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터 빌리지
전날 새로 산 구두를 신고 돌아다닌 탓에 발 뒤꿈치가 마치 파인 듯이 심하게 까져서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엄마가 몇 년간 신은 교복 구두 대신에 예쁜 걸 신으라며 사준 구두였다. 처음 동기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신은 건 큰 실수였다. 적어도 만보는 걸은 탓에 집에 가는 길엔 절뚝거릴 수밖에 없었다. 런던 아이가 품은 공원부터 차이나 타운까지 열심히 쏘다닌 탓이었다. 아픔이 점점 더 심해져 걷는 것이 고문처럼 느껴졌지만, 입학하기 전에 꼭 비스터 빌리지에 가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운동화를 대충 신고 예약한 대로 기차에 올랐다. 한 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주변은 고요한데 통증이 점점 심해져 머릿속은 난장판이었다. '차라리 집에 있을 걸'이라는 후회가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도착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운동화를 질질 끌어서 발가락 사이사이가 긴장되던 차에, 우연히 평소에는 전혀 관심 없던 아크네 스튜디오의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뒤가 뚫린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직원이 내 사이즈가 단 하나 남아 있다고 말하자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심했다. 그 당시엔, 이 하루를 즐기기 위해 내는 값이라고 느껴졌다.
새로 산 스니커즈의 뒤쪽은 긴 바지가 덮어줘서 뚫린 부분이 눈에 띄지 않았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편안했다. 신발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더 이상 통증에 시달리지 않으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발 하나에 해방감을 느끼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다시는 피바다를 만든 구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음엔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후로는 그날 쇼핑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아픔에 신경 쓰느라 놓쳤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날은 마음에 드는 옷을 여러 벌 살 수 있었고, 산드로에서는 백화점에서 봤던 같은 상의를 거의 반값에 구매하는 행운까지 누렸다. 번쩍번쩍한 백화점에서 눈 안 돌아가고 잘 참았다. 쇼핑이 끝나고 기진맥진해져 엄마와 함께 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딱딱한 빵도 부드럽게만 느껴졌다. 포만감에 노곤해지며, 계획했던 대로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앞으로의 런던 생활에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비스터 빌리지에서 신발을 찾았던 것처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앞으로의 런던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열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런던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행운을 품은 이 신발과 함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