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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Oct 16. 2023

[건설법무] 영문 건설계약 주요 검토포인트 (상)


개인적으로 저는 영어 말하기(Speaking) 실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길 가다가 ‘길 물어 볼 것 같은 외국인’이 보이면 딴 길로 돌아가는 수준… 예전 스피킹맥스 광고에 나오는 ‘머리에 분수 뿜어져 나오는 한국인’ 그 자체입니다.


다만, 영어 읽기(Reading) – 그 중에서도 특히 ‘계약서’ – 에 대해서는, 법률적 검토 가능한 수준은 됩니다. 발음은 안 되지만 글로 써 놓으면 대략 알아먹긴 하죠. 계약서에 쓰는 영어는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어서 몇 건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구요.

그리고, 영어 쓰기(Writing) 영역에서는 매우 강력한 업무동반자가 있습니다. ‘파파고’가 있죠. 일단 한글 문장을 번역체 스타일로 작성한 뒤 파파고 돌리고 주요 단어만 계약서에 맞게 바꿔 주면 영문계약 작성 완료! 참 쉽죠?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영문계약 1건 처리하는 게 국문 업무보다 3배 이상 높은 업무강도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회사에서 미국사업을 하면서 영문계약(주로 건설계약)을 자주 보게 됐는데, 이걸 하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두서없이 정리해 봤습니다. 어떤 체계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그냥 마구잡이 경험을 정리한 것이니, 참고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된 내용이 ‘건설계약’에 관한 것이라 국내 건설계약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국내 민간건설공사표준계약 및 건설산업기본법/하도급법을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이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목차만 요약하겠습니다.


1) 비슷한 조항 : 용어의 정의, 공사기간, 공사물량, 공사대금, 검사, 기성률 확인, 불가항력 등

2) 총액계약 : Lump sum 또는 Fixed-price 조항. 다만, 대부분 공사변경(Change Order)은 인정

3) 공사변경(Change Order) : 반드시 ‘발주자 서면승낙’ 필요

4) 지체상금 및 공사단축 인센티브 :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은 비슷하나 좀 더 디테일한 경우가 많음. 공사단축 인센티브는 국내건설공사에 거의 없으나 미국 쪽에서는 은근 많은 듯

5) 해지 및 공사중단 : 양 측 귀책사유 해지는 비슷하나, ‘발주자 임의해지 또는 임의 공사중단’의 범위가 국내 건설공사계약보다 넓은 편. 민법의 차이도 있음.

6) 보증보험 및 각종 보험 : 국내 건설공사계약의 3대 보증보험 외에 훨씬 더 많은 형태의 보험을 요구. 실무부서가 해결…

* 7) 하도급 유의사항 : Back To Back 또는 Pay-When-Paid. 국내 하도급법과 다르고 미국에서도 각 주 별로 다르다고 하므로 주의 필요 *

8) 하자보증 기간 : 국내와 많이 다르게 ‘전체 공사’로 하자보증기간 정하는 경우가 많음. 준공된 후 하자문제인가 / 하자로 인해 아예 준공이 안 되는가 하는 다툼은 국내 법리와 비슷한 것 같음.

9) 관할 문제 : 미국의 각 주 별 건설업 신고 제도와 관련하여 복잡한 문제 생길 수 있음

10) 관용적으로 따라붙는 장황한 조항들 : 진지하게 대문자 쓰지만 실제로는 큰 의미 없음

11) 참고사항 : FIDIC 공부만으로는 바로 적응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FIDIC 있으면 좋음


정도로 서술하겠습니다.



1) 비슷한 조항 : 용어의 정의, 공사기간, 공사물량, 공사대금, 검사, 기성률 확인, 불가항력 등

국내든 해외든 간에, ‘건설공사’라면 결국 땅파기 / 파일박기 / 지지력 좋은 철근철골구조물 / 공구리타설 / 내부공사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건 바뀔 수가 없겠죠. 도면도 거의 전세계 통일이라 기술자들은 서로 다 이해합니다.

미국 건설공사계약도 핵심조항은 국내계약과 비슷합니다. 기간, 공사물량, 대금 등은 당연히 들어가야죠. 중간중간 공사 기성률 확인하고 중간검사+최종검사 하는 것도 비슷하구요.

다만, ‘법무검토’ 입장에서는 이 핵심조항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무담당자가 결정하는 게 아니거든요. 사업부에서 잘 협의해서 오겠죠.


법무검토는 국내나 해외나 비슷하게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분쟁 안 일어나는 게 최선이겠지만 만에 하나 분쟁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는가, 그걸 가상 설정하면서 검토 진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해외에서 공통되는 사항 중 최근 자주 논의된 게 ‘불가항력(Force Majeure)’일 것 같네요. 바로 ‘코로나19’ 사태였습니다.


