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일처럼 말하시네요

by 송현모

내 이야기를 내 이야기같지 않게 하는 것.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우선 손 가는 대로 써 본다. 오늘 상담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분명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뭐랄까 감정적으로 깊이 관여하게 되고 휩쓸리지 않는다고. 내가 마치 책을 읽어주는 것마냥,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마냥 나의 과거를 이야기한다고. 이 말을 듣고서 잠시 의아했다가 금세 납득했다. 그런 것 같다. 나는 그런 편이다.


이 또한 장단점이 양면적으로 존재하는 특성일 텐데, 나는 말을 할 때 좀 정리해서 하는 편이다. 모든 말을 기승전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의 삼단 구성으로 한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해선 두서 없이 말하지 않는다. 우선 문장의 주술호응 같은 사소한 오류에 예민한 편이라 내가 발화할 때도 그런 걸 지키려 하는 건 물론이고, 입을 열기 전에 머릿속으로 말할 내용을 빠르게 정리하기 때문에 몇 가지 포인트를 구분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곤 한다. 구조적으로,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말을 구조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내 발화에 대한 피드백은 그랬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일기든, 에세이든 보통 따로 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적지만, 문장을 쓰는 매 순간 나름대로 생각을 다듬어서 적는다. 그리고 상담에서든, 그 외의 다른 대화에서든 내가 이야기를 할 때는 보통 이렇게 평소에 정리해 둔 생각들을 꺼내게 된다. 머릿속에서 한 번 정리하고 글로 쓰면서 두 번 정리한 생각을 세 번째로 발화하는 셈이니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것치고는 정돈된 이야기가 된다.


다만 그렇다 보니 나 자신의 깊은 이야기마저도 정리해서 꺼내게 된다. 오늘 상담에서 내가 마치 책을 읽듯 내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몇 년 전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담백하고 깔끔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이 더 의아해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거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건조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우선 앞에서 언급했듯 나는 애초에 정리해서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시절의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로 '지나보냈고 정리까지 해낸' 시기다. 인생의 한 챕터로 완결한 느낌이랄까. 부단히 생각하고 돌이키고 고민하고 글을 쓰면서 내 안에서는 정리가 끝났기 때문에 남에게 말할 때에도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한편 나는 감정에 좀 서툰 것도 같다. 이전에 감정 어휘를 정리했던 글도 떠오른다. 나는 생각에 예민한 대신 감정에 무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힘든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힘든 얘기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할지, 안 하는 편이라고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 난 타인이 보는 내가 어떤지 항상 잘 모르겠고, 그래서 또 궁금하다. 아무튼 설령 누군가가 '얘는 나한테 힘든 얘기 하는 편이지' 라고 생각한대도, 미안하지만 나는 가장 힘든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거다. 나도 이런 잣대가 모순적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슬픔은 나누면 두 배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건 딱 나에게만 적용된다. 그러니까 내가 남의 슬픔과 힘듦을 들어주고 나누는 건 얼마든지 괜찮고 상관없다. 다만 나의 힘듦은 타인에게 별로 토로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냉정한가? 그렇지만 나는 보통 내 힘듦을 혼자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버티고 또 해결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힘듦에 관해, 내가 지금 어떤 게 힘들고 왜 힘든지 따위를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그러니까 어려움은 축약하거나 생략하고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정도로만 깔끔하게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오늘 상담에서 내가 나의 가장 힘든 시기를 이야기하는 과정은 마치 책을 낭독하듯 느껴졌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담담한 거고, 안 좋게 말하면 무미건조한 것. 아직까지는 그게 딱히 문제가 되는 것 같진 않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런 거지. 난 오히려 내 과거의 어려움 1(이라기엔 역대급 힘듦이었지만)을 잘 지나보내고, 잘 정리해서 하나의 과거로 규정하고 넘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지금이 만족스럽다. 인생의 매 순간을 그렇게 잘 정리해서 넘기고 싶다. 과거가 아득해지도록, 나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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