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호박죽. 팥칼국수.
내게는 '시골', '외할머니'를 연상케 하는 추억의 음식들이다.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보며 '그리움'의 감정이 떠오른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며 아련한 향수를 느낄 때와 비슷하달까.
어릴 때, 외할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신 팥죽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부드럽고 담백하고 구수하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더 주세요"를 두 번. 총 세 그릇을 채워야 만족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무뚝뚝하신 분들이다.
표현도 잘 안 하시고 말씀도 잘 안 하시는. 그래도 그 무뚝뚝함 너머로 손주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조금은 전해졌다. 우리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애정 어린 눈빛을 통해서.
그래서인지. 시골 냄새가 날 때라든가 팥죽을 볼 때는 자꾸만 외할머니댁이 그리워진다. 그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뛰놀던 내가 그리운 건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그리운 건지, 팥죽이 그리운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은 봄볕처럼 환하고 감미롭다. 시골에 가면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구깃해진 지폐를 우리 손에 꼭 쥐어주시곤 했는데, 멀리 사는 손주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그 애틋한 마음을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20대 중반일 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지금 많이 편찮으시다. 얼마 전엔 수술도 받으셨다. 할머니가 편찮으신 후로는 팥죽을 볼 때마다 울컥 울음이 솟구치려고 한다. 꼭 건강을 회복하셨으면 좋겠다.
시골에 혼자 계시게 하는 게 마음이 쓰여서 이모가 모시게 되었는데, 일평생을 시골에서 지내셨던 할머니는 집이 그리우셨던 모양이다.
이모와 이모부가 출근했을 때, 집에 가겠다며 혼자 택시를 잡으려고 하셨단다. 그러다 젊은 남성분에게 택시 잡는 걸 도와달라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지금 발음이 많이 안 좋으신 데다가 여러모로 상황이 이상하다고 판단되었는지 경찰에게 연락했고 이모에게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때 엄마는 외할머니와 계속 통화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드렸다. 결국 할머니는 시골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요양보호사가 오시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해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얼마나 집이 그리우셨으면. 아무리 자식의 집이고 편하게 해 준다고 해도 일평생 살아온 자신의 집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마음이 너무 애달파서 눈물이 났다. 차마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제 거동이 불편하셔서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팥죽은 먹지 못하겠지만, 괜찮다. 팥죽은 언제나 내게 환상의 음식으로 기억될 테니까.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추억이 담긴.
당신에게도 '그리움의 음식'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