2021년 이후 계약에서 대부분 Epidemic 내지 Pandemic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지역적이냐 / 국제적이냐의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저는 계약검토 할 때 이걸 특히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일단 한 번 지나갔으니 앞으로 10년 정도는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뒤에 별 일 생기면 그 때 중요해지겠죠;;


국내-해외 비슷한 조항들은 이 정도만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2) 총액계약 : Lump sum 또는 Fixed-price 조항. 다만, 대부분 공사변경(Change Order)은 인정

별도로 분리하긴 했는데, 국내 건설공사계약에서도 총액계약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국내-해외 공통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턴키(Turn-key)계약이 유행하면서 총액계약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별도의 설계변경/물가변동 사유가 없는 한’ 원래 정해 놓은 공사대금은 바뀌지 않는다는 취지죠.

다만, 제목에 썼듯이 실제 이 조항에도 불구하고 ‘공사대금 증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설실무에서는 흔히 클레임(Claim) 이라고도 하죠.


클레임. 공사비 증액 분쟁. 건설법무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하지만 클레임으로는 열심히 때릴 수 있습니다. 원래 비용부서인 법무가 ‘돈 더 받아 오는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영역인데 당연히 열심히 때려야죠.

공사비 증액을 요구할 때, 상대방(발주처) 측에서는 주로 총액계약 조항을 원용해 ‘최초 정한 금액만 주면 끝이다!’라고 얘기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말 한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죠. 시공사는 돈 더 받아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됩니다.

계약검토 단계에서 총액계약(Lump sum, Fixed-price)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대부분 안 먹힙니다. 다만, 다른 조항과의 관계에서 추후 증액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명확히 하려면 공사변경(Change Order) 조항을 확인시켜 주는 게 좋습니다.


Ex) 본 계약은 총액계약으로서 정해진 공사대금 이상을 청구할 수 없다. 단, Article ~에 따른 공사변경(Change Order)이 발생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결국 공사변경 조항이 핵심이겠죠. 아래에서 계속 서술합니다.



3) 공사변경(Change Order) : 반드시 ‘발주자 서면승낙’ 필요


공사변경은 발주자의 지시 또는 승낙이 필요합니다. 공사 내용을 바꾸려 한다면, 그 공사목적물을 인수해 활용할 발주자가 원래 정해진 공사 스펙을 변경하거나 변경 승인을 해 주는 게 당연합니다. 발주자가 최종 소유자니까요.


그런데, 국내 건설공사 클레임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발주자의 서면승인없이 진행된 공사인 경우에도 공사대금 증액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고 실제 청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률적으로 말하면 묵시적 승낙 / 사전 승낙 / 부당이득 내지 사무관리 주장 등인데, 이런 주장을 앞세워서 ‘발주자 서면승인 없었던 공사항목’에 대해 대금청구소송 하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국내 건설공사 한정입니다.)


공사변경에서의 묵시적 승낙은, ‘시공자가 임의로 설계와 다르게 시공했는데 그 시공 내용이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고 발주자가 추후 이를 확인하고서도 이의제기를 안 한 경우’에 성립할 것입니다. 발주자도 변경된 내용이 마음에 드니까 가만 있는 거죠.


사전 승낙은, 주로 설계변경/물가변동/공기연장 이라는 3대 클레임 조항에 미리 합의했을 경우입니다. 가장 많이 문제되는 게 ‘물가변동’일 텐데요.

국내계약에서는 하도급법 등에 따라 일정 규모 이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당한 사유 없는 한 물가변동을 인정해 주게 되어 있고, 최근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더 확대됐습니다. 하도급법 적용 대상 계약에서는 총액합의로 물가변동 조항을 배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당이득 내지 사무관리 주장은 위 묵시적 승낙과 병행하여 주장할 때가 많은데요. ‘발주자의 지시 없이 진행된 공사라 하더라도, 그 변경 공사로 인해 발주자가 이익을 얻었고 그 이익이 현존하는 한 발주자는 해당 공사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되겠네요.

(민법 몇 조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소송하면 변호사가 찾아보겠죠.)


국내 건설분쟁에서는 이 주장들이 통합니다. 턴키공사 등 설계까지 모두 시공사가 책임지는 상황에서 명시적으로 총액계약을 하고 설계변경-물가변동-공기연장 모두 다 배제한 건설공사라면 몰라도, 대다수 건설공사에서는 ‘사후적으로 증액청구’를 해도 나름대로의 사정만 있으면 그 증액청구 자체를 즉시 배척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외 건설공사라면 어떨까요?


저도 해외 건설공사 분쟁을 본격적으로/끝까지 진행해 본 적은 없습니다. 미국 쪽 법률체계에 한국과 비슷한 부당이득-사무관리 법리가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다만, 계약서만 놓고 본다면… 해외 건설공사의 경우, 발주자의 명시적인 서면승인 없이 임의로 시공한 공사는 증액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즉, 공사변경(Change Order)은 반.드.시 발주자의 서면승낙을 받아야 하는 거죠.


이는 계약서를 수정할 사항이 아니라, 계약서를 준수하여야 하는 사항입니다. 국제적으로는 FIDIC이든 미국식 계약이든 ‘서면승낙에 따른 공사변경만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를 한국식으로 ‘미리 정해 놓은 설계변경/물가변동 사유가 발생하면 바로 증액해 주세요’라고 수정하는 건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그 근거를 영어로 설명하는 건 더더욱 어렵겠죠;;


현업부서가 계약서에 따른 공사변경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법무 잘못이 아닙니다. 사전에 잘 설명했고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계약 체결하도록 했으면 법무담당자의 역할은 끝난 겁니다. 그 뒤에 계약대로 진행하는 건 현업의 역할이겠죠.

