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성찰> 시리즈 6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창가를 스치며 방 안을 노랗게 물들인다.
남편은 이른 새벽, 골프 라운딩을 위해 집을 나섰다.
이곳 캐나다의 골프장은 한국처럼 그늘막이 잘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남편의 도시락과 과일을 정성껏 챙긴다.
함께 가는 멤버들이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기에
남편의 몫을 조금 넉넉히 싸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오늘의 도시락은 꼬마김밥이다.
텃밭에서 자란 깻잎 향과 고소한 계란, 아삭한 당근,
단무지, 그리고 작년에 담가둔 고추장아찌를 넣어
작고 단단하게 말았다.
한입 베어문 남편이 “정말 맛있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그 미소 속에서 내 마음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오늘 오후엔 가을비가 내린다고 했다.
남편은 우의를 챙겨 나섰고,
그 뒷모습을 창가에서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이제 나의 조용한 하루가 시작된다.
한 달 전, 한인 농장에서 사온 붉은 고추를
식초물에 담가두었다가 햇살 좋은 날마다 뒤집으며 말렸다.
그렇게 정성껏 말린 고추들이 이제 고운 고춧가루로 변할 차례다.
이곳엔 한국처럼 방앗간이 없으니
나는 직접 블렌더에 넣어 곱게 빻는다.
고추 꼭지를 따고, 먼지를 닦아내며
조용히 생각한다.
이 작은 일상의 손끝에서 고향의 향기가 피어난다.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족의 밥상을 준비하시던 풍경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 모든 정성과 사랑이
그저 ‘당연한 일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이 먼 땅에서,
그 손맛과 정성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움은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내 마음으로 돌아온다.
다음 주에는 내가 처음으로 고추장을 담가볼 예정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비록 이곳의 공기와 물이 다르지만,
그 속에 담길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오후가 되면,
남편이 좋아하는 소고기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든다.
메추리알은 천일염을 넣어 삶고,
소고기는 핏물을 빼고 다시마, 표고, 마늘, 통후추로 만든 육수에 푹 졸인다.
짭조름하면서도 은근한 단맛이 밥 한 숟가락을 불러낸다.
골프를 마치고 돌아올 남편이
그 장조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사실 우리 부부는 남편의 건강 문제로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 끼니마다 정성을 다하고,
남편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며 맛있게 먹어준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매일의 식탁 위에,
조용히 오르는 한 그릇의 반찬 속에 있다.
이민자의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소소한 행복과 깊은 성찰이 있다.
텃밭의 흙 냄새, 고춧가루의 붉은 빛,
그리고 남편의 웃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작지만 단단한 행복을 일군다.
멀리 이국의 땅에 있어도
사랑과 기억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다.
그리움은 오늘도 내 안에서 자라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그 정성을 곱게 빻아 마음속에 담으면,
그곳이 곧 나의 행복의 정원,
그리고 그리움과 성찰이 피어나는 자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