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까지 한 달도 더 남았는데, 런던은 이미 축제 분위기다. 1년 365일, 한여름에도 크리스마스 샵이 열려 있는 도시답다. 거리에는 어김없이 머라이어 캐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가게들 창가에는 반짝이는 장식들이 시선을 끈다. 사람들의 설렘은 잿빛 구름마저 가려버릴 듯하다.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저 감사와 고마움을 선물로 표현하는 날이었다. 주고받으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런던에 와서는 나도 모르게 이 분위기에 물들어 버렸다.
아드벤트 캘린더를 열어가며 매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즐거움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초콜릿 하나씩 꺼내 먹으며 남은 칸을 세어보다 보면, 그 소소한 기대감이 단조로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다. 단지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던 날들이, 이제는 작은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날들로 바뀌었다.
얼마 전, 서머셋 하우스의 아이스링크가 개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네오 클래식 건축 양식의 웅장한 서머셋 하우스가 아이스링크를 포근히 감싸고, 그 옆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평일 오전에 방문한 덕분에 여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학생 특권을 앞으로도 잘 누려야겠다고, 스케이트화를 받으며 다짐했다. 이런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리본을 당기며 발에 부대끼는 뻣뻣함에 회상에 잠겼다. 감각은 잊고 있던 기억을 깨워준다. 어릴 적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그만두었던 아이스 스케이트가 떠올랐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걸음마를 배우듯 넘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그때는 넘어지는 게 지독히도 싫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넘어지는 것조차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차갑고 딱딱한 빙판이 무섭지 않았다.
빙판 위에 발을 내딛고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하나, 둘…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처음에는 난간을 꼭 잡고 있던 손을 조금씩 떼어 내며 속도를 붙였다.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붙을수록 긴장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 자유로움에 기분이 들떴다. 경직되었던 몸도 어느새 풀려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탔는지 등에서는 땀방울이 맺히고, 볼은 발그레해졌다. 그 순간의 따뜻함이 너무 좋아서, 이 온기를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간직하고 싶었다.
1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