(물론 일 터지면 법무를 비롯한 모든 부서가 협업하여 대응해야겠지만… 서류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해외분쟁 시작하는 건 완전 비추입니다. 분쟁비용 억 단위로 소비하고 성과 없으면… 영 좋지 않은 상황이 되니, 이런 건 미리 피하는 게 최선입니다.)



4) 지체상금 및 공사단축 인센티브 :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은 비슷하나 좀 더 디테일한 경우가 많음. 공사단축 인센티브는 국내건설공사에 거의 없으나 미국 쪽에서는 은근 많은 듯

Liquidated Damage. 처음 들었을 때에는 ‘이게 뭥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손해를 액체화해서 마시는 건가, 뭐 그런 생각 들더군요.

아무튼 지체상금 조항은 국내와 비슷합니다. 준공일까지 준공 못하면 1일 지체 당 총 계약금액의 0.1~0.3% 사이 위약금 부과. 총 상한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음.


그런데, 지체상금 관련한 법리는 좀 다를 겁니다. 국내에서는 지체상금을 ‘손해배상의 예정’으로 보고 이게 너무 과다하면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는 반면(민법 393조였나 그럴 겁니다), 해외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당사자 간 약정을 우선시하는 영미법 체계에서라면 지체상금 감액이 어려울 것 같네요.


그리고, 미국 쪽 건설공사계약에서는 ‘공사단축 인센티브’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국내건설공사에서는 원래 에정일보다 빨리 끝냈다고 해서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미국 쪽은 이런 게 있더군요. 물론 시공사에게는 유리한 조항이니 굳이 수정할 필요 없습니다.



5) 해지 및 공사중단 : 양 측 귀책사유 해지는 비슷하나, ‘발주자 임의해지 또는 임의 공사중단’의 범위가 국내 건설공사계약보다 넓은 편. 민법의 차이도 있음.

공사계약 해지. 흔히 ‘타절(打切)’이라고 합니다. 뭐 일본식 용어 잔재라고 하지만 노가다 판에서 그런 거 잘 안 따집니다…

계약을 해지하는 사유는 공사뿐만 아니라 어디든 비슷합니다. 상대방이 망해서 (망할 것 같아서) 계약이행 못할 것 같으면 해지해야죠. 가급적 양 쪽 모두 균형잡힌 형태여야 할 거구요.

그런데, 해외 건설공사에서는 이 ‘양 쪽 균형’이 잘 안 맞습니다. 발주자 쪽에 더 광범위한 해지권한을 주는 경우가 많죠. 해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사 중단’을 하는 경우에도 발주자 쪽에 더 강한 권한을 줍니다.

발주자의 강한 권한. 이건 ‘발주자가 마음 내키면 한다’는 걸로 구현됩니다. 즉, ‘발주자 마음대로 언제든 공사 이행 중단시키고 공사계약 해지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등장하는 거죠.


계약서만 놓고 양 당사자 간 균형을 따져 보면 명백히 불합리해 보입니다. 국내 건설공사계약에는 이런 조항이 없기 때문에 더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죠. ‘아니 C발 미국 애들은 깡패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도급계약의 성질 및 국내 민법 규정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불합리한 조항은 아닙니다. 국내 민법 규정, 즉 도급계약에 관한 조항을 보면 ‘도급인은 완성 전까지 언제든 수급인의 손해를 배상하고 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나오거든요.


즉, 국내 건설공사에서도 도급인은 임의해제(해지)권한이 있습니다. 임의공사중단권은 법률이나 계약에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임의로 공사계약 자체를 해지해 버릴 수 있다면 당연히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대한민국 민법, 즉 판덱텐 체계에서는 기본적으로 법률을 상세히 만들고 계약서는 법률상의 임의규정을 수정보완하는 수준으로 작성하게 됩니다. 당연히 법률이 복잡해지고, 법률가들은 장기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반면, 영국 프랑스 미국 법률체계(‘꽁스뛰띠시옹 체계’라고 합니다)는 좀 다릅니다. ‘반 파운드짜리 계약서’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계약서를 상세히 써야 합니다. 계약서에 ‘발주자의 임의해지권 및 임의공사중단권’을 넣어야만 안심되겠죠.


(요즘은 판덱텐 국가 계약서도 길어지고 / 꽁스뛰띠시옹 계열은 짧아지는 추세입니다만, 그래도 계약서 펼쳐 놓고 비교해 보면 영국 미국 쪽이 확실히 더 깁니다.)


결국, 발주자 임의해지+임의공사중단 조항도 가급적 수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 ‘손실보상’은 있어야겠죠. Reimburse 어쩌고 하는 조항 들어가야 하고, 거기에는 간접비, 이윤, 기타 연관성 인정되는 손실이 다 포함되어야 할 겁니다.


*****


글을 쓰다 보니 좀 길어졌네요. 너무 길면 집중도가 떨어지니, 6)번 항목부터는 별도로 서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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