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리는 날의 한 그릇

그녀와 먹은 볼품없는 음식의 맛이 입을 다물게 했다.

by 휴사



쌩쌩거리던 바람이 불던 회색빛 오전.

전날에 나는 호텔 쪽에 단기알바를 신청하여 산만한 지하철의 틈바구니에서 진득한 땀냄새를 가득 들이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알바를 시작하니 덜커덩 거리는 지하철의 벽면에서 나온 감정들이 조금씩 내게 스치며 뻔뻔하게 달라붙어왔다.

일을 했던 기억을 되짚어보니 때도 가리지 않는 질환 때문에 일을 하던 자리에서 중간에 쉬기도 여러 차례.

병 때문에, 자신의 무능 때문에, 미약한 적극성 때문에 겉돌았던 적도 있었고 힘든 일에 오지도 않은 내일이 두려워진 적도 수두룩하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은 만큼 긍정적인 기억의 양도 뒤지지 않았지만 언제나 좋지 않은 기억만이 끝에 가서 씁쓸히 맴도는 법이었다.

내게 알바란 그런 이미지였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에 휘돌다 정신을 차려보니

Y대 근처의 호텔에서 주방보조를 맡아 같이 일하게 된 여자애와 어느새 친한 듯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의 주방 예정상 보조임에도 하루종일 둘 뿐이라 적적하면 어떡할까 걱정부터 하고 있던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이것저것 기운차게 알려주던 그녀에게 감사하며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은 잘 넘어가나 싶던 시점에서 시간이 조금 지났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싸한 감각과 함께 가슴팍 안쪽이 실룩댔다.

평소와 비교해서 그리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끝마치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 사정을 말하고 안정을 취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슬슬 같아지는 기분에 가슴 부근을 난도질하고 싶어졌다.

이놈의 심장 덕분에도, 그런 심장 외에도 내 다양한 무능으로 인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짓도 손가락 개수를 넘어가니 스스로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한 사람분의 몫. 거기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나의 기량이란 앞서가는 마음과 함께 따라오는 그런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때로는 술술 잘 풀어내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둘 뿐이어서 나를 편하게 대해주던 그녀에게 그만큼 더 미안해졌다.

일자리에서 보기 좋게 웃는 이들의 얼굴이 어떤 결과물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미안해하며 한편으로는 동경했던 것이다.


그러고 있자니 점심시간이 찾아와 홀에 들어가 남은 호텔식을 성의 없이 그릇에 던져 담고 구석에 가서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한 시점 늦게 홀에 들어온 그녀가 내 앞에 앉아 태연스레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 담기지 않은 행동에, 아니 작은 호의에 왜인지 볼품없게 식어버린 음식의 맛이 먹을만하다고 느껴졌고 이내 텁텁하고 깊은 맛이 나는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가서 바빠지기 전에 준비동작을 해놓겠다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비슷하게 식사를 마친 그녀가 내게 담배 한 까치를 건네주기에 흡연실을 들렀다. 브레이크 전에 잡담도 나눌 겸 맞담을 했지만 당시엔 금연 중이어서 담배를 들고 다니지 않아 한 개비 정도는 받았지만 남자 놈이 여자한테 계속 담배나 빌리고 있다니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대화 상대를 찾아 헤매는 담배인데 예의로 보답했다.

그런 식으로 퇴근길에서까지 그녀의 담배를 입에서만 돌렸다,

사족이 길었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그녀는 전혀 시시콜콜하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야기들에 감화되어 어느새 아까 전의 자학적인 감정을 까무룩 잊어먹었다.

그녀가 살면서 겪은 당혹스럽고 색다른 이야기들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내 잔념을 씻어버렸고

전남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녀가 지금의 일자리에서 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아 당사자가 나도 보는 앞에서 자연스럽게 그녀를 건드릴 때마다 가시 돋친 반응을 보이고 매번 진심으로 걱정을 담아 위로해 주었고 타개책을 찾아 끙끙댔다.

익숙한 환멸감에 몸을 점유당하던 내가 어느새 타인과 함께하며 생기를 되찾고 있었고 어느새 일이 끝나고 같이 귀갓길에 오르며 내일은 자기 친구도 오니 나더러 계속 나올 건지 물어보기에 그건 내일부터의 일정이랑 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 같다는 애매한 말로 일갈하고 '오늘 고생했어'라는 인사와 함께 번호 같은 여지는 물어보지 않고 다시는 그쪽으로 일을 나가지 않았다.


전의 그 더러운 자식이 몇 번 방해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식사하고 통로에서 그녀와 그 자식에 대해 씹던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이후로 멀리서 내 뒷모습을 오랫동안 노려보고 있었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해야 함을 감당하기 싫어서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한편으론 제대로 몫을 다하지 못해 그녀에게 한층 힘든 하루를 떠맡긴 데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듦과 동시에 매번 나와 가까운 타인일수록 꼴에도 없는 해악을 가하는 한심한 모습을 두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후에 돌아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와서는 번호를 받아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전하기 위해서라면 시도쯤은 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내게 호의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폐만 끼칠 바에야 깨끗하게 나 혼자 불편을 안고 가는 편이 나았다고 당시엔 그렇게 결론지었다.

애초에 혼자 안고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았으면서

역시 혼자 죽는 게 편한 타입일지도 모른다고 단정했던 그날의 나는 너무나 조그만 삶의 단편에서만 살아가던 애새끼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한다.


자신의 추태를 꺼내보니 지향할 방향이 보인다.

지금의 나라면 이런 식으로 모든 것들을 쉽사리 놓아버리지 않았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