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하우스, 런던
이곳이 한때 긴장감으로 가득 찼던 장소였다니 믿기 어렵다. 고운 입자로 갈아진 원두에서 향긋한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이곳에서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런던에만 5개 이상의 체인점을 두고 있는 이곳은, 18세기와 19세기에는 갓 묻힌 시신을 노리는 도굴꾼들을 감시하던 장소였다.
지금도 세인트 메리 교회를 감싸고 있는 정돈된 초록빛 잔디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넓게 펼쳐져 있다. 1883년 이후에는 교회 주변이 개방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이곳이 묘지로 사용되었다. 그 맞은편, 터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워치하우스(Watch House)는 처음부터 시체 도둑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 아니었다. 불법 행위를 단속하고, 지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한 사건을 계기로 더 복잡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해부학 연구의 급성장으로 시신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지만, 법적으로 제공되는 시신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범죄자의 시신만으로는 연구를 위한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느 산업에서나 볼 수 있듯이, 불법적으로 시신을 거래하려는 암시장이 생겨났다. 그들은 갓 묻힌 시신을 파내어 해부학자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1829년, 버크(Burke)와 헤어(Hare)라는 두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무덤을 파헤치는 것조차 번거롭다며, 시체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무려 16명의 희생자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의학 대학에 넘겼다. 이 사건은 영국 전역에 충격을 안기며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켰고, 결국 도굴 방지를 위한 안전 조치가 대폭 강화되었다. 그렇게 워치하우스는 경비원들의 집무실을 넘어, 시체 도굴범들을 감시하는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확실히 지금의 워치하우스는 100년 전의 모습이 상상조차 가지 않는 카페가 됐다. 과거에는 묘지를 지키던 경비원들이 감시를 하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매서운 눈으로 창밖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 눈을 감으며 창 너머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만끽한다.
05.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