 그것이 예술 작품으로 승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내가 살아온 동안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싸리의 쓰임새는 마당을 쓰는 것만이 아니었다.

작가의 머리와 손을 거치니 훌륭한 예술품으로 탈바꿈하여 자랑스럽게 존재감을 뿜뿜 풍기며 전시장을 빛내고 있다.

하늘과 땅이 생기던 태곳적 지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회오리를 굽이굽이 담아 휘몰아친 삶의 덩어리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싸리나무를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준 적이 있는가.

작가는 우리 주위에 널려 있기에 소중함을 잊은 것은 기본이고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홀대했던 자연물에게 따스한 혼을 불어넣고 세상의 시름에 찌든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다.

"괜찮다. 괜찮다."

강아지똥에 버금가는 우리도 이렇게 환골탈태했고 이렇게 너희들을 위로하지 않느냐고 작가의 손을 빌어 조용히 속삭인다.

돌, 나뭇잎, 싸리나무가 빚어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물렀다.

감탄사가 삐어져 나오는 걸 간신히 틀어막으며 그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사랑해. 사랑해."





나무.jpg 나무, 그 향기 나는 고향


그리고, 이재효 갤러리의 묵직한 주인장.

나무가 있다.

아름드리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는 절망을 느낄 만큼 거대한 나무를 자르고 자르고 문지르고 문질러서 반질반질 윤을 낸 조각들을 어찌 그리 정교하고도 매끄럽게 이어 붙였는지 불가사의하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한 셀 수 없을 만큼의 담금질과 톱질과 사포질의 지난한 여정을 내 짧은 상상력으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와 머릿속에서 구상해서 손끝으로 낳은 작품 세계는 범인의 생각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저 높은 경지에 있다.

거인 나라에 떨어진 걸리버가 된 기분이다.



합체.jpg 돌, 나뭇잎, 싸리가 함께 사는 세상



돌, 나뭇잎, 싸리나무, 그리고 나무.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도 처연하다.

오래되고 낡았으며 할 일을 다 했기에 소외되어 버려진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내는 작품에서는 천상에서 울려 퍼지는 천사들의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환청은 아니다. 그건 작품을 본 사람들이 마음으로 부르는 하모니다.

"애썼다. 애썼다."




화투.jpg 화투장은 애환을 싣고



화투짝을 하나하나 열을 가해 구부려 작은 우주를 만들어 다시 빽빽하게 이어 붙여 군상을 표현한 작품.

화투장 하나하나에 인생사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는 것처럼 입을 쫑알댄다.

입만 살아서 빠끔 거리는 우리네 소시민을 대변하여 연신 재잘대는 화투장이 애처롭지만 명랑하다.

이 작품에 화투가 몇 장이나 들어갔을까?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입맛을 쩝 다신다.





폐품@.jpg 작가의 기상천외 장난감







실.jpg 강아지 꼬리와 고기 낚는 낚시 바늘




작가가 다락방 한 구석이나 계단 아래에 콕 박혀서 낄낄 웃으며 만들 놀던 장난감 같은 작품들이 전시된 방에 들어오니 개구쟁이가 된 것처럼 철없이 까불고 싶다.

고철덩어리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따스한 피가 흐르게 한 거대한 작품,

몽당연필로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재미있는 웃음을 만든 작품.

무명천에 바느질하며 마지막 바늘로 힘껏 치솟은 강아지 꼬리를 만들거나 물고기를 잡는 미끼를 만들어 폭소를 자아낸 작품.

두꺼운 사전을 정교하게 파내려 가 쇼생크 탈출을 재연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

작가가 사용한 재료는 세상의 쓰임이 다해서 사망 직전에 다다른 폐품이었다.

둥글고, 기다랗고, 세모나고, 쭈그러지고 찌그러지고, 삐쭉빼쭉, 삐뚤빼뚤하고.

세상의 모든 모양을 한 번씩 사용한 다양한 작품 앞에서 우리의 웃음과 마음도 따라 바뀐다.

마치 우리 손주가 갖고 노는 로봇이 되었다가 자동차가 되는 변신 장난감 같은 작품들이 잊고 살았던 동심을 찾게 해 준다.







카페.jpg 이 보다 더 예술적일 수 없는 카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동의 도가니를 식히기 위해 입장료에 포함된 커피 한 잔을 뽑아 갤러리 속 카페로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목마다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이 나란히 서거나 앉아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작품인 의자에 앉아 작품인 탁자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액자가 된 차창 너머 자연을 담은 수채화 한 폭을 두 눈에 담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작품에 이렇게 겁도 없이 덜렁 앉아도 되나?

작품에 이렇게 간도 크게 커피잔을 탁 내려놓아도 되나?

쉴 새 없이 쉰 소리를 주절거리며 우리는 이재효 갤러리에

스며들었다.

심지어 커피맛도 일품이다.

마지막 보너스!

작가님의 실물을 영접하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카페에서 홀로 차를 마시고 있는 구부정한 뒷모습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어? 아까 프로필에서 본 실루엣인데... 혹시 이재효 작가님 아니세요?

시력이 제일 좋은 내가 조심스레 말을 거니 벌떡 일어나시며 수줍은 듯 주름살이 함께 웃는다.

사진 속 작가님은 꽤나 까칠한 눈빛이었는데, 의외로 순하고 선한 얼굴인 초로의 농부 같았다.

하지만 언뜻 예술가의 카리스마를 봤다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의 말에 동의의 박수와 함께 웃음이 깨처럼 쏟아진다.

작가의 작업은 기본으로 은근과 끈기와 단순 작업이라는 지루한 터널을 통과해야 작품이라는 아이를 만날 수 있다.

긴 글은 읽지 못하기에 엽편이라는 글의 장르가 인기이고, 유튜브의 5분 영상도 길다고 숏츠만 마구 눌러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작업 방식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고 시인은 노래하지만 이재효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침묵과 고뇌로 싸운 계절이 얼마나 길었을지 마음이 짠하다.

가슴이 답답해서 먼 하늘을 봐도 뭔가 시원치 않을 때, 마음의 불이 꺼지고 앞이 캄캄해 자꾸만 삐질삐질 눈물이 새어 나올 때 양평군 지평면에 숨어 있는 보물 '이재효 갤러리'를 찾기를.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터져 나오는 환희의 함성을 참을 인내심이 부족할 것이다.



갤끝.jpg 작가님,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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