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25탄
2024년 4월 18일 (목)
조지아 바투미에서 국경을 넘어 튀르키예로 왔다. 호파(Hopa)를 지나 수십분 더 달려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낮에는 30도에 이르는 더위였지만 지금은 선선하니 뽀송하다.
오늘 넘은 곳은 Sarpi 국경이다. 조지아 입국 못할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전날부터 엄청 긴장했다. 조지아 국경을 넘기 위해 받은 임시번호판만 반납하면 곱게 보내주는 줄 알았는데, 블로그를 뒤지다보니 번호판에 딸린 임시등록증 같은 문서를 요구했고 그걸 받으러 다시 바투미로 갈뻔한 사례를 접한 것이다. 그때부터 불안감이 커졌다. 아무 문서도 받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바투미의 마지막날을 국경통과 준비에 투자하기로 했다. 아침일찍 블로그에서 알려준 “revenew service”라는 곳에 갔다. 찾아보니 세무서같은 곳인데, 막상 가니 다른 곳에서 하는 업무라고 한다. 우리는 ”MIA service agency”로 이동했다. 운전면허나 자동차 번호판을 발급해주는 곳이다. 신기한건 총기류 신고도 취급하는 것 같다.
막상 들어가니 아무도 우리말을 들어주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다시 저어쪽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얼추 목표한 곳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문서를 발급해주지는 않고서 번호판을 하나 더 만들고 그걸 갖고 국경에 가라는 언뜻 이해가지 않는 프로세스를 제시했다. 우리는 일단 국경에 가서 부딪혀보기로 한다. 한국 자동차로 일시수출입 절차를 밟았으니 무슨 문제?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건 통했다!)
바투미의 마지막날
소득없이 관공서를 나온 우리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지금 당장 떠날까도 했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하기로 한 것을 안정감있게 해내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생각으로 까르푸에 생필품을 사러 갔다. 그리고 웬디스에서 매콤한 할라피뇨 치킨버거를 시켜 먹었다. 바투미의 마지막 저녁은 맥주를 나눠마시며 아름다운 흑해의 일몰을 끝까지 바라봤다. 하나씩 거칠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지길 바라며.
드디어 국경을 넘는날. 아침일찍 일어난 우리는 씻는 둥 마는 둥 얼른 국경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면 줄이 길어지거든! 긴장+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조지아 국경을 통과했다. 의외로 쉽게 통과했다. 케바케, 고통 총량의 법칙인가? 조자아, 터키는 동승자가 내려서 따로 이동해야 한다. 우리는 조지아 국경에서 연락두절의 아찔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국경통과까지 지켜보다가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경은 금방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지만 하나는 도무지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정확히는 나올뻔하다가 다시 돌아갔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기다리자. 진짜 문제가 생겼다면 하나가 만나러 나올 것이고, 해결되는 일이면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나오겠지.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이 커져서 세관에다 물어볼 참이었다. 그 순간 나오는 레디, 무작위 엑스레이검사에 당첨되서 검사 받느라 늦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튀르키예에 진입했다!
한동안 흑해를 끼고 달렸다. 미리 받은 오프라인 지도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호파에 위치한 보다폰으로 가서 심카드를 끼웠다. 그리고 바로 옆의 케밥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2인분(음료 포함)에 약 1만원 남짓, 양은 많았다. 튀르키예는 인플레이션으로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고무줄 물가라고 한다. 유심도 상당히 비쌌다. 솔직히 조금 바가지라 생각하지만 처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휴대폰 앱을 통해 돈을 충전해서 데이터를 구입할 수 있는 방법도 익혔다. 점점 여행의 기술이 는다.
오늘 보금자리인 ‘단지 캠핑’은 샤워, 세탁이 가능하기에 선택한 곳이다.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설산의 전망이 보이는 멋진 곳이다. 우리는 나무데크까지 있는 사이트에 자리잡고 드디어 캠핑카를 완전히 오픈 시켰다. 청소하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시원한 그늘 아래서 맥주를 한캔 땄다. 늦은 오후에는 쿠키와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저녁식사는 오랜만에 야외에서 고기를 구웠다. 오랜만에 평온한 날이다.
진짜 여행길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위기를 함께 넘으며 오늘도 팀워크를 키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