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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06. 2021

부질없는 말

속삭임 하나, 물방울 하나

조언을 하면서도, 말을 건네면서도 사실 이 말이 부질없으리라는 걸 아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을 때, 결국 이 사람은 나의 말을 따르지 않으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문장을 완성해야 하는 때가 있다. 상대는 분명 나에게 조언을 구했고, 나는 나의 경험과 생각에서 우러나온 말을 건넸으나 이 모든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고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호작용에 불과하고 말 것이 틀림없는 일순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경험을 겪은 바 있고 다른 시각과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세상을 품고 살아온 이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은, 한 사람의 세상에서 다른 한 사람의 세상으로 넘겨지는 메시지는 그 새로운 세상에서 이전의 세상에서와 똑같이 자리 잡을 수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겪어봐야만 아는 것들이 있다. 이미 같은 시기를 일찍이 겪은 이들이 그 모든 것이 결국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알려주더라도 그 격동과 방황의 시기를 기어이 몸으로 겪어내고야 마는 이들이 있다. 조언을 듣기 싫어서, 듣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세계가 동일하지 않을 뿐이다. 설령 느지막이 발걸음을 뗀 이들이 풍랑과 파고를 넘어 훗날 앞선 자들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지언정, 그들은 제 발로 그 길을 걸었어야만 한다.


한편 쉽게 체념하는 이들과 의지를 좀처럼 세우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반대로 자신의 세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화하고 색칠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미 저 끝까지 갔다 돌아온 이들이 '저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귓가에 아무리 맴돌아도, 최소한 아무것도 없는 그 광경 자체를 내가 직접 보고 오겠노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짧지 않은 탐험 끝에 돌아와 선례를 만든 이들의 말에 동의하고야 말더라도, 그 탐험에서 한 개인이 겪고 만나고 본 것은 그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고 동일할 수 없는 경험들로 남는다. 그것들은 그 사람의 세상을 넓혀 준다. 세상을 넓히는 즐거움과 기쁨, 그 짜릿함과 행복을 맛보고 나면 뒤이은 탐험에 나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일찍이 알아버린 자들, 까마득한 옛날에 깨달음과 앎을 얻은 자들의 말은 두고두고 전해져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귀하고 현명한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고 불필요한 고생 없이 좋은 것만을 취하는 것은 분명 필수적이고 또 유익하다. 그러나 동시에 남이 전해준 것만으로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바깥의 속삭임에 취해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삭임으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아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또한 집안의 누군가에게, 내면에 침잠해 있는 누군가에게 속삭임을 건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꽤나 부질없는 말일 수도 있으나, 알고 보면 사실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는 물방울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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