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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모 Oct 09. 2021

내 안의 사막

사막보다 더 큰 우물을 찾아

그런 날이 있다. 내 삶이 너무나 얄팍하고 나의 생각의 깊이는 너무나 야트막하여 내 이야기의 샘물은 말라버렸고 물을 길어 올려야 할 우물은 척박하게 메말라 있는 것만 같은 날. 내 손끝에서 나오고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그 어떤 이야기와 문장도 생기 없는 모래를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 그 모래가 누군가에게는 촉촉한 생명력 담긴 토양일 수 있으며 내가 수분 하나 발견하지 못한 물길의 자리에서 누군가는 흘러넘치는 물줄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사막을 통과하는 여행자에게 지나가는 이가 멀지 않은 곳에 오아시스가 있음을 일러주어도 여행자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뿐이라면 가까이 있다는 그 오아시스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끝을 모르고 찰랑이는 물결에 취한 날에는 하지 못하는 생각이다. 결여되어 있을 때 만족하던 시기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만, 우리는 풍요의 순간에 결핍을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이 감흥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모든 상황이 유지될 줄만 안다. 그러나 내면의 샘이 변화하는 방식은 비례와는 거리가 멀어서, 점점 낮아지는 물높이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는커녕 우리가 그 풍요로움에 제대로 취해 있던 바로 그 순간 눈 깜박하고 나면 메말라버리고 만다.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며 대비하다 마주하는 최악도 충분히 괴롭지만, 최고의 순간에 머무르다 불현듯 맞닥뜨리는 최악은 무력함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글이 잘 써지는 날에는 내 안의 이야깃거리가 절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차 있다. 매일 머릿속에서 무한히 탄생하는 말과 글을 유형화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과업이며 그에 수반하는 괴로움이란 고작해야 내 창작물의 초라함을 견디고 끝이 없는 다듬기의 시간을 인내하며 보내는 것뿐이라 여기는 날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는 글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순간에도 나는 늘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 날에는 내가 가진 창작의 우물이 동나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핍을 미리 떠올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모든 것에 의문이 드는 날도 있다. 애초에 내 안에 우물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진하게 들곤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사실 엄청난 창작 능력과 글솜씨보다도 꾸준히 버티고 견디고 지겹도록 써 나갈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알 길이 없다. 세상에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에 질문할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그리고 침묵을 지킬 사람도 나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하나 있다. 그 어떠한 괴로움 속에 놓인 순간에도, 그 어떠한 회의감에 잠식된 순간에도 나라는 사람에게서 글을 떼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늘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하나를 위안 삼으며, 나를 쿡쿡 찌르고 자꾸만 물음을 던지는 온갖 생각들을 매번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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