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이유만으로 쉬이 업신여기는 걸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후
오늘도 여김 없이 열심히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 러버인 내가 며칠전에 읽었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제목의 소설이 퍼뜩 기억나 늦은 소감을 끄적이는 중이다.
아무튼 사랑이라는 요소에 집중하게 만든 이 책에서 나는 연인의 사랑보단 가족의 사랑에 더 시선이 끌렸다는 이야기를 하고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파트 중에 하나를 꼽아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 오늘 브런치에 이런 글을 저장했다.
이 책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인공과 여주의 사랑을 기억한다.
그러나 드물게도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파트는 따로 있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네 가족의 모습에서 새로운 관점을 보게 된 것이다.
나를 몰입하게 만든 가족들은 고등학생 되시는 남자주인공과 소설가의 꿈을 가진 누나 한 명, 마찬가지로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은 아빠까지. 이 세 명이 작 중에서 그려지는 구성원의 전부다.
어느 날. 급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만 가장이 바꿀 수 없는 현실앞에 결국 무너지자 누나가 어린 동생을 열심히 부양하며 살아간다.
소설가의 꿈을 접고 현실과 마주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누나는 꿈을 버릴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던 모양인지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소설을 쓰며 현실과 이상의 교차점에서 꿋꿋하게 살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자랄 만큼 자란 동생은 누나까지 현실에 의탁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녀의 꿈을 북돋아 주는 말을 꺼내고 그에 용기를 얻은 누나는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붙잡으며 집을 나가게 되고 이후 누나는 자신의 재능을 펼쳐 소설가로서 수상까지 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소설가의 그림자에 빠져있는 아빠의 상황은 고착되기에 이르고 그런 삶을 이어가던 중. 의도치 않게 자신의 딸의 수상소감을 보게 된 그가 평소 알고 있던 작가의 얼굴을 보곤 딸이라 짐작하여 아들을 붙잡아 무거운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다.
이때의 아빠는 더 이상 '아버지'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어린 사람이었다. 그야 힘든 상황 속에서 이어지는 불행이 그를 열등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기에 모자라지 않았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엄연히 한 가정의 가장이다. 든든한 등을 앞세워 아들, 딸, 아내에게 덮쳐오는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아빠라는 존재.
나는 여기까지 책을 읽으면서 내심 이 아빠가 사실은 주목받는 신예작가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아들 몰래 알고 있기를, 뒤에서 소심하게 응원하고 있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말없이 날, 가정을 버리고 나가서는 나의 꿈으로 성공한 자식을 보고 나서 결코 가지면 안 될 설움과 미움을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자 이윽고 눈앞의 아들에게 화살촉을 돌려버리는 겨우 그런 하잘것없고도 흔한 한 명의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아쉬웠다.
그렇기에 다시 생각의 갈무리를 이어나갔다. 지금에 이른 나라면 어떤 스탠스를 취했을까?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똑똑히 새기려고 한다.
앞으로 이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다면 과거. 분명하게 미워했던 타인에게 초연한 미소만을 짓는, 지어주기라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
억누르는 게 아니라 공과 사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결국에 마주한다면 우는 소리 섞지 않고 이렇게 말해줘야 한다고 정했다.
미안하다. 뭐에 미안하냐면 나 자신의 이기심에 갇혀 너의 가능성을 응원하긴커녕 시기하고 짓이긴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 이상으로 훌륭한 그 모습을 지금까지 제대로 봐주지 못함에 지금에 와서야 미안해하기만 하는 나를 실컷 비웃어주길 바란다.
이런 식의 말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결국 내뱉는 당당한 이로써 살아가고 싶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세상에게도
내심 이렇게 당당하게 정하고 있자니 책 너머에서도 가족 관계에 얽혀있던 끈을 풀어낸 이놈의 아버지가 전화너머의 딸에게 반성을 담은 진심을 토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가족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이 아빠는 아들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저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이를 가져본 자이기에 당연히 알고있었을 것이라 조용히 웃음 지으며 책을 닫았다.
배드에 가까운 엔딩임에도 묘하게 희망을 담고 있어 쓸쓸한 맛을 남기는 결말은 잠시동안만 뒤로하자. 주인공이 덧없게 떠나갔음에도 그를 기억해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