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의 끝은 납골

아무리 향을 태워대도 기억이 흐려지는걸.

by 휴사

세상에 평범한 사랑이 있다.

그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이 남자는 여자를 갈망한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둘의 눈높이가 같다면

어디에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여자는 곧 죽는다.

그 사실을 남자는 또렷이 인식하려 애써보지만 세상과 차츰 멀어지는 여자의 현실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 만으로 목 끝에서부터 비릿함이 올라온다.

혼잣말이 점점 커지려고 기를 썼지만 입 밖으로 꺼내보았자 헛손질밖에 더 될까 하여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결론에 겨우 도달했다.


그런 행동들 때문에 둘의 가슴속에는 깊숙하게 멍이 피어난다.


다 보인다고.

나 이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자신의 연명에 회의감을 느낀다.

뭘 한다 해도 남자의 고통을 덜어내 줄 수는 없으리라.

그러면? 그가 이렇게 갖은 애를 써가며 내 곁에서 웃어주는데 그것을 내치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가 나를 버리는 것은 앞뒤가 맞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주제도 모르는 비정한 년이 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러는 게 나을 수 있는 상처라도 되었을 텐데 아쉬운 선택이다.

그런 식으로 느릿하게

여자는 버려질 준비를 하였고

남자는 그녀를 놓아줄 준비를 하였다.

둘 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말이다.


예정된 미래 같은 건 없다는 현실이

이렇게 미지근하고 격정적인 일상 속에서 휘발되어 갔다.



여느 때처럼 그녀에게 쏠려있는 걸음을 재촉하며 거리를 지난다.

옆에 누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눈 한쪽이 기능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이렇게 싫은 나라도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란 사실을 잊게 된다.


바보처럼.

멍해진 귀에 시끄러운 경고음이 이리저리 굴려졌다.

그제야 발의 앞부분이 보였다.

보고 나니 횡단보도의 흰건반에 척하니 올려진 발이 보인다.


방금까지 뭘 하고 있었지?

줄곧 흐릿했던 시야가 순간적으로 선명해져 나는 몸을 지나온 쪽으로 돌리려 몸에 힘을 줬지만

붕 떠버린 몸은 그녀로 인해 그렇게 혐오했던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건 마치 예정되었던 모습처럼 자연스러웠다.

정신을 놓아버린 그때부터 정해졌을지 모를 남자의 모습을 누군가는 한심하다며 비웃을까?


당장에 어제만 해도 남자는 마음의 준비를 끝낼 수 있다고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내일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뜬 눈을 보지 못하더라도 감히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죽음이란 거 어느 순간부터 입 밖으로 쉽게 꺼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언젠가 찾아올 그놈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생명은 무엇보다 비참하게 그놈을 맞이하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지나간다. 몸이 울고 있다.

그나저나 그녀는 지금 내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알지 못하겠지 아니, 알면 안 된다.

남겨진 사람의 울음을 그들이 절대 알지 못하게 하자.

이것이 내가 굳이 울지 않는 이유라 끝없이 독백했다.


하지만 현실에 정해진 건 없다는 논리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남자는 혼자만의 연민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 온기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사랑했던 자들은 땅에 묻혀있기만 하는 건 아닐 거야.'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게 왜 이런 형태로 다가오는 거야.

이런 식의 헤어짐이 아니었기에.

이런 모습이 아니어야 했기에.

결국 이런 생각조차 천천히 멀어져만 간다.



페이지가 조금씩 얇아져 가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는 무표정한 나날을 보낸다.

무언가가 나에게서 또 멀어져서 그녀의 표정이 없어지고 말았다.

왜?

나를 내려놓는 건 내가 정할 수 있다.

몸을 비틀면, 비틀리면 어느 정도 그렇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남을 내려놓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본능이 그렇게 말한다.

그걸 바꾸고 싶다면 일단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몸에 남아있는 힘이 조금도 의미 없어질 즈음에

남은 자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이 아닌 흔한 길바닥에 한때의 추억들을 묻었으며

눈물이 떨어져야 할 곳도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후에 그녀도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자리에 머물던 감정들만 향불과 함께 날렸다.

테세우스의 피부와 살은 모두 타올라서 없어졌다.

살아생전 두 번밖에 교체하지 못했던 그녀를 깊은 곳에서 구성하고, 지탱했었던 뼈도 간신히 남아있을 뿐이다.


봉안당 속의 먼지를 이따금씩 통과하는 햇빛만이

존재했던 모든 것을 담은 증거의 미량이 담겨있는.

윤기 따위는 조금도 없는 새카만 유골함을 조용히 비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