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이 첫 문장을 뭐라고 쓸까 잠시 고민했다.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너무 단언하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아서 고민하다가 쓴 문장이 저거다. 쿠션어를 잔뜩 깐,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말. 정말로 그렇다. '맛없다'가 '맛이 형편없다'와 '맛이 존재하지 않는다'의 두 의미를 나타낼 수 있듯,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도 '동물을 싫어한다'와 '동물을 좋아하는 부류에 해당하지 않는다'의 두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분명한 후자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동물 애호가로 자라날 가망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성향과 그 이유는 지금도 크게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친 적이 있다. 지난 몇 년간 몇 번 눈을 마주치곤 했던 고양이인데, 늘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막힌 듯한 소리로 들려오는 '야옹-'을 듣곤 했기에 큰 감흥 없이 그저 귀엽고 조금은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나와 고양이, 우리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나아가야 하는 바로 그 진로에 고양이가 떡하니 공간을 점유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었다. 아주 또렷한 소리였다.
잠시 후 고양이의 사람 가족이 고양이를 데려간 덕분에 나는 무사히 가려던 길을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날 오랜만에 깨달았다. 내가 왜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지. 우선 나는 애초에 그리 동물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다. 동물의 감정과 의도를 곧잘 알아채고, 어떻게 쓰다듬거나 만져주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동물을 보면 저절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걸 큰 어려움 없이 행하게 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나는 동물을 아무리 바라봐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고, 어떻게 쓰다듬거나 만져주거나 안아들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고,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동물을 보면 귀엽거나 예쁘다거나 멋지다는 생각은 한다. 다만 그게 다가가고 싶은 충분한 유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무해하고 자그마한 생명체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정말 안 좋아하는데, 동물의 경우 언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내가 파악하거나 짐작할 수 없다는 게 정말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고양이를 마주쳤던 그날도, 사실 몇 걸음 내딛어 고양이 바로 옆으로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발걸음이 턱없이 무거워졌다. 내가 가까이 가면 고양이가 움직이지는 않을까? 어떻게 반응할까? 그걸 하나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삽시간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짐짓 심각하게 쓴 것 같지만 사실 있는 그대로의 진심이다. 정말로 그랬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건 사람도 사실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식 내의 선에서 움직인다.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저 사람은 아마 계속해서 저 방향과 속도로 전진할 것이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 저 사람은 아마 손을 털어 물기를 말린 다음 나갈 것이고, 저기 앉아 있는 저 사람은 아마 별일 없는 한 그 자리에 쭉 앉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도 갑작스럽게 휙휙 움직여 나를 놀라게 할 순 있지만, 그 빈도나 정도는 동물에 비해 훨씬 낮다. 그리고 같은 종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더 이해하고 파악하기 쉽다.
반면 동물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고양이와 강아지 같은 귀여운 반려동물이나 메뚜기와 방아깨비 같은 곤충은 거의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가 쉽게 이해하거나 소통할 수 없고, 상호작용하기 어렵고, 그 다음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워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닿지 않는 공간의 동물을 예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강아지라거나, 유리창 너머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라거나, 영상 속에 담긴 토끼라거나 하는 동물들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내가 동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떠올리는 생각은 결국 나의 키워드들 중 '예측(불)가능성'과 '경계', '소통'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소통하고 예측하기 어려워서 불안해지고 경계하게 되는 거다. 결국 어떤 주제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든 나라는 사람의 호오나 생각을 이야기하는 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또 마주치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도 실감한다. 반대로 그렇기에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으면 어떤 주제나 영역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든 정리된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테다. 아무튼 오늘의 글은 며칠 전의 흰 고양이 덕분이다. 우리 앞으로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었을 때만 만나자.