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녀의 맛깔난 예수(60)
어제 글 수업을 마치고 저녁 대충 때우고, 기다시피 들어와 씻지도 않고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습니다. 먹고사는 걸 도와주는 어느 편집자와 통화하기로 해 놓고 그조차 못했습니다. 김편집장님, 미안해요...
일본에 다녀온 여파가 만만치 않습니다. 동행 8명이 서로 돌아가며 안부를 묻습니다. 몸이 괜찮냐고. 살아났냐고? 전부 안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의 행사였습니다. 8명이 6,661명의 제사를 모셨으니, 그것도 100년 만에.
신아연 / 2023 관동대학살 추모제가 열린 아라카와 강
신아연 / 100년 전 억울하고 비통하게 학살된 넋들
기온이 35도를 육박했던 아라카와 강변과 동경거리를 온종일, 발이 부르트도록 누비고 다녔으니까요. 뙤약볕 아래서 일정을 마치고 9시 무렵에 저녁을 먹었는데 그나마 밤 12시까지 못 먹은 사람도 있었고, 아라카와 강 둔치에서 밤샘을 하기도 했고요.
지독한 열대야, 강낭콩 껍질 속 같은 숙소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인 사람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었지요. 끝까지 함께한 일행 중 제가 제일 나이가 적었으니 이런 엄살도 제 블로그에서나 통하겠지요.^^
이렇게 말하니 도대체 일본에서 5박6일간 무슨 험한 일을 겪고 왔나 궁금하실 텐데, 대부분 '여행'을 하고 온 줄로 알고 계셔서 더욱. 솔직히 저도 그렇게 고생길이 될 줄 모르고 따라갔더랬지요.^^
다녀와서 매체에 글을 써주기로 해놓고는 시작도 못하고 있네요. 기왕 늦은 것, 차차, 차차 하겠습니다. 우선 몸을 회복한 후에. 생업글도 밀린 상태라.
장영식 / 1923 관동대학살로 죽임당한 6,661명을 화장하기 전, 우리 일행과 재일동포 및 일본인들과 함께
장영식 / 희생자를 상징하는 종이인형 넋전을 들고
어제 그 길고 긴 동영상을 다 보시고, 동영상보다 더 길고 긴 피드백을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송구하고 감사하고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내가 뭐라고...', 또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내가 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이 하시는 거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실상 나는 올챙이도 못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저의 정체성으로 삼습니다. 나는 올챙이는 고사하고 개구리 알만도 못한 존재라고.
나는 25년 간 매맞는 아내였다가 맨 몸뚱이로 집을 나왔고, 1년을 김밥과 라면으로 버티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용됐다! 누구 덕분에? 하나님 덕분에.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라고 보내주신 사람들 덕분에. 따라서 내 힘으로 살아낸 것은 시쳇말로 1도 없다. 따라서 나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나를 도와주셨듯이.
결국 모두 생명에 관한 일인 것입니다.
100년 전 관동대학살로 죽어간 6,661명도, 제가 목격한 한 명의 스위스 조력자살자도, 그리고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저 역시도.
저는 어제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억울한 타살과 어리석은 자살과 제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이 슬퍼서.
그리곤 다짐합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지 않냐고.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냐고. 어떻게 만난 하나님인데, 귀한 시간 허송 세월로 다 가고 60살이 되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이사야 42장 3,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