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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런던 일기 01화

당신은 당신의 동네를 얼마나 잘 아시나요?

by 일영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은 뼛속 깊이 안다고 자부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졌다. 시장처럼 북적이는 런던 브리지 역을 지나 시시때때로 바뀌는 음식점들, 한 블록 건너면 나오는 테스코, 그리고 흥얼거리며 걷다 보면 나타나는 우리 집까지. 하지만 내가 ‘안다’고 정의했던 것은 진정한 ‘알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은 한국 음식을 요리해 주려고 친구를 초대한 날이었다. 늘 가던 길이었지만 이번엔 처음 오는 친구와 함께였다. 그러던 중 친구가 지나가던 커다란 동상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야?”라고 물었다. 수십 번도 넘게 지나쳐 온 동상이었지만, 나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동상의 존재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런던은커녕 이 작은 동네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내가 사는 곳, 런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매일 마주치는 동상에서부터 자주 가는 카페의 유래까지,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런던에 대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궁금증과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다. 헤르만 헤세는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언급하며, “여행자가 진정으로 한 나라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를 영혼에 담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록 여행자는 아니지만, 나는 이곳에 살며 여행자의 시선으로 런던을 알아가려고 노력했다. 런던의 다양한 조각들을 분해하고 다시 맞추며, 이곳이 마치 하나하나 이어 붙여진 퀼트이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문화가 융합되고,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이곳의 여러 연결고리들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


앞으로도 런던에 대해,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욱 알아가고 싶다. 수만 가지의 조각들이 조화롭게 이어진 이곳을. 어느덧 3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이 도시의 끝없는 낯섦에 길을 잃곤 한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마주하는 런던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쌀쌀한 빗방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면, 런던 곳곳에서 말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나를 맞이한다. 그것은 골목길 어귀에 자리한 평범해 보이던 카페의 오래된 이야기일 수도, 열 번 넘게 찾은 미술관의 익숙한 방 안에 숨어 있는 감정일 수도 있다.


런던에서 보낸 시간은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니며 이 도시가 가진 특별함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느낀 감정들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 언제 이 도시와 작별을 고할지 모르기에, 더 애틋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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