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뭔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했고, 퇴근했다.
현관문을 열자 캄캄한 집 안이 나를 맞이한다.
운동 때문일까, 아니면 하루 종일 쌓인 업무 때문일까.
피로는 뼛속까지 스며들고, 생각은 구겨진 빨래처럼 엉켜 있다.
그래도 이 집이 좋다.
작고 조용한 이 공간은
내 이십 대의 열정, 삼십 대의 불안을
모두 갈아 넣어 만든 나만의 보금자리다.
퇴사의 꿈은 여전히 멀고,
가끔은 휑하고 외롭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집 안에서는 적어도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
샤워기를 틀고 조용히 앉는다.
물줄기가 흐르듯 오늘 하루도 흘러간다.
그리고 문득,
어쩌면 내게 아이가 있다면
이런 밤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를 닮았지만,
내 아픔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
나는 유전자가 무섭다.
나는 병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운명인지, 몸의 잘못인지 헷갈리는 밤들이 많았다.
그래서 늘 두려웠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는 일이니까.
그런데 요즘, 자꾸 상상하게 된다.
작은 울음소리.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내 품 안에서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아기.
그래서 그런가..
배가 불러오는 게 꼭
예전 똥배와 다른 거 같고 생리 일자가 다다랗는데 감감무소식이고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임신 테스트라는 미친 생각이 잠시 스쳐간다
근데
한 줄 뿐일까 봐 실망할 것만 같다.
그럴 리 없다고,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상상이 맞겠지
설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