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글이란 쓰는 자가 꾸미기 좋은 갈필에 지나지 않았다.
내게는 짧은 소개조차 과분했다.
내 사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하의 기록을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랜만에 우편함을 보니 초청권이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먼지가 쌓여있는 많은 우편물들의 위에 놓인 이질적인 편지길래 냉큼 뜯어보니
웬걸.
내가 아예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우편물이었지만
난 그것이 나에게 잘못 도달한 물건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너무나 지겹게도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에서 찾아온 한줄기 빛으로 겹겹이 포장한 그 봉투를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던지자마자 바로 뜯었다.
사실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솔직히 편지봉투 하나에 왜 이리 설레냐고
내가 나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긴 했다.
그야 이 편지조차도 결국 내가 뜯어보지 않은 다른 우편물들과 방금까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그에 대해 승낙하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뭘 기대하고 있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니
우연적인 만남이란 그 형태에 상관없이 나에게 매번 강한 충격을 주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다. 이런 식의 우연은 매번 내 인생을 놀랍도록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는 구실점이 되기도 하였다.
우연한 만남이란 정해진 것만 같은 운명에 들어지는 유일한 반기이니
이것은 나에게 온 물건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이질적인 포장이 되어있어 어떤 초청일까 궁금하기도 했으며
오랜만에 내 삶에 전환점을 쥐어줘야 한다고 느낀 요즘에
이런 좋은 기회를 구태여 내칠 그런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이후 가볍게 발을 굴려 출발한 나는 갈매기의 무리를 쉬이 볼 수 있는 군청색 바닷가 근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에둘러지은 듯한 별장에 들어와 보니 인상 좋은 부부 한 쌍이 날 반겨주었다.
갓 난 아기의 건강미 넘치는 모습을 보아하니 금슬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좋은 부부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들과 가벼운 통성명을 하고 가장 궁금했던 점들을 다시금 정리해서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나와 일면식이 있었나?
이 자리는 무엇을 위한 자리인가?
평소에도 이런 자리를 자주 가지는가?
두 분은 아이가 있음에도 어찌하여 이런 자리를 열게 되었나?
점점 대화가 길어지고 의문점들이 해결됨에도 기어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한 가지 풀리지 못할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이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 중 실제로 이곳까지 온 것은 나 밖에 없었다는 상황에 대해 끝내 그들에게 묻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불행하게도 내가 이곳에 초청되자마자 그들의 안정이 깨졌지.
완전무장한 괴한들이 이곳에 침입한 이유를 지금에 이르러서도 도무지 모르겠어.
살인이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단순 강도질이 목적이었는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사실 중에 하나야.
여느 흔하디 흔한 별장이라 느꼈는데 말이지.
어떤 점이 그들의 시선을 끌었을까?
이건 내 예상이지만 그들의 목적은 역시 재산의 강탈이 아니었을까 한다.
목숨이 아까운 집주인이 나 몰라라 해주니 이리저리 집을 쏘다니며 우리가 몸을 피한 방을 박차고 들어왔음에도
눈만 굴리며 가벼운 협박만 하고 실질적으로 상해를 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건 다른 이야기이니 본론으로 돌아와서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도록 하지.
그들은 아이가 있는 거실을 차지하고 농성하였지만
한차례 얼굴을 확인하고 방에서 나오면 즉시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이후에 우리가 각각 갈라진 방으로 구태여 들어오려 하지 않았어.
그렇게 아이 아빠는 1층 거실 한 켠에 딸린 옆방에,
나와 아이 엄마는 안방에 갇혔어.
우리는 그곳에서 서서히 미쳐간지도 모르겠네.
그야 지금이 이 일가족이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갈라진 첫 시점일 테니까.
나도 처음에는 참 불안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된다고 자신을 다스렸어.
그야 난 외부인이니까 궁극적으로 이들과는 깊은 관계가 아니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했다고 할 수 있었지.
그나저나 내 사족을 꺼내자면
옷의 품속에 지갑 같은 잡동사니 외에도 어찌하다 소지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린
세 발의 탄환이 담긴 권총 한 자루가 있었어.
난 처음부터 상황을 뒤집기에 충분한 타개책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감히 문 밖의 저들과 정면으로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지.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나와 같이 갇힌 아이 엄마가 극도로 불안해하며 내가 밖으로 나가 안 좋은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면 자신이 혼자 남은 상태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힐지 모른다고 날 끈질기게 설득해서고.
나머지는 그 말에 설득되어서 내 의지가 제 풀에 꺾였다는 변명과 본능적 방어기제들이 내 회피적인 면모를 더 키웠지.
그 집은 안타깝게도 쓸쓸한 바닷가 근처에 있던 곳이었고
방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거실의 공용전화를 제외하곤 나도 그들도 통신수단은 일체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외부와 연락할 어떤 방법도 없었어.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서 난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
우리는 거기서 서서히 말라갔어.
