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의 지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겠지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노래를 주크박스처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오늘은 이 시조가 계속 입에 맴돈다. 서울 둘레길 7코스를 1시간 당겨서 돌파했다. 해가 빨리 지는 겨울인데, 점심시간을 지나 해가 산 중턱에 걸린 늦은 시간에 걷기 시작했기에 마음이 급했다. 올라갈 때 너무 속도를 냈다. 평소 열심히 운동한 스쾃의 진가를 내심 흐뭇해하면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기에 만용을 부렸다.
'아직 죽지 않았어. 산티아고는 거뜬하게 걷겠는걸?'
언젠가는 가고야 말 산티아고 완주를 위한 전지훈련쯤으로 생각하며 둘레길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숨이 가빠질수록 나의 폐활량을 커질 것이고, 나의 심장은 열심히 운동하고 있을 것이기에 기분이 좋은 가학적 취향이다. 등에 땀이 흠뻑 젖도록 쉬지 않고 오르고 또 올랐다.
요즘 둘레길에는 데크가 많고 계단으로 올라가야 할 구간이 꽤 있다. 수많은 계단의 끝을 보면 절대로 올라가지 못한다. 아니 오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게 된다. 다만 내 눈앞의 한 계단, 한 계단만 보면서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을 찍는다.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나보고 말한다.
"이렇게 작은 한 점 속에서 복닥거리며 살고 있단다. 참 부질없는 일이지 않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이제는 등산할 때보다는 쉽다고 믿었던 하산길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숙제를 다 끝낸 기분으로 여유롭게 발자국을 뗀다.
그런데 아뿔싸!
무릎과 종아리에 경련이 인다. 마치 고장 난 나무 인형처럼 삐그덕 거리는 다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몸을 최대한 구부려서 꼭짓점을 낮추고, 몸을 90도 옆으로 돌린다. 이름하여 꽃게-곧 죽어도 그냥 게는 아니다-걸음으로 어기적거리면서 내려온다. 급하게 스틱을 꺼내서 삼족 보행을 시도한다. 평소에는 이족보행으로도 너끈하기에 스틱을 처음 사용해 본다. 스틱의 사용법을 몰라서 빳빳하게 서는 것이 아니라 쑥쑥 꺼진다. 남편이 권할 때마다 난 필요 없다고 조금은 거만하게 거절한 대가가 혹독하다. 인적이 드물어 지나가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편 방향에서 오고 있는 사람이 반갑다. 스틱을 겨우 완성해서 삼족 보행 거북이걸음으로 한 발 두 발 나아간다.
계속 무릎에서 통증이 기분 나쁘게 훑고 간다. 중간중간 무릎 돌리기와 종아리 마사지를 해 주고 다리를 달래며 살살 내려온다. 잔설과 낙엽에 감추어진 얼음 때문에 더욱더 긴장한다. 여기서 낙상이라도 하는 날에는 최소 전치 4주는 되리라는 공포심에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 너무 급하게 올라오느라 무릎에 무리를 준 것이다. 이제 나도 예전 같지 않구나 하는 자괴감에 몸보다 마음이 한층 더 무겁다.
'나의 버킷리스트인 산티아고는 꼭 완주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다행히 몸이 풀리고 다리도 적응을 했는지 통증이 잦아들고 평지에 마지막 발을 디딜 때는 예전의 컨디션을 찾았다.
인생과 등산이 많이 닮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고전적인 교훈은 차치하고라도, 올라갈 때는 운동되니 좋고 내려갈 때는 쉼이 있어 좋다. 정상을 찍으면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최대한 겸손하고 지혜롭게 천천히 내려와야 하는 등산의 지혜를 인생길에 대입해 본다. 오늘 하산 길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잘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등산 속도를 늦추니 풍경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바람도 느껴졌다.
인생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이고 숨어 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잘 나갈 때 겸손하고, 못 나갈 때 좌절말자. 손뼉 칠 때 떠나야 하고, 내려가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이제는 올라야 할 나이보다 내려가야 할 나이이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물리적인 짐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짐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남은 소풍을 즐겨야겠다.
하산이 나에게 가르쳐 준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