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피어났네"

난 토양이고 너는 꽃이었지. 다만 촉촉한 흙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 뿐

by 휴사



그날의 나와 너는 평소보다 어색했던 것 같아.

너와 매일같이 이어나가던 웃음이 섞인 대화가 급작스레 끊겼던 그때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말을 흘리려고 마음먹었었지.



난 가끔 네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줄곧 물어보던 것에

"글쎄"라고 대답해주고 싶었고, 지금껏 쭉 그래왔었지?

나는 내가 변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무딘 사람이니까

너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던 거야.


네 맘에 그닥 들지 않는 표현을 알면서도 툭툭 내뱉는 나의 날 선 행동에

솔직히 지금에 와서도 미안한 마음은 없어.

내 감각이 정말로 무디기에 네가 달라졌다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점도 포함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나의 눈에도 거슬릴 만큼 나는 빠르게 져갔고 너는 조금씩 피어나더라.

끊긴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려고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을 확인시키는 너에게

그래서인지 무심코 이런 말을 뱉어버렸지 뭐야.



그래. 역시 어제보다 조금 더 피어난 것 같아.



그 말이 내 추레한 목구녕을 떠나 너에게 닿은 직후

나를 마치 불이 들지 않는 라이터를 보듯이 쳐다보는 네가 퍽 우스웠지만

이해해. 나도 그런 내가 의아했으니까.


그런 엉뚱한 나를 이해라도 한다는 듯이 조금 뜸을 두고 미소를 품은 채 너는 나에게 말을 건넸지.


"네가 지금 뭘 말하고 싶은지 맞춰봐도 될까?"



나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어.

역시 미안.


너는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잎을 피워내 만개에 이를 것이고

나는 지금처럼 조금씩 뿌리가 닫힐 거니까.

이에 대한 설명이라도 하는 날에는

착해빠진 너라면 다가온 현실에 자신의 잎사귀를 쥐어뜯지는 않을까 하는 내 불안을 이해해 줘.


실은 착각으로 버무려진 자기중심적인 내 맘을 조금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어.

정말 이기적이지?



그 이후론

너에게 어떠한 말도 듣고 싶지 않았어.

즐겁게 나열되는 상상을 멈추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네가 나처럼 좁은 사람에게서 벗어나야지만 비로소 피어날 그 모습이 선명해질 거라 느껴서였을까?




그림-cameron 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