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자격증도 없고, 석박사 학위도 없고, 그저 일반 회사원일 뿐이지만. ‘건설법무 가이드북’이라는 제목 하에 여러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 논문처럼 엄격히 사실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법조항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점은 양해 부탁드리며, 제 나름대로 폭넓게 이것저것 많이 쓰긴 한 것 같습니다.
건설법무. 더 쓸 수 있는 주제가 꽤 있긴 합니다. 하도급업체 타절(해지)시 정산 절차, 매년 진행되는 공정위 하도급거래실태조사 관련 에피소드, 공동수급(컨소시엄) 관련사항 등등. 주제 찾으면 더 나오긴 합니다.
그렇긴 한데… 원래 ‘개론’ 수준에서 일반 회사원 분들이 알아보실 수 있도록 쉽게 쓰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이 정도 분량으로 마무리짓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연재 완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김에 잠시 ‘법무 마인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 읊어 보려 합니다.
제목에 ‘심야식당 같은 법무’라고 썼는데요. 일본영화-드라마로 나온 그 심야식당 맞습니다. 국내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구요.
심야식당.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그 정신적 허기를 달래기 위해 모여드는 곳. 가끔 술 한잔 곁들일 수도 있고, 말없이 식사만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식당주인의 마성(?)에 이끌려 말 못하던 고민을 털어놓는 곳.
심야식당의 주인은 [산전수전 다 겪고 달관한 컨셉]입니다. 눈 위로 새겨진 흉터는 분명 ‘칼빵 흔적’일 것인데, 아마 과거에는 야쿠자였고 사람 죽는 걸 일상적으로 봤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지만 전투실력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심야식당 주인이 그 전투실력을 발휘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손님들이 요청하는 식사메뉴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이죠.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 단골도 많다는 설정이구요.
심야식당 도입부에 주인이 읊조리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 중 “~특이한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가급적이면 손님이 원하시는 건 다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더군요.
동네 음식점 주인으로서 상당히 좋은 마인드이긴 합니다. ‘고객감동’을 유도하는 상인의 마인드. 전직 야쿠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요리사로서 고객의 취향에 맞춰 음식 준비하는 건 매우 좋은 일이죠.
그리고, 심야식당 컨셉 상 이건 ‘마음을 치료하는 음식’까지 생각한다는 의미도 되겠죠.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한 손님이 특이한 메뉴를 원한다면, 그건 뭔가 잠들지 못한 이유와 연관된 음식일 테니까요.
즉, 심야식당 주인은 단순히 요리실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는 실력’도 뛰어납니다. 백전노장의 전투경험(?)으로 인생 달관한 듯 초연한 눈빛이 그 정신적 실력을 암시하기도 하죠.
이런 심야식당 주인 같은 법무담당. 가능할까요?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법무담당자 대부분은 ‘한평생 내근직’이고 현장의 어려움 같은 건 안물안궁이에요. 그냥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민법이 어쩌고 상법이 어쩌고 하는 소리만 하면 월급 착착 받습니다. 현장경험 부족하고 현장이해도 떨어지며 오직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그만일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말이죠. 어느 직군이나 그렇듯이, ‘더 탁월한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학교성적 같은 것과 무관하게 사회생활 능력이 뛰어나고 그 능력을 사회에 나온 후 발현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법무담당자 중에서도 분명 ‘더 탁월한 사람’이 있습니다. 법률 해석 능력과 판례검색 능력이 탁월한 사람도 있고, 계약검토를 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업의 고충을 이해하고 함께 해결 방안 모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무담당 찾아오는 현업 직장인 중에서, ‘진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답이 안 나와서 법무에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냥 법무검토 받으라고 하니까 형식적으로 영혼 없이 질문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일 열심히 하려고 고민하다 찾아오는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밤새 잠 못 이루다 심야식당 찾아오는 사람처럼, 정신적 허기에 시달리며 법무담당자에게 질문하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손님)이 왔을 때. “가급적이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함께 논의하는 법무담당자가 있다면, 쪼큼 도움이 되겠죠?
물론, 별 도움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회사 일이란 게 법무팀 거친다고 갑자기 잘 되진 않아요. 99%는 법무 개입하든 안 하든 별 차이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같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흔적을 남길 수는 있겠죠. 법무담당자 본인도 지금 당장은 경험부족에 현장 이해 부족할 수 있지만, 현업과 함께 고민했던 날들이 먼 미래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일 하면서 친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법무직군을 위해 만들어진 말일 수도 있습니다.
심야식당 주인 같은 법무담당자. 산전수전 다 겪고 어느 골목식당의 요리사가 되어 정신적인 허기까지 달래 주는 치료사.
그런 희망. 나쁘지 않겠죠?
어느 회사원이 만든 건설법무 가이드북.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