아.
갈라진 가족들은 서로를 생각하고 있겠지?
그 아이, 갓 태어나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이 아이를 강도들이 어떻게 대했는지도, 우리와 떨어진 아이 아빠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어.
점점 그들이 걱정되기 시작해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기도뿐이었고
내 목숨이 점점 아까워져 감히 총을 꺼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그렇게 밀물이 철썩대는 소리만이 고요를 가득히 매우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까
'그런데 말이야 나는 어차피 이 사람들과 타인인 관계잖아?'
'이대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바뀌지 않아'
'그녀를 이 상태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그야 그들에게는 방 밖으로는 절대 나오지 말라고 협박당한 시점에서 가축처럼 먹고 싸기만 하는 상황을 난 그리 오래 참아낼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지.
어느 순간에 도달하니 그런 식으로 체념하고 권총만큼은 손에 꼭 쥔 채 문을 최대한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먼저 동향을 살폈지.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아이 엄마를 뒤로 한채
나는 떨리는 몸을 가누며 놀랍도록 텅 빈 거실을 황망히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어.
갓난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지 않았다는 감정이 가장 먼저 밀려왔고
내가 어제까지도 느낀 그들의 인기척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몰아치는 정신을 겨우 진정시키고
나는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문을 벌컥 열어내어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꾸로 뒤집혀있는 아기의 침대였어.
그 밑에는 번들거리는 기름 자국들과 주변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잡사스런 물건들뿐이 조용히 나뒹굴며
내가 처한 상황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여 주었지만
그 황당한 풍경에 그녀에게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내가 나온 문을 조심스레 닫고 발을 돌려 아이 아빠가 있을 거라 예상되는 방으로 걸음을 재촉했어.
그 문을 열자 그는 정말 편한 얼굴을 하곤 그 방의 침대에 앉아 방에 들어온 나를 보곤
잠깐의 뜸을 들인 후 바깥은 어떻게 됐냐 물었지.
대답을 해주려는 찰나에 이유 모를 위화감을 느껴 나는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냐는 말을 꾹 참아내고 그의 침대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역으로 질문을 했지.
누구라도 그 장면을 본다면 날 이상하게 취급하지 못할걸.
그의 옆에 놓여있는 침구류가 누군가 뒤집어쓴 채로 있는 것처럼 불룩했으니까.
기이함을 느낀 나는 얼른 그곳에 총을 겨눴고
조금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 스르륵 기어 나오더군.
처음에는 누군가 싶었지만 얼굴을 확인하고
안심이 서고 나니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아 다시 아이 엄마가 있는 방으로 재빨리 돌아가서 이젠 아무도 없으니 괜찮으니까 어서 나오라고 말해주려 내가 있던 방으로 다시 돌아가보니 그녀는 이미 없더라.
어디로 간 걸까?
그 방에는 나 혼자만 갇혀있었었다 느껴질 정도로 기이하게 깔끔했어.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없었었다는 듯이.
뒤엉킨 이부자리 빼고는 어느 것에서도 그녀의 잔흔을 느낄 수 없었지.
내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돼 있는 그녀가 어디로 갔을지 감이 잡힐 듯 말 듯하였지만 끝내 확정 짓지 못하였다.
어쩌면 나와 그 비좁은 곳에 갇혀있는 동안 바깥이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하며
긴 방황의 갈무리를 마쳤다.
그 집을 나와 나는 열차를 탔다.
지나왔던 길을 경유하고 횡단하며 나는 여러 감회에 잠겼고
어느 논밭길 옆에 딸린 역에서 열차가 멈춰설 기미를 보이며 지나고 있었을 때쯤 나와 시선을 마주친 한 명의 젊은 농부가 시선으로 날 쫓아왔다.
'재수 없는 하루네.'
그날로부터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나와 멀거니 거리를 둔 그날의 감각들이 빙글거리며 떠올랐다.
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그간의 기억이 일순간의 환상이라는 듯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꿈은 아니라고 확신케 해주는 증거가
내 몸 곳곳에 퍼져있었다.
여기에서 아직도 그녀가 헤매고 있더라니까.
19XX 년 X월 2X 일
짧은 공판 끝에 재판장에 근엄한 목소리가 퍼졌고
그 한마디에 겨우 이어가던 내 회상이 마무리를 지었다.
피고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이 떨어졌고
이내 내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그렇게 붙들려 끌려다니는 중에도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감쌌다.
법은 날 심판할지언정 그녀와의 연결까지 끊어내지는 못할 거란 확신이 채 서지 못한 개인적인 고민거리가
야속하게도 여기까지 와서야 해소되었다.
어디에 가더라도 그녀가 항상 따라와 줄 것이니
생각 외로 그리 나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뺏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뺏겼다고 생각하나?
처벌이란 그렇게 쉬이 서술할 수 없는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