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잔금미납 정리
: 사실상 채권관리. 표준분양계약과 다르게 계약된 경우 이에 대한 사전 숙지 필요
분양, 공사, 준공승인, 입주. 이 과정을 다 끝내고 나면, 사실상 1건의 프로젝트가 종료됩니다. 큰 틀에서는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렇긴 한데, 짜잘하게 남아 있는 일들은 있죠. 앞 챕터에서 짧게 서술한 하자보수 문제도 몇 년 가고, 분양 과정에서 끝내 잔금 못 내고 계약해지된 건에 대한 후속조치도 해야 합니다.
앞 (3)번 챕터에서 예를 들었었는데, 그 예를 조금 변형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분양계약에 준해 ‘약정이자 1%가 있었다’는 전제로 갑니다.
- 5억짜리 분양계약. 계약금 5천만원, 중도금대출 3억원 발생한 상태에서 계약해제.
- 해제시 반환이자율은 1%로 약정 (시중 1금융권 평균예금금리 등등으로 실제는 1.3% 정도지만 일단 1%로 계산). 납입금 중 해약금 몰취되는 계약금 제외하고 나머지 3억원에 대해서만 이자 발생하는데, 아래와 같이 대략 퉁쳐서 반환이자 200만원 발생한 것으로 계산.
- 중도금대출의 이자율은 연4%. 1차 중도금은 약 2년 경과했고 5차 중도금은 1개월 됐지만 대략 퉁쳐서 이자 800만원 발생한 걸로 계산
- 계약이 해제되면 분양사업자는 수분양자 납입금 3.5억원에서 해약금 5천만원 및 중도금대출 이자 대납분 800만원을 공제. 2.92억원만 반환 (실제로는 중도금대출 금융기관에 전액 상환하고 부족분은 해당 금융기관이 추가 청구해서 받아감)
금융기관에 원금 3억원 상환해야 하므로, 최종적으로 회사는 -800만원 손해. 반환해야 할 이자 200만원 상계하더라도 ‘해당 해제 수분양자에게 600만원 돌려받아야 함’.
- 위 6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절차 개시
이미 분양계약 해제당하고 계약금 5천만원 날린 사람에게 무이자대납 취소 관련 추가손해 600만원을 더 청구하는 상황. 조금 부담스럽긴 하죠.
하지만, 법무담당자는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채권관리 또한 법무 영역이고, 채권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계산상 받을 금액 있으면 바로 법적 절차 개시해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돈이 없어서’ 분양계약 해제당하는 것이고 판결 받아도 집행할 재산 없는 걸로 결론날 때가 많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해야죠.)
법무담당자라면 대부분 절차는 아실 겁니다. 지급명령 – (이의제기시) 소액민사소송 – 판결 – 재산명시신청 – (통장 등 확인되면) 압류추심. 세부적으로 다 하려면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피곤하죠.
피곤해도 해야 합니다. 엑셀파일로 경과표 만들어 놓고 기계적으로 돌리면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일반적인 채권관리 프로세스 따라가면 됩니다.
가끔 이거 하다 보면 지급명령에 이의제기해서 정식소송 이관하시는 분들 있는데요. ‘회수’의 측면에서 보면 이건 매우 긍정적입니다. 별도 재산이 있고 그 재산 압류를 피하기 위해 다투시는 거라서, 민사조정 등을 통해 원금만 조기회수할 수도 있거든요.
제 경험상, 분양계약 해제 건 20건 중 4~5건은 채권회수 가능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연락두절되었거나 개인회생 중이거나 기타등등 변제자력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래도 총 비용 대비 회수율로 보면 회사에 이익이긴 하네요. 변호사 없이 자체진행으로 하면 할 만 합니다.
그리고, 이거 진행하실 때에는 앞 (3)번 챕터에서 얘기한 ‘납입금 반환시 무이자 약정 또는 반환이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를 유의하셔야 합니다. 무이자 약정이 무효가 되면 상사이자 6%고, 아예 반환이자 언급이 없어도 상사이자 6%입니다. 이거 적용되면 대부분 추가청구가 아니라 ‘더 돌려주는 것’으로 결론나게 되니 사전에 신경써야겠죠.
(물론 신경만 쓰는 겁니다. 약관규제법상 무효 법리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니 뭉개고 진행하라고 하면 해야죠. 그런 게 회사원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회사의 방침에 따르되, 사전에 법률적 리스크는 제대로 보고하는 것. 그게 법무담당자가 할 일입니다. 리스크를 없앨 수는 없어요.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
법과 판례를 바꾸라고 하는 분들이 윗선에 계시다면, [저에게 법 판례 다 바꿀 능력이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S전자 재드래곤 아재 상속문제 해결해 줬을 테고 그러면 연봉 1천억 이상 땡겼을 텐데 왜 이 회사에 있을까요? 당신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라고 반문해 주십시오. 물론 마음 속으로만;;
(10) 공사대금 정산 (아파트보다는 다른 공사에 많음)
: 소위 ‘클레임(Claim)’. 건설분쟁의 꽃. 이런 꽃 같은…
주로 아파트 위주로 설명을 해 왔는데, 당연히 건설업에는 아파트 공사만 있는 게 아닙니다. 2020년대로 넘어오면서 ‘아파트만 하는 건설사’가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지만, 원래 건설업에서 아파트 공사는 B~C급 공사로 취급받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죠.
처음에 말했듯이, 건설공사는 몇 년 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기 때문에 경제사정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설계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자재단가가 크게 출렁거릴 때도 있으며, 기상변화 등의 사정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사대금’이 변할 때. 대부분 최종 준공 단계에서 이 변동된 공사대금을 정산하게 됩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걸 클레임(Claim)이라 부르더군요.
