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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Aug 28. 2023

12. 딸 둘로 만족하는데, 득남이라니요

'이상한' 사람들 덕분에 나는 세 아이 엄마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구역장 집사님 항시 지켜주시옵고, 딸만 둘 있사온데, 아무쪼록 옥동자 같은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옵고…….”     


마 씨 할머니, 이사 온 혜영 언니, 중국교포 옥분 아줌마 그리고 나. 어쩌다 우리는 한 구역이 되었다. 구역장인 나는 말씀을 전하기 전 한 분에게 대표 기도를 부탁했다. 마 씨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셨다. 간곡히 말씀 듣고 깨달음을 얻도록만 기도하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마 씨 할머니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기도했다. 마음이 언짢았다. 마 씨 할머니는 ‘이상한’ 사람이다.   

  

나무위키에서 옥동자를 검색하면 옥처럼 아름답고 귀한 아들이라고 나온다. 몹시 소중한 아들, 잘생긴 사내아이를 칭찬할 때 쓰는 말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옥동자를 치면 지금은 폐지된 KBS의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한때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정종철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이미지 검색으로 뜬다.   

   

그렇다. 내 기분이 언짢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아들 낳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내 맘에 쏙 드는 현빈도 아니고, 원 빈도 아닌 개그맨 정종철이 그때 옥동자였으니까. 그래서 마 씨 할머니의 기도가 끝나면 나는 꼭 싹 바가지 없이 한마디 했다.


“어머니, 하나님이 모든 기도에 다 응답하는 게 아닌 건 아시죠? 아마 그 기도는 응답 안 될 거예요. 제가 아들 낳으라는 기도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할머니는 매번 그렇게 기도하셨다. 언제부턴가 어른에게 잔소리하기도 지쳐가고, 어차피 이루어질 기도가 아니라고 무시했다. 내 사전에 아이는 더 없었다. 딸만 둘이지만, 나는 성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며 굳이 아들을 낳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 집사님. 항상 집사님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데, 왠지 아들이 있었으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사님 부부 아들 낳으시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아~~ 아니요. 절대 그런 기도하지 마세요. 저는 아이 낳고 싶지 않아요.”    

  

본인은 아이를 낳지도 않았으면서 굳이 내가 아들 낳기를 기도한다는 권 집사의 말에 짜증이 밀려왔다. ‘자기나 아들 달라고 기도하지 왜 남의 집 가족계획까지 세우고 난리야. 진짜.’ 나는 권 집사가 보이면 멀리 돌아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은 언제 왔는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는 친한 척하며 작은 포켓 수첩을 꺼냈다. 자기가 기도한 모든 내용을 여기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면서 내 이름 옆에 ‘아들 낳게 해주세요’ 적어놓는 글을 보여주었다. 소름 돋았다. 권 집사는 ‘이상한’ 사람이다.    

 

“집사님 아들 낳으세요. 기도합니다.”

“아니요. 저는 지금 딱 좋아요. 아들 없어도 돼요” 

예배당 앞에서 마주친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보통은 상대방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하는 편인데 전광석화같이 반응이 튀어나왔다. 목사님까지 왜 이러실까. 존경하는 목사님이시고 그분의 이야기라면 턱을 괴고 들으며 어떻든 순종할 마음이 컸지만, 이건 아니잖아. 다른 모든 말씀에 “오케이 아멘!”이지만,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도 싫었다.  

    

은혜를 받은 이후로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적응이 잘 안 됐다. 가식인가? ‘사랑한다. 예쁘다. 좋다. 기도한다. 축복한다. 잘한다.’ 이런 칭찬들이 난무하는 것도 닭살 돋는데, 아이까지 낳으라고 하네. 이런!   

   

열심히 성경 읽고, 예배와 모임에 참석해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기도가 응답 된다는 말씀에 새벽 기도도 다녔지만, 기도가 응답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나 보다. 예상은 빗나갔고, 나는 득남했다.  

   

사진: Unsplash의Omar Lopez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시고, 비웃기라도 하듯 의지를 꺾으신다. 여러 ‘이상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신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든. 그 후로 그분들이 얼마나 더 기도하셨는지 모르지만, 설교를 듣다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자녀가 축복인 것이 믿어지는 순간이 오다니. 

     

조심한다고 잉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며, 간절히 원한다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그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졸음이 쏟아졌다. 한 번도 기도하면서 졸았던 적이 없는데, 유독 기도가 끊기고 졸리기까지 했다. 비몽사몽 간에 쓱쓱 싸리비로 마당 쓸 듯 기도가 쓸려나가고 하늘에서 단어들이 춤을 추듯 내려왔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기도문을 읽는 듯했다.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이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고 독주와 포도주를 마시게 하지 않으며 그의 평생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려고 세 번 입을 다물었다는 사실이다. 입을 다물면 기도가 멈추었고 입을 열면 다시금 이 기도문을 처음부터 반복했다.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좀 피곤하고. ‘안 되겠다 얼른 기도를 끝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순간 망설여졌다.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니까. ‘아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터덜거렸다. 예배당을 빠져 나와 여명이 차오르는 하늘을 쏘아보며 외쳤다.  

   

“ 하나님! 이 기도 취소” 



내가 아들 낳기를 기도했던 그분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식적이라서 ‘예쁘다’, ‘잘한다’ 칭찬하며 웃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개중에는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어디에서나 그렇듯 흉내를 내는 가짜도 더러 섞여 있겠지만. 그들은 신실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가운데도 어떠한 마음을 받았으며 그것을 실천했을 뿐이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했다.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오히려 뒤틀리고 왜곡된 시선이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보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끔 밉기도 했던 남편이 불쌍해서 저기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울컥 눈물이 난다든지. 갑자기 말이 생각과는 다르게 예쁘게 나온다든지. 잘 참지 못하던 화가 참아진다든지. 친하지도 않고 심지어 싫어서 얼굴을 돌리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선을 베풀게 되기도 한다. 

     

사진: Unsplash의Kelly Sikkema

물론 이런 현상이 계속 가진 않는다. 곧 본연의 나로 돌아온다.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면 그것은 알게 된 것이다. 나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 귀한 사람이며 말 한 번 섞지 않았던 이웃도 사랑해야 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깊이 기도하면 성령께서 내 모습을 환히 비추어 줄 때가 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언어 습관도 보이고, 생각 습관도 그려질 때가 있다. 그러면 조금 바꿔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되고 변화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실수할 때마다 조금 더 빨리 그것을 수정하거나 돌이킬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달라진다.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것은 경이로움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응답을 누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기쁨을 맛보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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