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중지를 지니다

구름이 뛰게 한 태동

by 휴사


별 다를 일도 없던 날의 중턱에서 살짝 빗겨 난 시간. 3시 52분


코앞만을 보며 살아가다 우연찮게 위로 시선을 향하니

평소처럼 바람과 구름이 나부끼는 고요한 하늘이 숨을 쉬고 있었다. 분명 평소대로였는데 순간적으로 내게 관련된 모든 것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외심이 나를 감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것이 모여 만들어진 수십억 가지의 거대한 번뇌조차

날카로운 구름과 바람 앞에 덧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광활한 하늘이 내 시야를 메웠다.


이 땅 위에서 울리는 목청들은 한 줌 나뭇잎에 흩어지니

결국 나 이외의 모든 것이 스승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원론적인 사상들은 동류의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지만

순수한 삶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게 해 주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벅차게도 선명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속에서 굳어있던 생각보다 주변은 찬란했으며

이 우주 또한 아주, 아주 꽉 차있는 것임을 다시 실감했다.


중지를 너무 자주 추켜올리는 바람에 푸르게 멍이 들어있는 내 손가락의 일부는 이 시점을 계기로 그 위에 잉크자국이 덧씌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점으로 타인과 자신을 정의하던 내 손가락이 여기까지 바뀔 수 있던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경외스러운 하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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