처음 들으면 좀 낯선 느낌입니다. Claim의 사전적 정의는 ‘분쟁, 소송, 의견주장’ 등인데, 계약에 따라 공사대금 정산하고 증액받는 절차를 왜 클레임이라고 부를까? 아예 처음부터 소송 가자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뭐, 대략 해외에서 이렇게 부르다 보니 국내 건설업에도 반영된 것 같습니다. 대다수 용어가 일본식 잔재(殘在)인 것에 비하면 나름 최신용어… 일까요?
아파트에서는 이 클레임(공사대금 정산 증액)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시행시공 일괄 진행이면 같은 회사 내 사업부 간 문제이기 때문에 아예 신경쓸 필요 없고, 시행시공이 분리되어 있어도 어지간하면 공사 중 협의로 해결합니다.
다만, 최근 (2022년 경) 건설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재건축조합 등에서는 아파트 공사대금으로 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재건축조합은 그 자체가 법인격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몇백명의 조합원들이 총합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대금 올려 달라고 하면 (자기부담금이 확 높아지니) 엄청 격하게 싸우는 것 같습니다.
아파트도 클레임이 생기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통적인 클레임은 ‘플랜트 공사’와 ‘관급 토목 공사’에서 많이 생깁니다. 발전소, 상하수도처리시설, 항만, 도로, 교량, 터널 등 사회간접자본시설 공사에서는 공사대금 증액될 걸 예상하고 공사 시작한다고 봐야죠.
클레임 사유도 앞에서 잠시 언급했는데요. 설계변경, 물가변동, 공기연장, 기타사유 이렇게 4가지고 공기연장+기타사유는 거의 하나로 통합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서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클레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자주 들어가는데요. 총액합의(Lump sum)가 많아지면서 물가변동 불허 공사계약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에서는 물가변동을 삭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기획재정부 회계예규에 따라 체결하는 관급공사표준계약에는 물가변동 조항이 확실히 들어가 있고, 대한민국 관공서는 믿을 만 하거든요.
계약서에 나온 클레임(공사대금 증액) 사유를 확인했다면, 이를 입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원칙적인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자’인 원고에게 있으니, 원고가 증거를 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증거는 역시 ‘발주자의 서면승낙’입니다. [A공종을 변형 시공하시오]라는 지시, [A공종을 변형 시공하게 해 달라는 시공사의 요청에 대해 발주자가 승낙한다]는 승낙서. 이런 거 있으면 빼박 증액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있으면 소송까지 갈 필요도 없겠죠? 소송 갔다는 건, 달리 말하면 서면으로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건설현장은 매우 바쁩니다. 현장 공무담당자가 숙련되고 꼼꼼하며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면 추후 최종정산을 염두에 두고 계속 증액자료를 모으겠지만, 그게 늘 되는 건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로 증빙을 제때 못 갖추는 경우가 생기죠.
이렇게 증액사유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장하는 자’인 원고가 스스로 증거를 갖추지 못했으니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겠죠. 어떻게든 입증해야 합니다. 입증해서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는 게 회사원의 기본 자세죠.
입증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감정’입니다. 객관적인 제3의 전문가를 투입해 설계변경 등 증액사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게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계와 다르게 시공되었거나 / 자재구입단가가 폭증했는데 발주자가 이를 명시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반대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시공사가 변경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면?
이건 ‘부당이득’입니다. 발주자에게 이익이 있고 그 이익이 현존하는 거죠. 현존이익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감정까지 진행할 정도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1심 끝내는 데에만 2년 이상 걸릴 수 있어요. 요즘처럼 재판이 지연되는 상황이면 더 오래 걸리겠죠.
이렇게 지루하고 오래 걸리는 재판을 피하기 위해 ‘중재’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관급공사표준계약에도 ‘~중대 또는 1심 관할법원 소송 제기한다.’는 등의 표현이 있어서 선택적 중재관할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현실에서 관공서 내지 공기업이 중재에 응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면 ‘책임 문제’가 있거든요.
중재는 그 자체에 무효사유가 없는 한 ‘중재1회’로 끝납니다. 3심제가 기본이고 심리불속행 크리티컬 터져도 2심까지는 다퉈 볼 수 있는 소송과 달리, 중재는 결정문 나오면 끝입니다. 다시 다툴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 공무원, 혹은 정년 보장되는 공기업 직원이 ‘한 방에 끝나는 중재’에 오케이 한다? 이거 쉽지 않습니다. 민간기업도 이렇게 하기는 어려워요. 뭔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설분쟁을 중재로 해결하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국 소송 진행해야죠. 오래 걸리지만 소송 거치는 게 가장 확실합니다. 판결문에 ‘피고는 원고에게 ~원을 지급하라.’는 문구 받아내는 것, 그걸 목표로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티며 계속 자료 보완해야 합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끝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직장생활은 계속됩니다. 언젠가 완생(完生)에 이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미생(未生)인 상태로, 모두 회사원으로서 월급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
공사대금 증액까지 정리하니 총 8개 연재분량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건설법무 개론’을 끝내게 되네요.
물론 (앞 챕터에서 언급했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개론 끝냈으니 이제 각 쟁점별로 상세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생각나는 쟁점은 1) 하자분쟁의 역사 2) 보증보험증권 3) 해외 영문계약 검토 정도인데요. 글 쓰다가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계속 추가하겠습니다. 몇 년 뒤에 문득 떠오르는 걸 또 추가할 수도 있구요.
자격증 없는 일반회사원이 쓰는 ‘건설법무 가이드북’. 이 또한 계속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미생(未生)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