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틔는 비명

미지근한 비명은 차가운 입김으로 변모하더라

by 휴사


그래. 결국 올해에도 쏟아져 내리는구나 저 하이얀 꽃씨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져 얄궂게 내릴 수 있음에도 무수히 갈라져 하나씩 스며들어 주는 것이 기특하다.

그 밑에서 걷는 나는 여기서 왜 하늘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걸까.


무엇보다 날 힘들게만 하는 것은 당장에라도 생을 마칠 듯이 몰아쳐대는 가쁜 숨이 아닌 나의 발을 잡아끄는 감정들이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던 땅에 뚝뚝 떨어져서 이윽고 검은 눈이 되어버리는 잡념들은

작년 이맘때에도 이렇게 새까맣게 던져졌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적어도 쌓일듯 쌓이지않는 작년의 싸락눈은 이런 모양으로 더럽혀질 일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이 성장하여 그 입자가 굵어지는것만이 단순하게 좋은 방향성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데는 이런 점에 있을 것이다.

이래서야 돌이키지 못할정도로 쌓여버려선 치우지도 못하고 변색되기만 하잖아.


너무나 지친 발걸음에 휴식을 부여하고자 함박눈의 시체들을 쓰다듬었다.

이미 식어버린 시신들은 차갑기 그지없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웠다.

손가락의 가닥가닥으로 쓸어내림으로써 비로소 하늘로 회귀하는 눈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것을 자각하니 겨울이 모르는 눈이 서서히 다가옴을 알게 되었다.


벚꽃과 함박눈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지만 누구보다 닮아있다.

눈이 꽃을 모르듯, 꽃도 눈을 모르는 사실과 함께

계절의 종장을 고하는 한 해의 끝부분에서 내리는 눈을 따라 그저 걸었다.

지금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백색이 어울리는 곳에서 주위의 무엇보다 뜨거운 숨을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만 있었다는 것을 통감하며.


눈이 정복한 세상에서 강제로 걷고 있던 나날의 기억은

내 속에서 썩어문드러질때까지 잊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